몇해 전의 큐티 책을 읽어 보다가...
작성자명 [김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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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7.14
욥 5:1~27
저는 큐티할 때...
지난 날 목사님께 가르침 받은 것을 다시 읽어봅니다.
목사님께서 깨우쳐 주신 말씀을 다시 읽고 있노라면,
그 때는 그저 기록으로 끝난 말씀에 다시 은혜를 받고,
그 때는 놓쳤던 말씀이 내 말씀으로 들려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98년도에 묵상한 같은 본문을 열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의인으로 죄인을 껴안지 말자.
같은 죄인으로 욥을 껴안자는... 말씀이 기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치 오늘 말씀을 짧게 요약해 놓은 듯한 그 말씀을 읽으며,
정신이 번쩍났고 뭔가 놓쳤던 보화를 찾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말씀을 나누고 싶어 나눔을 올립니다.
그 당시도 저의 열등감과 여러가지 상처와 관계가 회복되느라고,
정말 말씀이 꿀송이 같이 들려지긴 했지만..
그래도 고난은 없었기에,
내가 살아난 만큼 엘리바스 역할을 많이 했을텐데,
어떻게 그 말씀을 기록해 놓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기록은 했어도 그 진리를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오늘 그 말씀을 다시 선물로 주신 것 같습니다.
아무리 큐티를 오래한들.
아무리 성경지식이 많은들.
아무리 구속사를 이해한들...
삶이 없는 큐티와 지식과 구속사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지요.
내 죄를 못 보는 큐티가,
욥을 껴안지 못하는 큐티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지요.
오늘의 엘리바스 처럼,
아무리 유창하고 멋있는 말을 하고,
축복의 말을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지요.
나는 의인이고,
고난 받는 너는 죄인이라고 생각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지요.
나는 다 아는 것을,
왜 너는 모르고 있냐고 책망하면...그 위로의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지요.
고난 없이 큐티하는,
그것도 오랜 세월 의인이 되어 큐티한 저 같은 사람은...
오늘의 엘리바스롤 묵상하며,
하나님과 지체들앞에 겸손해져야 할 겁니다.
이제는 같은 죄인이 되어 욥을 껴안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부르짖으며 회개해야 할 겁니다.
오히려 나무랄데 없이 완벽한 엘리바스의 말 보다,
큰 고난 앞에서 인생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욥의 신음이 진리임을 깨우쳐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