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바스의 말대로라면
작성자명 [심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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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7.13
욥4:1-21
생각하여 보라
죄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있는가
(4:7)
‘생각하여 보라’는 엘리바스의 말은 자기 생각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말입니다. 내 생각을 다른 이에게 적용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엘리바스의 짧은 생각으로는 욥의 당한 고난을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그의 신학적 지식으로는 욥의 고난이 해석되지 않습니다.
그의 논리가 그럴 듯하지만 사실은 잘못되어도 이만저만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욥의 고난은 죄로 말미암아 오지 않았습니다. 의인이 고난을 받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며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것이 있어서 그렇겠지. 평소에 못마땅한 사람이 고통을 당하면 더욱 더 정죄하는 내 악한 모습을 봅니다.
만약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정죄하신다면 이 땅에서 생존해 있을 자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로 연단하여 더욱 더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우리를 더욱 더 성숙시키기 위해서 우리에게 까닭 없이 고난을 주십니다.
까닭 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때로 까닭 없이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진정 하나님만을 신뢰하도록 진정 하나님 한분만을 바라보도록 하나님 없이는 도저히 이 고통을 이겨나갈 수가 없는 것을 깨우쳐 주시려고 하나님만이 진정 나의 구원자이심을 보여주시려고 이와같이 때로 하나님은 까닭 없이 의인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고난속에서, 내가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지 -나야 말로 진토 같은, 먼지 같은, 하루살이 나방 같은 그런 하찮은 자임을 깨달아 결국은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임을 인지/인정/고백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함으로써 나를/우리를 하나님 앞에 감히 서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진흙같은 내가, 먼지와 같은 내가, 하루살이 나방 같은 내가 감히 어떻게 거룩거룩하신 하나님을 , 우리의 모든 상상력을 다 동원한다하더라도 현대의 천문학적인 지식을 다 동원한다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으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지대지고하신 분이신데, 이와같은 하나님과 나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자일터인데, 마치 영원한 절벽같이 건너뛰어넘을 수 없을 만큼 차이가 나는, 존재론적으로!
이와 같이 존재론적으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치없는 나를 하나님을 배알하여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노래할 수 있도록 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크신 은혜여, 관계론적으로!
엘리바스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정말 형편없는 자입니다. 그의 말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런 한참 잘못 되어도 너무 잘못되고 말았습니다. 저도 과거에는 그런 잘못된 자였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저는 잘못을 저지르기도합니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들 수 없는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와 같은 함량미달인 우리를 우리 인생들을/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예전에 미처 몰랐습니다. 이 까닭 없는 우흐로부터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고 보니, 공의가 넘치는 거룩 거룩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자신의 공의대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대신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죄 위해 피와 물을 한 방울도 아낌없이 다 쏟아부으시면서까지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시기 위해서 내죄를 위해서, 내죄대신에 우리모두의 죄를 대표하여 친히 칠흙같은 고난을 짊어지신 것입니다.
엘리바스의 논리대로라면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결코 우리 위에 죽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죄없으신 하나님이 우리 죄인 위해 죽을 수가 없으실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은 바로 유대교의 하나님이며, 저 이스람교의 하나님입니다. 우리기독교의 하나님은 이와같은 하나님이 결코 아니옵니다.
하나님이 이 만세만계를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천지의 대주재되시는 왕이십니다. 이 천지의 만세만계의 대주재께서 그 엄위로우신 분께서 그 지체가 높으시기로 영원무궁절대거룩하신 분께서 우리 대신/아니 내대신해서 죽어주신 것입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참으로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오, 절대공의는 절대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이 뜨거운 사랑의 심장을 좁쌀 같은 저의 가슴속에 부음바되심으로 내 가슴이 하늘같이 넓어지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