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렇게 하심은 어쩜이니이까!!!
작성자명 [박동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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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7.12
흙으로 빚어진 인생은 한계를 초월할 수 없나보다.
7일이 고비인가.
6일 창조와 함께 7일째 하나님의 안식하신 날이지만
죄아래 있는 인생에게, 해아래 창조된 우리에겐
안식후 첫날이 필요한가 보다.
1절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25절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욥의 순전함의 근거는
두려움으로 인한 경건의 모양이었나 보다.
자녀들의 잔치후에도
1장 5절의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
이런 욥도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함이 아닌
드디어 입술로도 하나님을 배반하고 있다.
그의 생일을 저주하는 가운데에도
긍정의 힘이 강한 단어가 반복되어 나온다.
나의 난날,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봄,
빛이 그날을 비췸,
낮,
해의 날 수 가운데 기쁨이 됨,
즐거운 소리,
새벽 별들이 빛남,
광명,
동틈,
모태의 문이 열림,
어미가 나를 낳음,
무릎이 나를 받음, 유방이 나로 빨게함,
곤고한 자에게 빛을,
마음이 번뇌한 자에게 생명을 주심,
하나님에게 둘러 싸임,
빛을 주심
청춘 이란 한 단어에도 전율하듯 몸부림 쳤든 시인을 생각할때
욥이 나열한 생명이 기운이 가득한 단어들을 저주와 함께 사용함이 어쩜인가.
육체의 예법은 사망의 권세를 이길 수 없음이리라.
오직 주님만이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며,나의 구원되심을 선포합니다.
나의 환난날에 도움되심을 고백합니다.
나의 의롭게 보이는 행위로는
주님이 치루실 대속의 은혜를 대신하지 못함을 인정합니다.
사랑안에는 두려움이 없다하셨지만
기복적인 나의 신앙은 항상 자녀가 아닌 종된 신분처럼 충성한다.
어린 아이들이 부모님을 사랑함으로 따르는 것처럼
나도 주님을 사랑함으로, 감사함으로 섬기길 원합니다.
어제는 나의 봉급날이다.
성과급제이며, 한 모로는 동업도 아닌 것이 애매모호한 구석이 있지만
여하튼 월급을 받았다.
실적이 저조하여
42만원의 가불금, 그나마 정해진 본봉금액 아닌
임의적으로 58만원 받았다.
힘들지라도
있으면 먹고, 없으면 금식하고, 죽으면 천국가자
그 믿음의 고백 아래 한사람에게 매달 50만원씩 갚기로 하였다.
그 외에도 갚아야 할 돈들은 널려있다.
동업자, 하지만 사장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이에게
6년전 내가 다른 사업에 한눈 팔때
결재로 받은 3000만원과 1200만원짜리 당좌수표를 바꿨다.
하지만 둘다 부도수표가 되었고,
다른 모든 부도난 재금액들과 함께
사기단에게 속아 나에게도 연쇄부도로 났다.
주범은 잡지 못했지만,
잡아본들 맘먹고 사기친 일을 어떻게 보상 받을 수 있을까.
그러한 가운데 동업자는
나의 본업사업을 자기 명의로 돌려놔라.
어차피 모든 것이 채권단에 넘어가게 될테니
이것이라도 건져놔야 당신 살것 아니냐 하여
모든 권리를 이양하고 명의를 변경하였다.
그 이후 몇년간 한번도 이자에 대하여나,
다른 조짐없이 묵묵히 나의 하는 양을 지켜보아 주었다.
그저 예전처럼 나의 본업에 충실할 수 있었고
채권자들도 다른 모든 부분에서는 임의적 처분과 압력을 행사하였지만
이 사업체(별 큰 사업이 절대 아님, 개인 장사정도 수준임)에는 손 댈 수가 없었다.
그 이후, 4년간 정도 하나님께서 재물의 능을 허락하셔서
많은 빚들을 갚을 수 있게 하셨다.
카드 빚, 은행 대출, 지인들의 빚...
빚을 갚는 가운데 나의 악함을 추억해 본다.
가장 독촉이 심한곳에 먼저 갚게 되었다.
가장 인정많게 호의를 가지고 지켜 보는 자에겐
어느정도의 미안함을 가지고, 갚아야지, 갚아야지 하면서도
내가 어려울 땐, 또한 좀 편하자 할땐, 생각도, 기억도 하지 않았다.
갚을 것이 없는 인생, 혹은 갚을 맘이 없는 이에게
가장 버티기 좋은 것은
은행과 카드 빚.
초창기에는 어려웠지만
카드 빚에 대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함으로
물리적인 방법이 사라지고,
신사적으로 채무자들을 대할 때 부터
갚아야 할 인생들이, 빚진 인생들이 배짱이 늘었다.
이것은 분명한 악이다.
채무를 갚는 가운데
교회에서의 나의 고르반 하는 역사가 반복되어 왔다.
사업이 잘 돌아 갈땐 깊이 생각지 못했다.
하나님께도 영-육간에 충성하고
세상에 대한, 더 분명히 한다면 결국엔 복음을 전하여야 할 대상에게도
빚을 잘 갚아 나갈 땐 분명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사업이 점차 어려워짐으로 심각한 고민꺼리가 생겼다.
올라가는 신앙 을 전제한 나의 신앙 모토가 흘들리는 것이었다.
십일조도, 감사헌금도, 월정액도, 교육관 헌금도, 건축헌금도... 올라가야 하는데
매년 올라가야 하는데, 어쩜인지 내리막을 달렸다.
나는 양쪽다, 하나님과 전도대상자들 모두에게
빚진 인생이 되었다.
그 동안의 신앙방식으로
하나님 우선 신앙으로 이웃에게 빚진것을 갚기 전에
하나님과의 약속한 부분을 먼저 드렸다.
그런데도 수입은 점점 더 줄어갔다.
어쩜이니이까.
한때는 가장 많은 액수의 헌신도 하고, 가장 많은 액수의 십일조도 하고, 하고, 하고...
그런데 어쩜이니이까.
그 모든 행위를 통하여 교만할 맘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분별이 아닌 판단의 기준이 되었다.
이렇게 힘든 나도 이정도는 하는데
여유있어 보이는 저 집사님은 왜?
아무리 어려워도 이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저래가지고도 복을 받을 수 있나?
돈만 벌면 뭐하냐, 영적으로도 성장 해야지!
지금 생각하면 별 시답잖은, 아니 내가 주님이었다.
연보궤를 대하여 앉으신 주님처럼.
하나님께서 나를 만지시기 시작하셨다.
아주 서서히, 한계 탄성력을 넘기지 않고, 조금씩 천천히
나의 인내의 한계를 늘려 가셨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나의 아내도, 나의 자식들(일남 이녀)에게도,
나의 사랑하는 아이들, 정말 모든 것에 Yes! Sure! 이란 대답만 하고픈데
I am sorry, Uh, N-o. 정말 하기 싫은 말들을 입에 담고 있어야했다.
(그래도 아빠는 너희를 정말 사랑한다.)
육체적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함은 간절한 축복의 기도로 변화되었다.
기름값 아낌이 정도가 아닌, 6Km정도의 출근길... 걸어서 가면 하루 더 버티겠는데...
진짜 돈이 없어서, 감사헌금 하고픈데 돈이 없어서
주님앞에 눈물만 흘렸다든 어느 집사님의 고백이 이제서야 아 - - - - - .
카드회사의 빚, 은행의 빚들이 희한한 방법,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아니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심묘막측한 방법으로
나의 가장 가까운, 매일 대면 할 수 밖에 없는 이들에게로 전가되었다.
내가 악에대하여(채무에 대한 인식이 엷어져 감) 무감각 해지니
볼 때마다 심령이 낮아지고,
나의 악함 심성을 회개하고,
그들에게, 내가 물질로 고#53691;을 준 그들을 보며
영혼을 위해서,
또한 호리라도 남김없이 다 갚게 하시려고
나의 눈 앞에 채무자 들을 두셨다.
또한 한가지
이 동업도 아닌, 이 사업체는 나의 단독 의사로 운영되어간다.
수입이 얼마인지, 지출이 얼마인지는
내가 다 장부에 기록하며,
하나님 한 분 밖에는나의 정직성을 알 자가 없다.
감정 수수료를, 금액결정을 내가 하기 때문이다.
김양재 목사님의 설교 말씀중 믿음이 있으니 갈등을 하는 거죠
진정 옳습니다. 나는 매일 갈등한다. 그리고 날 마다 회개한다.
맘으로 탐심을 품은 자는 도적질한 자라고 주님 알게 하셨다.
정직한 자의 형통을 믿는다 라는 박성수 장로님의
COSTA 에서 강의 하신 정직한자는 항상 손해 본다.
하지만 결정적일 때 산다 는 그 믿음의 권면을,
날 마다 생각하고, 무뎌지면 그 책을 또 본다.
결정적일 때,
주님이 부르실 그날에 살기 위함이며,
자식에게 이어질 저주를 끊기 위함이다.
봉급, 가불금 제하고 그나마 줄어든 금액 58만원 중에서
아내의 손위에 30만원을,
하지만 주님의 손위에 올리는 것처럼,
믿음의 여인, 하나님으로 지혜로운 여인,
그래서 현숙한 나의 아내의 손위에 올려 놓았다.
나머지는 50만원 주기로 한 이에게
온라인 송금하고, 문자를 띄웠다.
곧 마저 입금하겠노라고.
우리 부부는 입으로
이 때를 저주하지 않았다.
우리는 종이 아니며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녀이기에
또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 하시는 처소가
아름답게 지으질 수 있도록
주님을 영화롭게, 하나님의 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오늘 우리에게 임한 육체의 고통을
믿음으로 이겨 내리라.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리라.
감사하며 주 예수 이름으로 감사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