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가...저주로 들리지 않습니다
작성자명 [김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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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7.12
욥 3:1~26
저는 지금까지 많은 악을 행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악 중에서,
결코 잊어버리면 안될 악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린 시절 스스로 제 목숨을 끊으려 자살을 시도했던 것인데,
저는 그 악을 잊어 버리면 안됩니다.
아무리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던 때라 해도,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끊는 큰 악을 행했는데...
저는,
제가 그렇게 악한 자였다는 것을 잊어 버리면 안됩니다.
그리고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아무리 다른 사람이 악하다 해도,
저는 그 누구도 판단하거나 정죄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깨우치기 위해서라도,
잊어 버리면 안 됩니다.
오늘..
욥이 자기의 태어 난 날을 저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저주가,
저주로 들리지를 않습니다.
저 같은 자는 그와는 비교도 안되는 일로 목숨을 끊으려 했는데,
욥은 모든 것을 잃고도 묵숨을 끊지 않고 그래도 하나님앞에 절규를 하고 있으니...
저는 이 상황에 이렇게 할 수 없는 욥이,
오히려 대단해 보이기 까지 합니다.
그래서 이 저주는,
오히려 자기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소리로 들리고,
까닭없이 고난을 당해도 자기는 어쩔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고백하는 소리로 들리고,
이 때에 욥이 이런 절규마저 하지 않았으면,
그가 어떻게 견뎠겠는가 하며,
사람의 한계를 드러내는 연약함에 친근감 마저 듭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욥의 절규를 들으며,
회개합니다.
나는 욥의 환경에 비하면 정말 갖춘 것이 많은데,
왜 자꾸만 ....했었더라면 하며 원망 하거나 뒤돌아 보는 것이 많을까.
욥에 비해 나는 정말 평안하고 누워 쉬는 것 같은 환경인데,
왜 자꾸 낙심하고 힘들다며 투덜거릴까.
욥은 거기서는, 거기서는 하며,
죽은 후에나 다른 세상에 좋은 일이 있을 것으로 기대를 하는데,
나는 환경이 바뀌는 것이 천국이 아님을 알면서도,
왜 자꾸 막연하게 거기 를 동경할 때가 있을까.
그래서 이제는 죽기를 구하거나,
죽은 척 하려 들거나,
죽지 못해 ...했었더라면 하는 어리석음을 행하지 말고,
죽을 힘을 다해 남은 인생 주님만 바라보고 가야 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그리고 욥은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고,
무서워하는 것이 몸에 미쳤다고 토해 놓는데,
나는 지금 어떤 것이 두렵고 무서운지 생각해 봅니다.
지난 날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부정하며,
...했었더라면 을 읊어대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인지 생각해 봅니다.
오늘은,
육신이 죽기를 구하기 보다,
내 속에 있는 악이 죽기를 간절히 간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