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일의 의미
작성자명 [최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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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7.12
욥 3 : 1 ~ 26
욥 3 : 1 그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 하니라
저는 40 살이 될 때까지 음력 5 월 20 일이 저의 생일이라고 알고 지냈었습니다.
그러다가 4 0 살이 되어서야 제 출셍의 비밀을 알게 되었는데 제 생일은
상기하자 6 . 2 5 일 이었습니다. 1951년 6. 25 일이었고 음력은 5 월 21 일이었
습니다. 전쟁이 나고 꼭 1 년이 지나서 제가 태어났고
제 생일은 저의 어머니께서 전범으로 광주형무소에 수감중이었는데 좌익여자죄수들
에게 날짜를 알려주었는데 양력으로 가르쳐쥰것을 음력으로 계산할 때 잘못해서
하루빠르게 40 년동안 생일을 지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 출생의 비밀을 모르고
사는 동안에는 제 생일의 의미를 그리 크게, 또는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남들도 모두 지내는 생일같이 축하받고 음식도 나누고, 경우에 따라서는 선물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불혹의 나이에 소설같은 제 출생의 비밀을 알게된후
제 생일의 의미는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물론 친가나 외가의 누구도 알지 못하는 현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스크바 유학시절 ... 한국전쟁... 임신과 출산.. 아버지는 영웅
어머니는 열사.. 김씨에서 최씨로 바뀐 나, 몰락한 공산주의, 민주화운동유공자인 나
나 라는 존재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는가에 대하여
과거가 있었기에 현재가 있고 오늘이 있기 때문에 내일이 있는데......
나의 정체성을 크리스챤으로써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분명히 파악하고 살아야 될것
같았습니다.
저의 부모는 이북사람들로써 철저한 공산주의자들이었고 북한 최고의 엘리트 였으며
국군이 낙동강까지 후퇴했을때 저를 임신 했었습니다.
그리고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되고 남한에 내려왔던 인민군들이 패색이 짙어지고 후퇴
하기 바쁠때 저의 어머니께서는 지리산 길목인 남원쪽의 달궁이라는 마을의
빨치산 비트에서 저를 출산 하셨습니다. 이북은 6 . 2 5 전쟁을 민족해방을 위한 전쟁
이라고 명칭하였기에 그날은 해방의 날 이었고 저는 해방둥이 였으며 축포와 함께
지리산 전체의 인민군들의 환호를 받고 태어났다고 합니다.
제 이름은 김은철 이었고 저를 살리기 위해 일단 투항한 어머니를 따라서 저도 핏덩이
때에 형무소 살이를 했었습니다. 전향만하면 살려준다는것을 뿌리치고 공산주의 사상을
지키기 위해서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집행된 어머니와 생이별을 하게된 천애의
고아가 된 뒤 젖동냥으로 여자감옥에서 얼마를 살다가 형무소간수의 눈에 예쁘게 보여서
그 최씨 집으로 입양되어 들어간후 제가 김은철에서 최계원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사실을 당시 여자감옥에 계셨던분들을 제가 직접 만나보았고 지금은 미전향수
로써 북한으로 넘어간 분들이 저를 찾아와서 알게된 사실들 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대학교를 다니고 사회생활을 할때까지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매년 저는
생일을 잘 지냈습니다. 케익도 자르고 축하송도 듣고 ...... 보통 사람들 처럼
그런데 복음이 저에게 들어오고 은혜를 받기 시작하자 생일의 의미가 불신자 시절과는
달라지기 시작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제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뒤부터는 제 생일의 의미를 제 스스로 재조명하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함부로 살수 없다는것 이었습니다.
모든 크리스챤이 마찬가지 이겠지만 제가 복음의 빚을 크게 진자라는것 입니다
첫째는 저를 고아와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역사하셔서 살리신 주님께 복음의 빚과
사랑의 빚과 말할수 없는 은혜의 빚을 골고루 졌다는것 이며
둘째는 저를 거두어서 길러주신 양부모님들과 저의 이웃되신 모두에게 빚진자라는것이
마음에 절절히 와 닿았습니다.
또한 북한동포들에게도 빚진 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어제 사무실에서 탈북여성을
취조하는 인터넷 동영상을 보는데 마음이 너무 져려왔었습니다.
그리고 가난과 질병과 무지와 억압이 있는땅에서 예수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때마다
복음의 빚진자 심정을 누를길이 없고 눈물이 그치지를 않습니다.
저도 제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제게 충만할때는 어떤 고난도 오히려 기쁨으로 이길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기갈이오고 은혜가 떨어지면 작은 돌맹이에도 넘어졌습니다.
말씀이 충만치 못할때는 작은 상처만 받아도 심령이 상해서 살고 싶지 않고 욥과같이
지구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인생이 사막같아서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어느곳이나 평강도 없고 안온도 없고
안식도 없고 고난만 임합니다. 불신자들은 사막을 오아시스로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제가 55년 인생을 살면서 세상과 죄를 이길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파워는 돈도 아니고
권력도, 명예도 학식도 아니었고 오직 여호와하나님의 말씀 이었습니다.
말씀이 저게 충만할 때, 말씀으로 제가 100 % 죄인이라는것이 깨달아질때 ....
말씀이 저의 고난과 생일의 의미를 해석해 주셨고 저는 강같은 평강을 누릴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힘들때도 예수께서 나의 죄를 위해서 대신 지신 십자가를 묵상하면 어려운 환경은
간곳이 없고 평안이 제 심령 한 가운데를 도도히 흘러 내려갑니다.
그러다보면 저의 고난은 작은 찻잔속의 폭풍으로 견딜만하게 변해 있습니다.
고난을 피해갈수는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큰 은혜로 넘어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