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의 하여 보시는 하나님
작성자명 [박동언]
댓글 0
날짜 2006.07.11
힘든 고생(고난이 아님)길 가운데
자주 읽혀졌든 욥기인데,
그 역사하심속에 녹아져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고 보는 지금
중심의 답답함이 조금은 해소 되는듯 하다.
이전엔 모든 흉악의 결박들은 원수의 소행이므로
원수를 이기는 것에 급급하여 금식하며 기도하고,
원수를 물리치는 기도에 힘쓰고,
물론 회개하는 기도를 하였지만
목적이 원수가 역사하기 전의 회복에 촛점이 있었다.
헌데, 오늘 3절에 하나님께서 유의 하여 보시는 자는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 이다.
창졸간의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고,
여전한 방식으로 모든 것에 주관하시는 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을 감동시킬만 하지 않은가.
어려움 가운데 순전함과 정직을 지킨다는 것,
너무너무 어려운 일이다.
나 홀로 신앙에서는 의기천추 하는 맘으로 읏샤 가 가능한데
처와 자식이 딸려있는 상황에서, 주님앞에 그들을 맡기지 못하는 믿음가지고는
절대로 순전과 정직을 나는 지킬 수 없었다.
그런데 나의 아내는 엘리사를 찾아간 선지 생도의 아내 와 같은
믿음의 싹이 조금 보인다. 그녀가 나보다 훨 낫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참소하는 자를 통하여
네가 나를 격동하여 하시며 흥분하셨든 모습을 본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신 나 ,
진리로 나를 낳으신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녀, 곧 나에 대한 믿음과 기대는
나로 하여금어떠한 상황에서든 물러서지 않을 담대한 심령을 갖게하심이 아닌가.
주님께서 태초부터 가지고 계셨든 아버지의 사랑 으로 말미암아 저주와 모욕과 기억하기조차도 싫어함을 받는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심을 입음 같이,
나도 궁핍과 환난과 학대속에서도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믿음을 나타내어야 함이 나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하닌가.
이곳은 이미 주님께서 내 나라 아니라 하셨는데,
그래서 주님도 이 땅에선 죽임을 당하셨는데,
나 또한 육신의 날 동안에는 끊임없이 육신을 먹겠다는 뱀 들의 공격을 당할텐데...
그래도 오늘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환난의 경계선을 미리 정하여 두신것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본다.
13절 칠일 칠야를 그와 함께 - 그에게 한 말도 하는 자가 없었더라-
나에게 사랑이 없음도 아니다.
들어 줄줄 모르는 나 또한 아니다. 하지만 내 할말 을 가지고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는 이들의 변이 다 끝나는 순간을 기다린다.
처음과 끝을 다 아는 자 처럼,
그들에게 물심양면 위로도 하고,
훈계도 하고, 축복도 하고, 기도도 하였다.
하지만 김양재 목사님의 로마서 강해 를 듣고
그들의 모습을 통하여 나의 죄와 강퍅 그리고 가증함 을 본다.
그래서 먼저 나를 주님앞에 먼저 세우고 회개한다.
그리고 나의 입을 막고, 그들에게서 나오는 고통의 신음들을,
상처받아 괴로운 영혼의 탄식을 나의 심령에 담는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내려 놓는다.
나는 할 말이 없는 자임을 내가 잘안다.
나 또한 똑같은 고통을 가지고 있기에 그들을 내가 위로 할 수도,
치료할 수도 없을을 이제는 좀 알듯하다.
솔직히 내가 더 위로받고 치유받고싶다.
주님, 주님께서 유의하고 보고 계실 이순간
주님께 기쁨드리는 저이길 원합니다.
흙으로 돌아갈 육체 때문에 낙심하는 자가 아니라,
오늘 입을 다물고 순전함을 지킨 욥처럼
주님께서 기뻐하실 승리의 삶을 드리는 나 되길
주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