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저주의 말을 퍼 붓고 떠나 가버린 아내!!
작성자명 [김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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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7.11
나에게 저주의 말을 퍼 붓고 떠나 버린 아내!!<욥>2;1~13
우리는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 부부였었습니다.
서로가 다른 길로 가자고 하였고
서로가 다른 곳 쳐다보고 있었고
서로가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고
우린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던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 부부였었습니다.
아내와 나는 많은 나이를 [사랑]하나로 극복하고 만났지만
예수가 없는 사랑은 그렇게 오래 가지 않았었습니다.
육적인 사랑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고 집착이었으며
아내의 첫사랑이 실패로 끝난 이후에 만난 나는 그 남자를 잊기 위한
육의 도피처였었고
30의 중반 나이까지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나에게도 아내는 하나의
육의 피난처였을 뿐
우리는 진정한 사랑으로 만난 사이가 아니었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은
서로 만나 신혼살림을 차린 지 불과 얼마 안 되어서였습니다.
그 후로 아내는 [나를 지겨움의 대상]으로 삼았고
나는 그녀를 언제나 어느 순간에 떠날 사람으로 인식하고 의심하며 불안한 적과의 동침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17년이나 함께 살았었습니다.
부부싸움만 하면 [지겨움의 대상]이라는 말을 들었고 늘 자신을 놓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17년을 살면서 배신의 싹을 키우며 살았고 늘 간다고 하며 보따리를 쌌습니다.
제발 놓아 달라고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행동으로 옮기지만 아니한 것이지...
그런 와중에도 17년이나 살았다는 것은
단추가 잘못 끼워지긴 했지만 노력은 했다고 여겨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정불화에 늘 나를 경원시하고 부끄러움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그녀는
처가의 모든 행사에 나를 늘 빼 놓았었습니다.
나는 장인의 장례나 처가 친척중의 누군가 마지막 가는 행사가 있을 때만
마지못해 불러주었던
그래서 처가 쪽에는 전혀 존재조차 희미한 그런 대상이었습니다.
나는 철저하게 배제된 그런 존재였었습니다.
처남들과 처제는 물론 장모까지도 나를 인정하지 않는 그러한 풍토 속에서 17년을 견딘 것입니다.
그 처가 동네가 원주입니다(우리들 교회 전 교인 수련회 장소)
그런 처제에게 [내 딸]이 맡겨져 있습니다.
그 가정을 지켜보려고
열심히 돈 벌어다 주었고 때만 되면 열심히 선물을 사다 바치면서
이러한 불안한 동거가 17년이나 지속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가상한 나의 노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내가 나쁜 사람이었다는 것은 결단코 아닙니다.
모든 게 나의 삶의 결론이고
내가 100% 죄인에 모두가 내가 잘못 한 일로 그리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카톨릭의 모태 신앙이요
수녀가 되기를 소망했었다고까지 하던 아내가 먼저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를 다녔고
저도 학원이 완전히 망하고 알콜 중독의 폐인 상태일 때 하나님께서 만나 주셨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 때는 나도 기복적이었지만
인본주의에 기복까지 합쳐진 아내와는
주일 예배 후에도
어느 집회에 가서 은혜를 받고 오면서도 싸우는 그런 사이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교회와 공동체 안에서
그와 내가 부부 사이라는 것과
우리 사이에 심한 연령차가 있다는 것을 숨기고 싶어 하기까지 했었습니다.
그런 그녀는 내가 예수를 믿으면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십자가 능력에만 의지하고
새벽기도에 말씀에만 몰입하는 나를 [광신]이라고까지 비방하였고
그런 가운데서도 교회봉사는 또 한 열심하는 그런 영적상태였었습니다.
예수님 믿고 기복적으로 만들어 시작했던 학원이 망하자
나는 이 사건을 영적으로 해석하고 하나님께 그 뜻을 묻기 위해
하루 금식기도하고 오겠다고 기도원에 올라 간 것이
하루가 삼일 되고
열흘 금식에
열흘 보식 그리고 통회자복하면서 말씀으로 인도되는 사건을 35일 겪고 내려왔는데
아내는 내가 학원이 망하자 빚 때문에 가출한 자로 처리해 놓았고
처가 쪽에서 똘똘 뭉쳐 합심하여서는
나를 장기간 행불자로 만들어 주민등록 말소시켜 놓고
서류상으로 이혼까지 해 놓았으며
[지겨움의 끝]이라는 메일에
차마 소개할 수 없는 온갖 저주의 말이 담긴 편지 한 장 남겨 놓고 그렇게 떠나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순전한 사람 욥이
하나님께 경배하기를 소중한 일의 우선순위로 정하고 묵상하며 QT하던 욥이
해석 안 되는 사건 앞에서 악창까지 겹쳐 재위에서 기왓장으로 몸을 긁고 있을 때
그의 아내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는 저주의 말을 퍼붓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 곤고함에 빠져 있다고 욥기서 기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내가 본문을 묵상하며 욥의 곤고함의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합니다.
악창 때문이었을까?
배신에 저주의 말까지 퍼붓고 떠나가 버린 아내 때문이었을까
지금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느껴지는 것은
욥이 더한 곤고함에 빠지게 되는 것은 몸에 난 참으로 견디기 힘든 악창보다도
아마도 배우자의 배신이 육신을 괴롭히는 악창보다도 수십 배 더한
처절함과 절망의 곤고함으로 다가오지 아니었을까를 묵상해 봅니다.
정말이지 견디기 힘들었었습니다.
특히 아내와 가까웠었던 한 남자를 알고 있는 나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술 마시며 다녔던 이혼남이라는 술친구?
지금까지도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는...(아들의 입을 통한 확인)
그리고 뻔한 곳에 가 있을 아이들,
찾아보고 만나려면 만날 수 있는 아이들을 지척에 두고도
그저 기다림 밖에 할 수 없었던 그 고통은 참으로 인내하기 어려웠었습니다.
내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굶고 있으면서
그저 골방에서 하나님만 바라며 있었던 시절인지라 찾지 않고 만나지 못 했던 것이 아니라
나에게 온 이 사건이 도무지 해석이 안 되었던 터였었고
특히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그 환경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상처만 덧입혀주고
아이들에게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기에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골방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고통이 더 가중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욥이 그 곤고함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원망하는 입술의 죄를 짓지 아니하였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었는지 모릅니다.
고난가운데서도 신앙의 순전함을 지킨 욥이었기에 42장의 축복이 임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나 역시도 [주님! 왜 저입니까? #50797;니까?]하는 입술의 죄조차 짓기를 피했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2005년 1월 2일 주일에 우리들 호에 승선하여 주옥같은 복음을 들을 때까지는
참으로 많이 곤고해 있었습니다.
고난이 축복이요
복음은 장차 올 환난의 예고편이요
모든 게 내 삶의 결론이요
내가 100% 죄인이라는 말씀을 듣고서야 사건이 해석되기 시작했고
QT를 하며 [네 죄]를 보는 게 아니라 [내 죄]를 보면서 깨닫고 말씀이 들리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주님은 이미 저에게 42장과 같은 축복을 주시고 계십니다.
아들, 딸을 찾았고
그들이 모두 우리들 호에서 함께 예배드리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저는 부족한 가운데 주님의 일을 사역으로 돕고 있고
오직 말씀의 인도만을 받으며 줄로 재어 주신 공동체에 매달려서
여전한 방식의 생활 예배로 날마다 살아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거 합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복음과는 먼 거리에 있는
애들 엄마요 철저한 기복과 인본주의 빠져 다른 언어를 쓰고 있는 저들의 영혼이 불쌍합니다.
그리고 감사한 것은
복구전은 내려놓았지만 아내와 그의 친정 식구들,
저들을 마음속으로 용서하고 저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