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그 성의 중건
작성자명 [송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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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7.02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은 현 정부와 관련된 몇몇 곳에서는 실제적인 영입니다.
‘예루살렘’일 수도 있는 도시, 인구 50만명과 주요 행정시설을 위한
한 도시의 건설 프로젝트가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이 도시를 구상하는 도시계획의 전문기관에서 시대에 맞는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서,
저희 건축가들에게 제안을 의뢰했습니다.
그 의뢰는 수락되었고, 이 도시의 골격과 개념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면서
몇몇 건축가들로 실질적인 팀이 구성되어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어떤 ‘거리와 해자를 이룰 것인지’에 대한 모델을 준비하는 중에,
저를 포함한 저희 작업팀에게 작업의 일부가 국제현상설계로 진행될 것이라는 연락이 왔으며, 잠시 작업의 속도를 늦추자는 의견이 덧붙여 졌습니다.
며칠 후, 저희가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보류하라는 연락이 이어졌습니다.
다시 며칠 후, 다소 변경된 조건으로 작업을 하게 될 것이라는 연락이 있었으며,
또 다시 며칠 후, 재개하더라도, 계약 후에 하는 것이 안전할 것 같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저희 팀은 잠정적으로 기다리자는 결정을 했고,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곤란한’ 시간이 진행되는 동안에,
이 사건은 제 죄를 자복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했습니다.
지혜와 총명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막중한 일을 행하는 모습에서,
저와 다니엘의 태도가 구별됨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사건의 시종에서, 다니엘이 행하는 것은 자신의 죄를 자복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간구할 뿐입니다.
흠이 없고 아름다운, 오히려 고결하고 숭고하기만 한 다니엘이 기도하며 간구할 때,
저는 사무소와 신변의 일정들을 조정하며, 필요한 준비물을 확보할 뿐이었습니다.
스#53494;에게는 기초조사를 지시했고, 지형의 삼차원 모델링을 진행시켰을 뿐이었습니다.
새로운 개념의 도시에 학문과 재주, 지식과 슬기, 지혜와 권능에 관한 최선의 것이 필요한데,
저는 하나님 앞에 간구함이 없이, 제 능력으로 준비했던 죄를 자복합니다.
주의 계명과 언약, 주의 법도와 규례를 생각하지 않고,
선배와 논의한 것들을 원칙으로 삼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과 에스겔,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통해 전하신 하나님의 의지를 생각하지 않고,
동료와 모델을 제시하면서 규칙들을 정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의 중건’은 이 땅과 제 삶에서 하나님의 왕권을 회복하는 것인데.
이 도시와 제 삶의 환경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된다는 것인데.
‘거리와 해자를 이루는 것’은 돌과 수목이 아니라, 기도와 말씀임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지혜와 총명은 연구와 계획이 아니라, 겸손과 신실임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이 도시의 계획과 건설은 ‘예루살렘의 중건’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작업이 저희 팀에서 재개가 된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표상이 되어 이 도시가 계획되고 건설되기를 소망합니다.
다니엘처럼 미래의 표상을 묵시할 수는 없지만,
그런 표상을 간구하며 계획해 보기를 소망합니다.
이 도시의 전체가 아니라도.
도시의 작은 부분에서라도.
아니면, 제 자신과 제 삶에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