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을 떠나 보내기
작성자명 [이윤경]
댓글 0
날짜 2006.06.22
단 4:28~37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내 총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내 나라의 영광에 대하여도
내 위엄과 영광이 내게로 <돌아왔고>...
지금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
관계의 영성에서도
떠남과 돌아옴의 차이는 역력하다
자신을 너무나 모르고
진실함으로 상대를 높이고
지극한 섬김의 자리가 부실할 때,
만남은 기쁨인 동시에 깊은 상처를 동반하게 된다.
세상도 그 욕망도 다 내려놓을 때,
진정한 그 분과의 사귐이 존재하고
그 영역이 깊어지고 향기로울 때,
비로소 주어지는 회복의 화음에 발맞추게 된다.
떠나가는 이가 주변에 많이 있다면
내 자아가 아직도 왕성히 살아있다는 증거다
반대로 돌아오는 이가 눈에 뛴다면
차차로 그 분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이 세상 보다 크신 이가 내 안에 있기에
계속적으로 자라가지 않으면
떠남을 통해서, 아픔을 통해서, 깨어짐을 통해서,
좁아터진 마음을 넓히려는
아버지를 만나면 감추어진 모든 것은 빛 가운데 드러나게 된다.
내 자신이 얼마나 자신만을 사랑했는지?
진정한 목적이 자아성취요, 자기기만이요, 지기만족이었음을
진정한 의도가 그 분의 뜻과 너무나 다른
자신이 우주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견딜 수 없었던 모순덩어리였음을
하나의 벽을 깨기 위해서는
깊은 바닥의 시간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종종 맞이하는 안 풀림에 대하여 항변하기 보다는
진정으로 그 엉의 의미를 상고해 보면 해답이 나온다.
중심이 그 분께로 고정되면
빛 되신 아버지의 권위 아래서 무릎을 꿇으면
또 하나의 계단을 오르며
허물투성이였던 자신의 더러운 껍질을 목격하게 된다.
‘저렇게 더럽고 추한 모습으로
말과 혀로만 주님을 사랑한다고 외쳤구나?
행함과 진실함이 빠진 헛수고에 목을 매달았구나?‘
부끄러운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지혜요
아무것도 내 것이라 주장할 수 없음을 터득하는 것이 총명이다
교만의 휘장이 걷히면 피 뭍은 십자가와 대면하게 된다.
고통 없이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겸손과 동행하기까지
나의 가는 길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아버지의 손을 놓치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