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형의 목자? 강북형의 목자?
작성자명 [김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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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6.22
강남형의 목자? 강북형의 목자?<단>4;28~37
환경이 바뀌면 아프지도 않을 줄 알았는데
누적된 피로감인지...
비 오는 날씨 탓인지...
어제는 나눔만 간신히 올려놓고
출근도 못한 채로 오후 4시까지 앓아 누워있었습니다.
그리고 누워서 잠자는 일 외에 할 일이 없으니
이런 저런 묵상을 해 보았습니다.
나는 교만한 자인가?
나는 겸손한 자인가?
나는 사람들이 나에게로 인사하러 오기를 기다리는 형인가?
따라 다니며 열심히 인사하며 교제하는 형인가?
안경은 쓰고 눈도 큰데 사람을 잘 보지 못하는 형인가?
눈도 작고 안경도 쓰지 않아 사람을 잘 못 보는 형인가?
진실로 반가운 표정을 얼굴과 몸으로 느끼게 하는 인사를 주고받는가?
뚱한 표정으로 의례적인 인사를 주고받는가?
나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가?
머리만 가볍게 까딱하고 인사를 하는가?
교사로써의 탁월한 능력으로 직분만을 감당하고 있는가?
능력은 좀 딸리지만 섬김의 자세로 사랑하며 소명을 감당하고 있는가?
나를 의정부에 이어 신림동에서 종암동까지 2시간가량을 소요하면서도
열심히 쫓아다니게 한 목장의 목자님을 생각하며
늘 그의 겸손을 배우려 애쓰고 교제하는 데
문득 능력과 겸손을 두루 겸비한 그의 생각이 나서
그를 모델로 하여 이렇게 교만과 겸손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그는 진실로 겸손한 강북형의 목자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모든 연단은 나의 교만이 그 이유였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뜻이 계셔서 지금은 잠시 쉬고 자숙하라 하시면
골방에서 회개하며
말씀이 나를 묵상하는 가운데 내 죄를 보며 자숙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낮은 수준과 급한 성품 그리고 돌팔이의 적용으로
인내하지를 못할 때가 많습니다.
공부방이 안정이 되면서 내 삶이 안정을 찾는 게 아니라
물질의 부족함으로 부담이 가중되다 보니까 마음이 자꾸만 급해집니다.
내 안에서 십자가의 열정이 꿈틀대는 것이 아니라
육적인 욕망이 나를 충동질합니다.
내 안의 느부갓네살은
조금 반짝 이루어진 환경을 바라보면서
다 내가 이루어 놓은 것으로 착각하고 드러내 자랑하며 뽐냅니다.
그러고는 이만큼 이루었으니
뭔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쑥쑥 발전해 나가기를 소망하며
현실의 답보 상태에 있는 것을 답답해합니다.
자 보아라! 하며
더 드러내 보이고 싶은 이생의 자랑을 드러냅니다.
이렇게 실수하며
안목의 정욕에 깊이깊이 빠져듭니다.
입술로는 내가 한 게 아니고
하나님이 하셨어요. 고백하면서도 속마음은 교만으로 그득해 있습니다.
나는 지금 자숙할 때입니다.
주님이 일을 하시도록 그냥 골방에서 기도할 때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급해져 있었음을 발견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묵상에 게으르며
주님과의 영적 교제에 나태해 있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기한이 차야 한다.=34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것이라고
그 때가 너의 때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때]라고
너의 조급함, 성급함이
그리고 너의 게으름과 나태함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방해하고 있지는 아니한가?
골방에서 십자가를 묵상해 보라고...
<이레 공부방>이 잘되는 것은 아이들의 숫자가 말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숫자는 본질이 아닙니다.
와 있는 아이들이
말씀의 꼴을 먹고 바뀌고 변화되는 모습들이 자꾸자꾸 늘어나는 것이
<이레 공부방>이 잘 되는 것이요 그게 본질입니다.
그래서 저는 본질만 보면서 이 사역을 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자꾸만 비본질의 요소인 [숫자]에 연연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자꾸만 쪼들리니까 현실이 보이고 물질이 그립게 됩니다.
그래서 자꾸만 서두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저는 지금 배가 많이 고픕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기다리라고 밥이 뜸이 들어야 먹지 않겠느냐고
그 기한이 차매... 하실 때까지 기다리라는 주님의 음성을 골방에서 듣습니다.=아멘=
그리고
[기한이 차매]의 때까지 오직 말씀의 인도를 받으며 골방에서 기다리겠습니다.=아멘=
기한이 차면 영육이 다 채워질 것을 믿습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