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한번만 보아라
작성자명 [최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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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6.09
창 24 : 28 ~ 49
자신의 앞날을 순적히 인도해 주실것을 하나님께 간구 했던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은 환대하는 리브가가 자기가 찾고 있던 바로 그처녀 임을 획신하고
예물을 건네 주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사건을 만나면 마음속에 자기도 모르는
확신이 넘쳐 납니다. 내 기도가 어떤 사건이든 넘쳤다면 반드시 확신에 거할수 있습니다
중동 지방의 결혼 풍습상 당사자가 모든 것을 결정할수 없기에 가족의 동의가 필요
했습니다.
그리하여 리브가의 집에 도착한 아브라함의 종은 매우 길게 자기 사명을 언급하고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 하셨음을 감사해 하였습니다.
이러한 본문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사소하게 보이는 삶 마져도 깊은 관심을 가지시며
특별히 당신을 신뢰 하는자들을 바른길로 인도 하신다는 사실을 깨우쳐 줍니다.
사실 내가 죄로 말미암아 오염된 양심과 이성, 자각을 가진자라 매 순간 하나님의
도움을 못 느낄 뿐이지 하나님께서는 나의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사에도 깊이 관여하고
계십니다.
리브가와 그의 가족들은 엘리에셀의 설명을 듣고 주저함 없이 결혼을 승낙 했습니다.
그들은 절대적인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 앞에 완전히 압도 되었습니다.
그종은 이 결정이 떨어지자 신속하게 리브가와 함께 귀환할것을 통보 했습니다.
한편 종의 결의에 찬 결단에 리브가도 즉각 따라나서겠다는것이 무모한듯 보이지만
리브가가 경솔한것이 아니라 용기 있고 결단성 있는 믿음의 선진 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이스라엘 열두지파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신앙세계는 항상 용기와 결단이 요구 됩니다.
그런데 용기도 결단도 말씀안에서 있을때 결과가 아름답습니다.
저는 소시적에 결혼을 결정할 때 예수밖에 있었기 때문에 큰 불효를 했었습니다.
저는 출생의 비밀을 몰랐었을때 였습니다. 친부모님인줄 알았을때,
직장 생활을 하다가 동료의 소개로 한 아릿다운 처녀를 만났습니다.
대학교를 다닐때는 학생회장 하는것이 목적이 되었기에 반듯한 데이트도 못해 보았고
일학년 입학해서부터 4 년간 바빳습니다.
군대갔다가 제대하고 취직해서 서울에서 스파르타식 훈련을 받고 금의환향(?) 해서
체질에 맞는 (?) 직장생활을 하니까 날아 가는것 같았습니다.
거기에다가 < 세상언어 >가 통하는 예쁘고 세련된 일류회사 여사원을 만나서 물고기가
물을 만난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데이트를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1년이 되자 부모님께 결혼할 여자가 있다고 소개를 했습니다.
집으로 와서 곱게 인사를 하고 돌아갔는데 부모님은 반대를 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살면서 부딛친 모든 문제에서 부모님들이 양보를 하시고 다른말씀을 안하셨는데
결혼에 대해서는 완강하게 반대를 하셨습니다.
대학교를 서울로 가라고 하셨는데 학생회장 할려고 전남대학교를 갔고
의과대학을 가라고 하셨는데 공과대학 토목과를 갔고
공부나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을 들어가야 삶이 편하다고 하셨는데 운동권으로....
보험회사는 불안하니까 결혼은 안정된 직장여성을 구해라 형제도 없는데..... 하셨습니다.
또 한가지 반대하셨던 이유는 얼굴이 예쁘고 고집이 쎄게 생겼다는것 이었습니다.
그러시면서 네가 순진해서 한번 사귀고 결혼을 할려고 하는데
부모들 소원이니까 < 선을 한번만 > 보라고 하셨는데 .... 저는 결혼할 여자가 정해졌으니
다른 여자를 만날 이유가 없다고 그 말씀까지 거절했습니다.
우리는 결혼전까지 순결 했었고 두사람 다 부모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결혼 12 년차에 이혼을 했었습니다.
영원히 변치 않을것 같은 젊은날의 사랑도 변하는 환경속에서 예수가 없으면 장사가 없었
습니다. 육으로 만난 결혼은 결코 거룩할 수가 없었습니다.
리브가와 같이 히브리인들은 눈에 보이는 부모 순종을 통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순종하는 법을 배워갔습니다.
더불어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을 보존하는 측면에서 신앙적인 부모가 신앙적인 상대자를
구해 준다는 아름다운 의미가 있습니다.
숙명적으로 예속적인 위치에 머물 수밖에 없는 여자와는 대조적으로 남자에게는 자신의
의견을 반영할수 있는 약간의 예외 조항이 있었습니다.
즉 총각은 자기가 사모하는 여인이 있음을 부모에게 알릴수 있었으며,
부모와 상의하지 않거나, 심지어 부모의 의사에 배치 되는 결혼을 결정할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부모의 의사를 존중 했었습니다.
결혼 문제에 있어서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는것은 전근대적인 사고의 발상이라고 할수도
있을것 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이 자신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하나님의 대권자라 할수 있는 부모에게
맡긴 신앙적인 정신만은 오늘날 우리의 삶에 반영됨이 마땅할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