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보다 매장을 .....
작성자명 [최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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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6.06
창 23 : 1 ~ 20
창 23 : 19 그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땅 마므레앞 막벨라굴에
장사 하였더라 ( 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동반자로써 그와 더불어 방황과 궁핍의 고통을 함께 했으며
약속의 후손 이삭을 보는 감격을 같이 누렸던 사라가 죽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여자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몇몇 여인
들의 빛나는 공적과 인품등이 상세히 기록 됨으로써 하나님 앞에는 모든 인격이 평등함을
암시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라는 향년 127 세라는 구체적인 연한과 죽은 장소까지 언급한것은 성경 기록상
유일한 일로써 구속사에 있어서 그녀의 위대한 역할과 인물의 고결함을 하나님께서
인정 하셨다는것 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땅에서 그녀의 역할이 다 끝나자 당신의 안식처로 부르셨습니다.
즉 아무리 독특한 삶을 살았다 할찌라도 하나님께로부터 맡은 모델의 사명이 다 끝나면
인생의 무대 밖으로 퇴장하는것이 당연 합니다.
그리고 이땅에서는 하나님의 뜻만 남아 있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장사 지냈는데 고대 사람들같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즉 갈대아
우르로 돌아가지 않고 그땅에서 장사를 지냈습니다.
그 땅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장차 그리스도가 오실때에 부활할것을 믿었기 때문에 자기도 막벨라굴에
묻혔고 이삭도, 리브가도, 야곱도 라헬도 거기에 합장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주검을 대할때면 침통하거나 슬픈 감정에 휩싸입니다.
또한 자기 자신에게 죽음이 찾아왔을때에는 공포와 절망이라는 극히 부정적인 감정에
빠지고 맙니다.
나의 양부께서도 죽음이 찾아오자 겁을 내셨습니다.
잠을 못 주무셨기 때문에 눈이 자꾸만 감기려니까 나에게 잠을 #51922;아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오른손을 양부의 가슴에 얹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문답식으로 복음을
확인 했습니다. 그러자 곧 양부에게 평안이 찾아 왔습니다.
양부께서는 이제는 잠을 자야겠다면서 눈을 뜨시면 천국인줄 아시고 예수님 만날준비
다 하시고 눈을 감으셨습니다.
이처럼 최초 인류의 범죄이래로 생겨난 죽음은 인간의 행복한 삶을 침식하고 있으며
지금도 쉴사이도 없이 인간들에게 도전해 오고 있습니다.
죽음은 분명히 범죄한 인간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징벌로써 절망적이며 파괴적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 죽음의 권세를 깨치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죽음은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일수가 없습니다.
즉 부활의 권능과 생명의 원천인 예수를 믿는 나에게는 이미 부활과 영생이 보장 되었
으며 영원한 죽음에서 제외 되었기 때문에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마땅히 변화 되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은 부정적인것이 아니라 세상적인 고통이 모두 끝나고 참기쁨과
평안이 넘치는 새하늘과 새땅으로 들어가는 관문 입니다.
아내와 이혼한후 얼굴예쁘고 외향적인 아내는 세상이 좁고 짧다면서 화려하게 살았습
니다. 그러다가 덜컥 유방암에 걸렸습니다. 유방암은 아내에게 축복 이었습니다.
암의 고통이 임박해오자, 살고 싶은 마음에서..... 죽음의 두려움에서 도망가기 위해서
나와 합칠 마음을 가졌습니다. 나는 11년 동안 재혼을 못한것이 기적이었습니다.
신학공부를 하고 목회를 해 볼려고 사모감을 달라니까 그 아내를 주신것 입니다.
그래도 애들 엄마라 고쳐주시면 목회 하겠다고 기도하고 간병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복음으로 돌아오고 구속사가 이루어져가자 암은 급속히 진행 되었습니다.
그래서 통증 클리닉인 광주 요한병원에 입원을 시켰습니다. 아내는 천사의 얼굴로
돌아왔고 소천하기 이틀전까지 병원후원에서 데이트를 했고 그늘이 없었습니다
이미 영이 회복 되어서 자유했기 때문에 죽음의 두려움이 그녀를 지배하지 못 했습
니다. 간호사들이 천주교 신자들인데 너무 부러워 했습니다.
주의 영이 있는곳에는 자유함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병상에서 이미 천국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죄많은 자기를 화장 시켜달라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자유함을 얻은뒤에는 내 말을 듣고 화장을 포기하고 매장을 택 했습니다.
성경의 인물들중에서 화장한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으며....
전도서 6장 3절 하반절이후를 보면 // 그몸이 매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
된자가 저보다 낫다 하노니 낙태된자는 헛되이 왔다가 어두운중에 가매 ~// 라는 성경
구절을 읽어 주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전능자시라 화장을 하거나 매장을 해서 썩거나 .... 능히 죽은자들을
다시 살리실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라땅이 좁으니까 화장을 하라든가, 찾아올 자손이 없고 .. 자손들이 번잡하니
화장 한다는 말은 좀 옹색 합니다.
크리스챤들은 이땅의 삶이 죽음을 향해서 치닫는 부질없는 생이 아니라 영원한 미래와
영혼을 준비하는 소중한 순간 임을 깨닫고 죽음이 이르기 전에
과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그분을 기쁘시게 해드리는것이 어떤것인지를 생각하며
영원한 내세를 이땅에서 준비해 나가야 할것 입니다.
그리고 나자신의 죽음이나 가족이나 형제의 죽음을 접할 때 인간적인 슬픔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나 거기에 너무 깊이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면 안됩니다.
오히려 부활의 아침과 영광스런 천국 잔치에 참여하여 기쁨을 나눌것을 기대하며
슬픔중에서도 믿음과 소망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크리스챤에게 있어서 죽음은 피곤한 나를 쉬게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초청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