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사랑을 가르쳐 줄 사람 없나요?
작성자명 [김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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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1.02.24
제목 : 누구, 사랑을 가르쳐 줄 사람 없나요?
성경 : 요일 3 : 11 ~ 24
하얀 도화지를 놓고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난 사랑이란 단어에 익숙하지 못하다.
뭔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 뭔가가 아리송하다.
요한은 줄기차게 사랑을 말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를(나를) 사랑하신다.
예수님은 목숨을 내어 줌으로 사랑을 표현하셨다.
사랑 받았으니 사랑하라 하신다.
말로만 하지 말고, 진실함이 담겨있는 사랑을 하라 하신다.
아주 오래 전에 정집사님이 아파서 집에서 누워 있는 분을 위하여
전기장판이 있었으면 하는 말을 하셨다.
마침 나에게 전기장판이 있어 정집사님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 전기장판은 아파서 누워있던 사람의 방에 깔리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얼마나 되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팠던 사람은 죽었다.
그 일을 나에게 말하시면서 나에게 고맙다고 하셨다.
별것도 아닌 일인데 말이다.
교회를 떠나 있을 때에도 잊을만하면 전화를 하셔서 관심을 표현해 주셨다.
작은 관심, 필요에 민감한 반응, 그리고 실천이 사랑이란 생각이 든다.
말이 아닌 진실함과 행함으로 사랑을 표현했음이 오늘 생각 난다.
혼자 살기에(아직 결혼 하지 않았기에) 반찬을 주면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서 형수님이 김치를 주기시고 하고, 아는 집사님이 가끔 덜어 주시기도 한다.
가끔 놀러가는 교회의 목사님도....
그럴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 든다.
사랑이란 것이 목숨을 내어 주는 대가가 큰 것도 있지만
사소하고 작은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사랑의 위력을 발휘한다.
청년때부터 (아직도 청년이지만)
대접을 받을 때에는 감사한 마음으로 받는다.
나중에 그 사람에게 갚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다만 갚없이 받았으니, 나도 기회가 있을 때에 값없이 줄 수 있음을 기억한다.
이런 것이 사랑이라면 참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좋다고 했으니, 이런 부분의 사랑이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로 사랑하라.
사랑은 일방통행의 길도 있지만,
아교처럼 하나가 되면 떼어 낼 수 없는 강력한 접착제의 되기도 한다.
하나가 되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서로에 대해 사랑과 헌신으로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늘려간다.
서로 사랑하라 란 말이 아직은 어렵다.
사랑, 자체가 그렇다.
앞으로 배워야 할 사랑이 많다는 것이 마음을 일으킨다.
이제 적극적으로 사랑해 보자.
관심과 필요를 주는 사랑이든
애정을 표현하는 사랑이든
아니면 헌신을 표현하는 사랑이든
열린 마음을 가지고 사랑의 세계에 빠져 보자.
하나님!
하나님 하면 사랑인데..
너무 멀리 떨어진 단어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가까이, 아주 오래 전부터
제 주변에 있었는데...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가지고 배워 보겠습니다.
요한이 왜 사랑을 강조했는지 그 이유를 알아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