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당신의 매력은 어디에 있나요
작성자명 [김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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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1.02.20
제목 : 하나님, 당신의 매력은 어디에 있나요?
성경 : 요한일서 1 : 1 ~ 10
하나님, 당신의 매력은 어디에 있나요?
요한이 당신을 소개하면서 사귈만한 분이고, 꼭 사궈야 한다고 소개를 하네요.
자신의 아들인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까지, 간절이 원하고 있다구요.
교제는 원함에서 시작된다.
교제를 원하는 자는 상대방의 기준에 자신을 맞춘다.
교제의 원함의 정도가 헌신과 희생의 정도를 결정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사귐을 원하셨다.
하지만 교제할수 없는 장벽이 생겼다.
죄라는 어둠의 장벽이다.
우리와 사귐을 원하기게 어둠의 장벽을 제거해야 했다.
하나님 편에서 말이다.
우리를 끔찍이 사랑하시기에 자신의 아들을 희생하는 대가를 지불하셨다.
예수님으로 인해 죄의 장벽이 사라지고 교제할 수 있게 됐다.
하나님은 원하시지만 인간도 하나님 만큼 사귐을 원할까?
사귐을 원한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사귈 수 있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사귀고 싶은 마음의 정도 크면 클수록 상대방의 기준에 맞추려고 노력을 한다.
사귀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누워서 떡먹는 것처럼 쉬운 조건이라도 지킬려고 할까?
아니, 사귀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상대방이 원치 않는 일을 서슴없이 할 것이다.
하나님과 사귀고 싶지 않다면,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를 더 많이 지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과 사귀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나는 예수님과 사귀고 싶은 갈망이 있는가?
단지 습관적으로 사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죄에 대하여 둔감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행동이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면서 어두운데서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않는다.
하나님과의 사귐을 갈망하지 않기에 그렇다.
하나님과 깊이 사귀고 싶으면 하나님이 싫어하는 어둠의 세계를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결국 어둠 속에 죄를 짓은 것은 하나님과의 사귐에 관심이 별로 없음을 행동으로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나는 하나님과의 사귐에 대한 마음은 어떨까?
원함은 있지만, 갈망의 수준은 아니다.
그래서 약간의 죄도, 아니 좀더 큰 죄를 지어도 회개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
갈망의 수준이 아니기에, 매달리는 수준이 아니기에 하나님은 내 마음의 변방에 머물러 있는지 모른다.
왜 원함의 수준에 머물고 있을까?
왜 더 깊이 더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지 않는 걸까?
하나님을 포괄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두리뭉실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기에 생활 속에서 예수님을 알지 못하기에 그렇다.
한 마디로 애기하면..
하나님의 매력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정말 매력이 별로인 분일까?
위로자가 되시고, 보호자가 되시고, 안내자가 되시고 능력자가 되시는데 말이다.
수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하나님의 매력에 빠져 자신의 생을 걸었는데 말이다.
매력은 찾을 때에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관찰하고, 생각해 보고, 마음에 담아 둘 때에 매력을 알 수 있다.
결국 구체적인 하나님, 섬세하신 성령님, 말씀이신 예수님을 조금 밖에 알지 못함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이제 하나님의 매력을 찾아보자.
하나님께서 나와 교제를 갈망하시는데,
나도 하나님과의 사귐을 갈망하는 수준까지 가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노력하신 만분의 일이라도 애써보자.
구체적인 앎이 매력을 알 수 있는 길이다.
깨달은 말씀을 적용해 볼때에 그 힘을 알 수 있다.
하나님!
이제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삶에 적용하여
하나님의 매력을 찾겠습니다.
사귐에 대한 갈망이 죄를 처리하고 싶은 마음으로 연결되겠지요.
그러면 자신의 생을 모두 맡긴 믿음의 선진들의 뒤를 따라 갈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