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에 찾지도 않는데 왜? 나만 홀로...!!??
작성자명 [김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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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5.25
무관심에 찾지도 않는데 나만 홀로...!?<창>16;1~16
벌써 4년이 지났는데...
내가 어디서 무얼 하는지
내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고 찾지도 않고 있는데
나만 홀로 저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애통한 마음으로 저들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결단을 준비하는 것은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지난 날 빈털터리로 맨 몸 되어 거리로 내 쳐졌을 때
막내 여동생으로부터 공동의 명의로 된 한통의 [멜]을 받았었습니다.
내용이 하도 기막히고 분하여 잊었습니다마는
그 중심은 이랬습니다.
이혼하는 데 보증인으로 동의했다고
그렇다고 기댈 생각은 말라고
언감 생심 도움을 받을 생각도 말라고
자신들의 시댁에서 알게 될까봐 그렇고 조카들 보기에도 창피하니
연락을 하지 말라고
초라한 꼴로 나타나지 말라고
(주님! 아시지요, 저들이 다 집사요 권사들입니다)
정말이지 아내의 배신에 대한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정말로 억울하고 분했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혈육들이 있을 수 있는 건지
이럴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혼자 몸에 하소연할 곳도 없었고
지치고 곤한 몸 이슬 피할 곳도 변변치 못한 그 신세에
참나! 참나! 만 연발하며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족의 위기에 있었습니다.
아내에게 쫓겨났을 때도 영적인 문제로 해석하여 기도원에 올라갔는데
평생을 지지고 볶으며 함께 살아온 혈육들에게 당한
이 저주와 배신은 정말이지 나를 실족의 위기까지 내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분한 마음에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속으로나마 마음대로 욕을 해댈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도 그냥 처절하게 속으로 삭이며
그 억울함을 골방에서 하나님께 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서둘렀습니다.
뭔가를 보여주어야 하겠기 때문에 서둘렀습니다.
골방에서 인내하며 기다리고
말씀을 묵상하여 QT했지만
적용을 잘못하고 시행착오를 거듭했습니다.
성급한 마음으로 내가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나의 길을 여호와께 의지한다고 입술로는 고백하면서도
하나님을 기다리기 보다는 사람을 기다리고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하지만 일은 잘 되다가 꼬이고
열리는 것 같다가도 오히려 더 나쁜 지경으로 내 몰리고
그래도 또 잘못적용으로 또 실수하고
응답의 시간은 자꾸만 연장되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정말이지 몰랐었습니다.
우리들 호에 승선하고
내 잘못이 더 크고
내가 100% 죄인이고
모든 게 내 삶의 결론이다. 라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이렇게 많이도 서두르고 인내하지 못하고 허둥댔습니다.
세월은 흐르고 나이는 먹어가고
초라한 내 신세는 허리 펼 날이 없고 아이들은 보고 싶고
그냥 이렇게 내 인생이 끝나는 거 아니가하는 생각으로 초조했었습니다.
사래가 바라본 아브람이 그랬을 것입니다.
아브람도 늙었지만
자신도 나이 먹고 늙었는데
아무리 하나님께서 자식을 준다고 언약하셨지만
인간의 인본주의적 잣대로는 도저히 믿기지는 않는 일이고
그래서 자신의 몸은 아니라 할지라도
아브람의 자식이면 되지 않겠나하는 생각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늙어 쇠하여 가고 있다는데 대한 더한 초조함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래서 잘못 적용을 하고는 하갈을 취하게 하였는데
이 불순종의 적용이 엄청난 재앙의 결과를 낳는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스마엘=>오늘날 아랍 문화권의 형성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고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한 중동 분쟁의 화약고를 만들었고
이슬람, 무슬림의 연합과 이스라엘의 대립이 가져오는 재앙의 씨앗이
전체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는 지경까지 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사래 한 사람의 잘못된 적용이 이토록 장래의 후손들에게까지...
하나님의 저주는...
그런데 이 저주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데 전율을 느끼면서...
오늘도 나의 죄를 바라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잘못된 적용의 결과를 굳이 사래의 경우에서 찾지 않더라도
주님의 주신 물과 불로 인해 충분히 인식했기에
또 우리 목사님, 어제 수요일 12;3절 말씀으로
나를 저주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저주가 임한다는 적용을 듣고는
급한 마음에 관계 개선의 결단을 더 이상 늦출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는데
머리로는 자꾸만 그러라고 하지만 마음은 아직 열리지를 않는 것이 저의 고민입니다.
이것이 왜 이토록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깨지지 않아서일까요?
내가 변하지 않아서일까요?
내가 사랑이 부족해서일까요?
내가 영혼에 대한 애통함이 부족해서일까요?
지난 명절에 아들을 보내서 나의 근황을 묻거든 알려 주라고 했는데
묻지도 않더라는 데
관심도 없고 찾지도 않더라는 데...
내가 앞서서 다가가기는 좀 하는 이 생각이
나의 열등감인지 자존심이지 도통 헷갈리는 게 어지럽습니다.
내 아들 딸들을 통한 믿음의 계보를 잇게 하기 위해서는
나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자꾸만 말씀하시니 순종하여 실천 적용을 하기는 해야 합니다.
그러나 망설여집니다.
오! 주님!!!
어찌하오리이까?
겸손은 내 몸만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앞에서 내 잘못을 보고 나의 죄를 깨닫는 것이라는 데...
주님! 민망히 여겨 주시옵소서.=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