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작성자명 [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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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5.14
거룩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지난 한 주간 동안 부족한 중에서도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감사하며 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옷깃을 여미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주님 앞에 나아온 우리 모두에게 하늘의 은혜와 축복을 내리워주옵소서!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양식으로 우리들의 삶ㅅ혹에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다가오는 한 주간도 승리하며 살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 그 성내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좇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좇는 자도 있는지라.>(행14:3~4)
표적과 기사를 주신 목적은 전하는 기쁜 소식이 하나님에게서 온 은혜로운 말씀임을 확실히 증거해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나 같이 어리석은 자에게 묵상을 하며 올리는 것 자체가 오직 주님의 은혜이며 기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나 자신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이 표현은 맞습니다.
나를 인도하신 주님께서는 복음전파에 분명한 뜻이 있어 나를 준비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주님은 말씀을 통하여 사람을 세워가며 복음을 전하는 일꾼으로 양육할 것입니다.
복음이 전하여 지자 유대인을 좇는 자와 바울을 좇는 자로 구분이 갔습니다.
우리들이 복음을 전할 때에도 받아들이는 자와 반대하는 자들로 구분이 될 것입니다.
주님이 택하신 자들이 있기에 오늘도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자 합니다.
<바나바는 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허메라 하더라.
성밖 쓰스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12~15)
루스드라에 있는 사람들은 바나바와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을 제우스신과 그 대변자로 부르고 그들을 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려고 합니다.
이에 대하여 바나나와 바울은 분노를 나타내며 창조주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합니다.
우리들에게 준 은사와 축복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니고 복음전파를 위해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면 자신에게 그 것이 돌아갈 것이고 복음을 방해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이 나 자신이 너무 어리석고 연약하기 때문에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겸손이어야 함을 배웁니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에 끌어 내치니라>(19)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바 주께 부탁하고>(22~23)
사도행전 기자는 바울이 돌로 맞고 거의 죽은 상태에 이른 것을 한 줄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복음은 단순한 것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데 는 대가지불이 있음을 봅니다.
사도 바울이 죽음을 무릅쓰고서도 복음에 헌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이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또한 복음을 전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제자로 삼았다고 말씀합니다.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줌으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였을 때 공동체에서 잘 양육시키도록 하거나 인도자가 스스로 양육을 시켜 복음의 진수를 가르쳐 주어야만이 참된 복음 전파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과 초신자들이 잘 적응하도록 하는 것이 공동체와 우리들의 몫입니다.
주님을 믿고 따라가는 좁은 길에 대하여 묵상하도록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나의 육체는 늘 편안하고 안락한 것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말씀을 통하여 이것이 주님을 따르는데 방해가 됨을 배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