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의 계보/창5:1~323박자 축복(생명, 자녀, 소유)으로 만루 홈런을 친 교회가 있는 것을 보면
불특정 다수가 현세적인 복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하긴 내 분신들이랑 돈 펑펑 쓰고 오래오래 장수한다면 이를 마다할 바보가 어딨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는 복이란 장수나 물질 같은 현세적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계속해서 셋의 족보와 가인의 족보가 대조를 이루면서 기록되고 있는데
아마도 이 두 나라는 대결 구도로 요한 계시록까지 갈 것 같습니다.
성경을 문맥중심으로 읽어 보면 구속 사건이 실현 될 때 까지는 문자적인 적용과
문자적인 이스라엘로 설명하다가 예수님의 출현으로 실체가 드러나면서부터
그림자는 사라지게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보니 장수와 물질적인 축복의 경우에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보아야할 것 같습니다.
적어도 창세기 5장에서는 장수가 축복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아벨이나 에녹
때문입니다.
가인이나 라멕처럼 살 바엔 하루 빨리 죽는 것이 낫고
만약 에녹처럼 산다면 필요한 만큼 사는 것으로 족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언약 안에 있는 자들에게
생명과 자녀와 소유의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내가 가인의 후예들처럼 세상일에 분주하기 때문에
主와의 동행이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을 용서하옵소서.
부질없는 축복 때문에 머리가 되려고
이웃에 비수를 대는 경쟁 가운데 우리 자녀를 두었사오니
주님, 불쌍히 여기셔서 굽어 살펴 주옵시고
부디 내 자녀를 경쟁 가운데 내려놓는 믿음을 주옵소서.
2006.5.9/헤세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