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작성자명 [박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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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5.08
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지난주 예배를 마치고 맑은 공기를 쐬고 싶어서
산으로 갔습니다.
좋아하는 힐송의 워십송을 틀으면서
차가 막혀서 기다리는 도중에 한 오토바이가 눈에 띄었습니다.
머리를 뒤로 묶고 선글라스를 낀 외국인이었습니다.
순간 가슴이 뛰고.. 여러가지 옛날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때 헤비메탈에 빠져 지냈습니다.
뮤직 비디오를 전문으로 틀어주는 음악다방(지금은 촌시럽지만) 을 학교가 끝나면 종종 들려서
강렬한 헤비메탈 음악과 헤비메탈 밴드들이 보여주는 쇼맨쉽에 흠뻑 취해서 살았습니다.
머리가 허리까지 늘어지고
금발머리에 날씬한데다 키도 크고
아름다운 꽃미남들
(마치 지금의 이준기가 보여주는듯한 묘한 분위기)
이 연주하는 강렬한 사운드는 마치 마약과도 같았습니다.
나중에..
헤비메탈 밴드들이 얼마나 사탄적이고.. 그 가사들이 얼마나 사탄적인지 알게 되었을 때
가지고 있던 테잎과 음반을 다 처분하고 다시는 듣지 않았지만..
그리고 지금은 생각만 해도 헤비메탈이 역겹게 느껴지지만.
고등학교 때 빠져 있었던 죄의 잔재들이 강하게 남아 있나 봅니다.
비록 헤비메탈은 버렸지만..
헤비메탈이 가지고 있던 사탄적인 특성은 여전히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나 봅니다.
사탄적인 특성은
자아도취입니다.
음악을 통한 자아도취입니다.
이런 헤비메탈 음악등을 통해서.. 자신을 예배하는 자아 도취의 죄가 제안에 들어오게 되었고 이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나 봅니다.
영국에서 빈야드 교회에 간적이 있었습니다.
찬송가 몇장을 부르겠습니다.. 는 예배만 드렸던 저는
빈야드 교회에서 대단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유분방한 예배와 기름부음보다도
가장 끌렸던 것이
그들이 드리는 찬양이었습니다.
반바지 차임에 머리도 긴 밴드들이
거의 헤비메탈 수준으로 연주를 하는 것이었고..
사람들은 방방 뛰며 자유스럽게 찬양을 했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열심히 찬양을 하는 척 했지만..
사실은 잘생기고 머리가 긴 기타 연주자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외국 사람에 대한 환상이 있는데다가..
그 잘생긴 외국 사람이 좋아하는 기타까지 연주하니
뿅 간 셈이었습니다.
마침 교회 소풍때 그 잘생긴 머리긴 기타 연주자와 같은 돗자리에 앉아서
이게 웬 떡이냐 싶었는데...
하여간 촌사람인 저에게..
외국사람들은 먼가 특별하게 보였습니다.
그들이 #50172;라 #50172;라 얘기하는 영어도 먼가 음악적이고 특별하게 들리고.
금발에 푸른눈도 그렇고
한국 사람들처럼 경직된 것이 아니고..
부드럽고 매너좋고 권위적이지도 않고 감정표현도 잘하고 자유 분방한
그들이
촌 사람 눈에 동경의 대상 이 되었습니다.
동경의 대상들이
제가 한때 빠져 들었던 장르의 음악을 연주하니..
오 이것이 바로
천사장 루시퍼 구나 싶었다고 생각했다면 얼마나 지혜로왔을까마는
그냥 무조건 좋은 것이 좋은 것이지 하면서 빠져 들었습니다.
영국 사람들은 그래도 덜한데..
나중에 미국 사람들이 연주하며 예배하며 생활하는 것을 봤을때..
아무 분별없이 무조건 다 좋은것이 좋은 것이지.. 하면서 그대로 흉내내려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미국 사람들 특유의 교만함(?) 이라고나 할까.. 하여간 거시기한 것들이 미국 사람들에게 있는데.. 촌사람인 저는 그냥 무조건.. 그들을 우러러 보며 그들의 생활 방식을 따라 하려 했습니다.
촌사람인 저는.. 젯밥에만 정신이 팔려서
예배의 본질을 놓치고 거시기 스러운 것들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때 헤비메탈을 들으며 자아 도취적인 죄에 빠져 들었던 저는
찬양 예배를 통해서도 자아 도취의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예배하기 보다
예배를 인도하는 잘생긴 찬양 리더를 예배했고
주님을 예배하기 보다
자극적인 사운드를 예배했고
주님을 예배하기 보다
방방 뛰는 분위기를 예배했습니다.
저는 한국에 와서도..
그때의 그 예배를 못잊어서
딜러리어스니, 빈야드니.. 하는
외국 워십 씨디만 열심히 사모으고 들었습니다.
겉으로는..
이런 외국 찬양에 얼마나 기름부음이 있는데.. 했지만..
실상은
과거 헤비메탈을 통해서 누렸던 자아도취적 쾌감 을
딜러리어스 등의 음반을 통해서 다시 재현 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영어와 외국 생활에 대한 동경도 떠오릅니다.
한국에 와서도
마트같은데 가면.. 치즈 코너 같은데 가서.. 그때 맛을 들였던 치즈등을 찾고..
영어를 할때도 유난히 더 혀를 굴리고..
음식도 그 때 먹었던 음식등을 찾아서 요리하려 하고.. 기타 등등..
외국 사람 만나면 괜히 더 반갑고..
촌사람이 외국에 갔었던 본질은 잊어버리고..
외국에 대한 거시기스러운 동경들은 안잊어 버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