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작성자명 [김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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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1.01.22
마가복음 7장 24-37절을 보며, 자존심을 묵상한다.
귀신들린 딸을 위하여 예수께로 나아온 수로보니게 여인.
간절한 심정으로 예수를 찾았지만,
정작 만난 예수님은 자기에게 박대하셨다.
사람의 면전에서,
너는 개다.
나는 개는 상대하지 않는다.
사람을 구하려고 왔지 개를 살리려 온 것이 아니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어미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정말 어이가 없었을게다.
생각지도 못했을 일이다.
사랑의 예수님, 자비의 예수님, 인자와 긍휼의 예수님이
어떻게 이러실 수가 ..
하지만 그녀는 감수했다.
딸을 위해서라면,
딸만 고쳐주신다면 나는 개가 되어도 좋다.
백번 개가 되어도 괜찮다. 딸만 고침을 받을 수 있다면..
그런 생각을 했던 게다.
어미 마음이다.
어미 마음은 그렇다.
목숨보다 더 귀한 자식을 위해서라면
개는 커녕 그보다 더한 욕을 들어도 참을 수 있다는게다.
예수님은 그 심정을 보셨다.
자존심..
예수님 앞에 나아올 때 마지막 자존심 하나까지 버릴 수 있는지를 보셨다.
알량한 자존심때문에 눈앞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도 못만나지는 않는지 시험하셨다.
오늘 하나님은 나에게도 말씀하신다.
예수께로 나아가는데 방해되는 자존심이 무언가.
하나님을 만나는데, 말씀을 순종하는데 방해되는 자존심이 무엇인가.
내가 먼저 전화하고,
내가 먼저 인사하며,
내가 먼저 웃어주는데 방해가 되는 자존심,
그 알량한 자존심을 버릴 수 있겠는가.
그것때문에 예수님을 만나는데 심대한 방해가 된다면,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그 자존심 홀랑 벗어버릴 순 없겠는가.
그렇게 물으신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자존심을 버리는 일이다.
예수를 만나기 위해서,
그분의 능력을 힘입기 위해서도 자존심은 버려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열등감으로 둘러싸인 자존심,
그 자존심을 버리기가,
그 돌처럼 단단한 자존심을 깨뜨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래서 오늘도 또 아버지를 부른다.
하나님의 영,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토욜의 아침을 또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