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의 신학적 의미
작성자명 [심 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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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5.06
창3:14-24
인간이 어떻게 해서 농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요?
인류학적으로 농업의 시작에 대해 이론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 말씀에 농업의 시작을 신학적으로 보게해 줍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
나무의 실과를 손으로 따먹었던 것은
채집행위로서 매우 간단하고 손쉬운 생계방법인 것 같습니다.
별로 힘안들이고 먹는 것을 해결할 수 있으니깐요.
그런데 죄로 말미암아 먹고 사는 것이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죄로 인해 채집에서 농사로 인간의 생계방식이 바꾸어졌습니다.
굉장한 변화입니다. 혁명적인 변화입니다.
무엇보다도 농사지으려면 토지가 있어야 하는데
토지를 갈기위해 잡초와 엉컹키를 걷어내야 하고 심지어 산악지대에서는
숲에 불을지르고 나무를 잘라 농지를 만드는 고달픈 작업을 해야 합니다.
좀 힘들고 수고스러우면 이내 힘들어하는 제 자신의 모습에서 땀흘러 수고하며
사는 것이 고통이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고통의 원인이 우리의 죄/나의 죄로 말미암을 보게되니
고통을 겸험히 수용하는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죄인은 마땅히 복역을 치루어야 하니깐요.
고통과 고난은 우리의 죄로말미암은 복역(服役)과도 같습니다.
복역을 달게 받는 자세보다 어찌하든지 보석(保釋)과 같은 방법을 이용하여
고통을 요리조리 피해보겠다고 하면
오히려 고통속에 함께하시며
우리들의 눈물을 딱아주시는
깜짝놀라만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고통속에서 많은 고독을 느낍니다. 갈등과 수치와 염려들...
그러나 우리의 작은 신음소리까지
외면하지 않으시는 천부의 보살피시는 따뜻한 배려가 있습니다..
손수 가죽옷을 지어입혀주시는
우리의 천부여, 나의 천부여, 아버시시여, 주재시여
나의 인생이
가시덩굴같은 인생임을 한시라도 잊지 않게 하시어
이 세상이 더 이상 에덴이 아님을 알게 하시고
현재의 나의 삶의 여건을 겸허히 받아드리며
진정한 농부되신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역동(力動)의 천부께서
계기를 주실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릴 수 있는 인내를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