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작성자명 [이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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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1.01.06
포도주는 묵은 것을 수록 좋다고 합니다.
오래된 포도주일수록 값도 비쌉니다.
그래서 포도주를 오래 보관할 방법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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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를 새로 담그면 발효 가스로 인해
포도주 통 속의 압력은 높아집니다.
그때 포도주를 담은 통이 탄력이 있어 발효하는 압력을 감당하면,
그 속에 있는 포도주는 오랜 시간 보관되어 좋은 포도주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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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사회에서는 포도주를 가죽으로 만든 부대에 담아 보관했습니다.
포도주를 새로 담아서 딱딱한 헌 가죽부대에 담으면,
포도주에서 나오는 발효 가스를 감당치 못하고 터져버립니다.
그래서 새 포도주를 담글 때는 새 가죽 부대를 준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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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게 된 이유는
두 가지의 사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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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당시 서기관들의 메시야 관은 예수님과 달랐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메시야가 오셔서
의인들과 함께 유대 땅을 구원하는 일을 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세리와 창기와 죄인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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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세례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금식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본 사람이 질문을 했습니다.
“혹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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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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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의인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죄인을 불러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세리와 창기와 죄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메시야 관과를 달랐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바래새인들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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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나니”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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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금식은 그 사람의 신앙 척도였습니다.
원래 금식은 일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 당시에는 월요일과 목요일 두 번 금식을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경건한 사람의 표시처럼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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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예수님은 금식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시 신앙의 기준으로 보면 예수님은 경건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혹)이 예수님께 와서 질문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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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도 잔치에 참여하면 금식의 법에서 자유롭게 됩니다.
신랑과 함께 즐거움에 참여하며 축하하기 위해서
금식을 하지 않는 것이 또한 경건한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의 관례를 가지고 새로운 시대를 설명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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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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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가 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새 시대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는
과거 율법 시대의 틀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방해하고 대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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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베 조각이 헌 옷에 붙으면
생베의 신축성으로 인해 옷이 찢어집니다.
새 포도주를 딱딱해진 헌 부대에 넣으면
포도주 발효의 역동성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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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시대는 의인이 부정한 죄인이 되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노력했습니다.
새 새대는 부정한 죄인을 의롭게 합니다.
그것을 위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리, 창기, 죄인을 찾아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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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시대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율법의 틀로는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새 시대의 법을 담은 옛 시대의 부대는 터져 버렸습니다.
그런 예수 그리스도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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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자연인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찌 2000년 전 유대 땅에 있었던 청년 예수가
우리와 그렇게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믿기 어렵습니다.
예수를 믿어야 구원 받는다는 말을 믿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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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가지고 있는 틀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배운 지식으로는 받아 들일 수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함께 하셔야 이것이 이해됩니다.
현대인 역시 새로운 시대의 법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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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는 다는 것 자체가 새 시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새 시대의 선포는 예수님 당시뿐 아니라,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입니다.
옛 시대(율법시대사람, 자연인)의 사람들에게
예수님으로 인한 새 시대가 선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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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 안에 들어 온 것이 축복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기적이고 축복입니다.
새 시대의 풍성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새 시대의 능력을 증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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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를 누림을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구원을 누림을 감사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새 시대를 증거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