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흑암과 빛
작성자명 [최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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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5.01
창 1 : 1 ~ 13
창 1 : 2 땅이 혼돈하며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 하시니라
내가 처음 예수를 믿고 성경을 보면서 처음부터 성경이 문자적으로 믿어졌습니다.
광주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칠때 초신자는 요한복음부터 읽으라고 해서 시키는데로
요 1 : 1 을 폈더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 이라고 하셨고 말씀은 즉 예수님 이셨습니다.
그런데 그후에 읽은 창 1 : 1 에 태초에 하나님이 즉 성부, 성자, 성령께서 천지를 창조
하셨다고 하셔서 그 말씀이 그대로 믿어지는 기적이 내 심령 가운데 일어났었습니다.
그런후 나는 예수만 믿으면 만사형통을 이룰줄 아는 기복 신앙에 빠졌습니다.
온전치 못한 반쪽 복음 이었습니다.
예장(통합) 신학을 공부 하면서도 부흥사가 시무 하시는 교회를 다녔기에 기복적인것을
완전히 벗었다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이 혼돈과 공허가 가득한
시절 이었습니다.
사업을 한두번 실패 할때는 이유가 있어서 실패 했겠지 하며 지나갔지만 일곱 번까지
망하게 되자 내 열심마져 무너졌고 나는 흑암중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첫 사업의 실패로 아내가 고무신을 거꾸로 신고 가버린것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연애결혼을 했고 양가의 반대까지 무릎쓰고 했던 결혼이며 아들, 딸 낳고
잘 살다가 한번 사업에 실패 했다고 가정을 파괴해 버렸던 아내를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처가의 큰처남이 암에 걸렸을때 나의 수고가 얼마나 컸는데
나에게서 등을 돌린 처가 또한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와 아내가 전도했던
처가.... 우리 셋째 사위는 업고 다녀야 한다고 칭찬이 자자 했던 나를 장모님이 앉혀놓고
자네 사업해서 진 빚은 도저히 갚을수 없을것이네 하면서 이혼해주소... 라고 눈을 내리
깔고 말하시던 그 모습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혼돈과 공허 였습니다.
아내가 11 년만에 살려고 돌아오고 가정은 회복이 되었지만 이내 소천했고 그뒤 10개월이
지나지 않아서 딸이 집을 팔고 처가로 숨은 뒤 나를 떠나 버렸을때 내 심령은 그야말로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그래도 신학도 하고 20년 이상 주일성수 하면서 들었던 말씀이 있어서인지 처가도 딸도
미워하거나 증오하지는 않았지만 문제가 해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럴수가 있을까 ?
말도 않돼.... 세상에........깊은 한숨만 나왔었습니다.
그러던것이 2004년 10월 24일 우리들교회에 온뒤로 이 모든 것이 일시에 해석이 되었
습니다. 말씀으로 해석이 되자 내 심령에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내가 악하고 음란 했기 때문에 아내가 나를 버린것이었고, 동업자들이 나를 배신하는
수고를 했고 딸도 아버지의 거룩을 위해서 가출을 했던것 입니다.
어제 주일설교에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지혜로운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싸인에 민감하라는 첫 번째 말씀에 꽂혔습니다. 나에게 온 감동은 5 년째 돌아오지 않는
딸 이었습니다.
내죄가 얼마나 중대하면 아내가 11년만에 돌아왔다가 이내 소천하고 딸마져 연락할수도
없이 숨어버렸을까 ? .... 내가 딸에 대한 애통함이 부족한것이 생각나서 눈물이 범벅이
되었습니다.
예쁜 딸이 얼마나 수고를 하고 있을까 생각하니까 가슴이 미어지는것 같았습니다.
딸은 결혼 기념일날 태어났습니다. 그날은 내가 교보생명의 최연소 영업국장대우
실습소장 으로써 영업소장들을 교육한후 첫달 마감을 하던 날이었습니다.
남들은 거의 40 대 중반에나 할수 있는 직책을 딱 30 살에 역임을 했기에 내 열심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믿음도 없이 출세가도를 달리다 보니까 가정을 소홀히 했고
자연스럽게 딸도 소홀히 했다는 말을 처가로부터 듣기도 했었습니다. 아빠를 유난히
따르던 아들에 비해서 말까지 늦게 터지는 바람에 딸을 미워한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귀했던 거버 이유식을 먹이고 후에는 이틀마다 과일을 잔뜩 사다가 나르는것이
딸 사랑인줄 알았습니다. 딸을 대리 만족할려고 했던 아내는 내가 첫 사업에 실패했음
에도 불구하고 사립초등학교에 입학을 시켰고 돈 가져오라는 성화에 끼고있던 결혼반지를
팔아서 입학금을 주었었습니다.
사업의 길이 열려서 서울로 올라온지 6 개월만에 이혼을 해주었고 ( 약먹고 죽는다고해서
죽는것 보다 나을것 같아서.... ) 그 뒤 1년뒤에 아들과 딸을 서울로 불러올려서 살림해주는
할머니를 모시고 후암동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딸이 학교에 갔다가 오더니 피검사를 했는데 자기는 A 형인데 아빠는 무슨
형이냐고 해서 나는 또다시 인생의 흑암을 맛 보아야 했었습니다.
내가 B 형이고 아내가 O 형이고 아들도 B 형인데 딸만 달랐습니다. 피형에 돌연변이는
없다고 배웠는데 과학이 나를 속였습니다.
아내가 나를 버리고 가버린것도 죽여 버리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었는데 딸마져 피가
다르다면 언제부터 아내가 부정했단 말인가 생각하니까 피가 거꾸로 돌아가는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어린 딸에게 내색도 못하고 지옥같은 날들이 흘렀습니다.
초 4 때였던 딸이 초경을 시작했고 나는 너무 힘들어서 서울있던 처형에게 연락을 했고
딸을 광주로 보내기로 합의를 했었습니다. 그런후 딸이 대 1 때 우리가 합치게 되었고
아내는 4 개월만에 소천하면서 딸에게 그렇게 간곡히 아빠 말씀을 잘들어야 한다고 당부
했지만 딸의 깊은 심령속에 있던 아빠에 대한 불신으로 떠나버린것 입니다. .
그런데 2004년 의학계 발표에 의하면 O 형 피가 잠재적으로 탁해졌을때는 모르다가
A 형이나 B 형인자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충격적인 보고서 였습니다.
내가 워낙 불가항력적 사안이 많은 사람이라지만 그런것이 또 딸에게 나타난것 입니다
내가 예수 사랑이 부족 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 입니다.
내가 딸을 진실로 사랑 했다면 피가 다르다고 광주엄마에게 보내지 않았을것 입니다.
내 신앙이 기복적이었기 때문에 그리된 슬픔 이었습니다.
3부에배에 참석해서 청년들의 나눔을 들으면서 청년들의 아픔을 많이 체휼할 수가 있었
습니다. 청년들을 보면 아들보다 딸 생각이 더 납니다.
딸을 많이 보고 싶고 만나서 밤을새며 얘기 하고 싶고 안아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딸에게 무릎을 꿇고 못난 아버지를 용서하라고 빌고 싶습니다.
과학은 핑계댈수 없는 비본질입니다. 나의 예수 사랑이 없음을 통회자복하며 회개합니다
내가 나의 악하고 음란한것을 철저히 회개 할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으실것 입니다.
그때라야 빛 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내 심령중에 내주 하실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