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세 있는 새 교훈
작성자명 [이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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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1.01.03
사람들은 권세를 가지려고 합니다.
권세란 국어사전에서 이렇게 정의합니다.
“권세는 권력과 세력이다”
권력은 남을 지배하여 강제로 복종시키는 힘이고,
세력은 남을 누르고 자기 마음대로 행할 수 있는 힘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권세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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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 일러라”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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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에 회당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사람들은 놀라며 말했습니다.
그 가르치시는 것이 서기관들과는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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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사람들은 서기관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서기관의 설교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했습니다.
서기관들은 율법의 규칙을 만들어서 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규칙을 말하고 그것을 가지고 재판하여 사람들에게 벌을 주었기에
그들의 말에는 감동과 은혜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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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을 달랐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그 앞에 굴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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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귀신이 주님 말씀을 듣고 그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악한 귀신이 예수님 말씀을 듣고 떠나갑니다.
귀신들린 사람은 예수님을 통해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권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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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은 규칙과 벌칙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선포되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로인해 악한 영들이 떠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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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포되는 메시지에 규칙과 벌칙만을 있으면 곤란합니다.
은혜와 기쁨은 간 곳 없고 율법만 있다면 소망이 없습니다.
은혜가 사리지면 억압과 두려움만 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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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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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관심은 귀신이 힘이나, 귀신의 지식에 있지 않습니다.
귀신에게 고통당하는 영혼에 있었습니다.
사람을 괴롭히며 고통스럽게 하지 말고
당장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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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초점은 한 영혼에 대한 관심입니다.
이것이 사람을 변화시키시는 권세있는 새 교훈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의 겉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멀리 하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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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주님은 그 속에서 고통당하는 영혼을 보셨습니다.
귀신 들려 겉모습은 비록 더럽고 초라했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영혼이었습니다.
정죄하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시어 회복시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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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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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라는 말은 “행하게 하는 힘, 권위”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행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변하게 하는 힘이 있고, 새롭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권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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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은 새 교훈입니다.
여기서 새롭다는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새롭다는 뜻의 카이노스 라는 단어는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닌 하늘로서 온 것” 으로 해석합니다.
고후 5:7에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을 때,
옛 성품을 조금 보완하는 것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성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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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새 교훈은 귀신들린 사람을 새롭게 했습니다. (23-27)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침으로,
질병도 주님께 순종하는 권세있는 말씀입니다.(29-31)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들을 치유하시고,
새롭게 하는 능력의 말씀입니다.(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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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있는 새 교훈은 예수님의 등장과 함께
마가복음 서두에 등장하는 중요한 내용입니다.
권세있는 새 교훈은 정죄가 아닌 사랑입니다.
겉 모습이 아닌 영혼의 내면의 아픔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권세있는 새 교훈은 사람은 완전히 새롭게 하는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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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주님의 권세 있는 새 교훈을 누리기 원합니다.
권세 있는 교훈으로 인해 나를 얽어매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유하기 원합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