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소문으로 들릴 때에
작성자명 [김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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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4.18
제목 : 말씀이 소문으로 들릴 때에..
성경 : 마28:11-20
요즘 꿈을 자주 꿈다.
꿈을 꾸기 위해 늦잠을 자기도 한다.
꿈이 생생하게 다가 온다.
살아있는 것처럼 다가온다.
# 꿈1
공중에 낚시줄이 길게 이어져 있다.
큰 물고기를 잡을 때에 쓰는 낚시줄이다.
가로 세로 엮인 것이 아니기에 그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길이가 70-80센치는 족히 되어 보이고, 몸집도 통통한 물고기들이 걸려있다.(잡힌 것이다.)
심심치 않게 큰 물고기들이 낚시줄에 걸려 공중에 떠 다닌다.
그 줄을 따라가보니 어떤 여인이 낚시줄을 잡고 있다. 그 옆에 다른 여자도 보인다.
나는 아는 전도사님과 함께 어디론가를 향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 꿈2
어떤 자매가 나를 부른다.
10년 전, 선교 훈련을 받을 때에 함께 훈련을 받았던 자매가 생각났다.
홍 00자매는 결혼을 했는데...
연인을 기다리는 듯이 내 마음이 뛰기 시작했다.
말레이지아로 오세요. 라고 하면서 말레이지아 여인이 나를 부른다.
정확히 생각이 나지 않지만 개구리가 슬피 우는 꿈도 꾸었다.
군에 있을 때에 고참이 나오는 꿈도, 어릴 적 친구도 등장한다.
요즘은 꿈을 자주 꾼다. 그것도 생생한 꿈을 꾼다.
#3 꿈을 해석해 본다.
공중에서 낚아지는 물고기의 꿈!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신 말씀이 떠 올랐다.
공중에서 낚아지는 물고기는 더 높은 곳, 천국으로 향하는 영혼이란 생각이 들었다.
바다의 물고기가 육지로 옮겨지고, 구원 받은 사람은 천국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큰 물고기를 낚는 어부가 여자인 것을 보고, 우리들 교회의 김양재 목사님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큰 물고기, 영향력 있는 영혼들이 낚여오는 것을 볼 때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옆에 또 다른 여자 어부가 있는 것도, 우리들교회의 여자집사님들의 힘을 말해주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딘가를 향하는 기차를, 나와 함께 기다리고 있는 전도사님은, 나에게 신학교를 가라고 하셨던 분이다.
결국 사람 낚는 일을 배워서, 나에게 주어진 낚시터를 향해 가라는 말씀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두 번째 꿈의 의미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되었다.
나의 반쪽을 그리워 하는 마음이 표현되었고, 선교에 대한 생각을 상기시켜 주었다.
결혼과 선교가 연관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말레이지아에 그 답이 있는 것은 아닐까?
어찌되었든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꿈이었다.
#4 살아있는 것과 죽어있는 것
올 해의 삶의 주제는 Live 다.
그래서 살아있다는 것에 관심이 많아졌다.
살아있는 나눔, 죽어있는 나눔
살아있는 관계, 죽어있는 관계
살아있는 물건, 죽어있는 물건
아쿠아리움 착공식에 참석해서 우산을 기념품으로 받았다.
길고 고급스러운 우산이었다. 그 우산을 보면서 옛날에 받은 우산이 기억났다.
그 우산도 지금 받은 것처럼 좋은 우산이었다.
물건은 사용되어져야 살아있는 것이다.
올 해 들어서 사용하지 않았던 물건을 사용하기로 했다.
착공식에서 받은 우산도 사용하고, 잊혀져 있던 우산도 사용하기로 했다.
차의 트렁트를 열고 우산을 보았다.
2004. 5 00의 날 기념 이란 문구가 포장지에 붙어있었다.
지난 2년 동안 티아이씨오의 트렁크 속에 죽어있었던 것이다.
추운 겨울에도, 뜨거운 여름에도, 그리고 장마철에도 그 우산을 사용되지 않았다.
사용되지 않은 우산은 죽은 우산이다. 트렁트의 무덤 속에서 지난 2년 동안 죽어있었던 것이다.
그 우산을 부활시켰다. 비가 올 때면 그 우산을 사용할 것이다.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슬픔을 주지 않기 위하여...
글도, 살아있는 글을 쓰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머리로 쓰는 글이 아니라, 가슴으로 몸으로 글을 쓰려고 한다.
읽히지 않아 이름 모를 무덤 속에 있는 글이 아니라, 읽혀지고, 말로 들려지는 살아있는 글을 쓰고 싶다.
이해되는 글이 아니라, 가슴에 스며드는 글을 쓰고 싶다.
꿈이든 생활이든 글이든 살아있는 것만 살아있는 것이다.
#5 소문과 유언
오늘 말씀에 예수님의 부활 장면이 나온다.
빈 무덤을 본 장로들이 병사들을 회유하여 소문을 만든다.
오늘날까지 두루 퍼지는 소문을 만들었다.
오늘날까지 두루 퍼지는 소문!
예수님의 시체가 도적질당했다는 소문!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결혼하여 자식을 남겼다는 소문(다빈치 코드)
예수님을 위해 유다가 희생양이 되었다는 소문(유다 복음)
소문은 불확실한 것이다. 만들어지기도 하고, 변질되기도 한다.
확인되지 않은 죽은 말이다.
믿기도 그렇고, 믿지 않기도 그런 말들이 소문이다.
예수님의 부활이 소문으로 들린다면..
성경이 소문으로 들린다면...
유언은 꼭 지켜야 할 말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제자를 삼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소문은 누가 말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유언은 중요한 사람이 한 말인 줄 안다.
그런 면에서 소문은 죽은 말이고, 유언은 살아있는 말이다.
살아있는 말은 지켜야 할 말이고, 죽은 말은 무시해야 하는 말이다.
유언을 지키기 위해서는 제자가 되어야 한다.
배워야 한다는 뜻이고, 배운 것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난 하나님의 말씀을 소문으로 듣고 있는가?
아니면 유언으로, 제자의 심정으로, 지상명령으로 듣고 있는가?
요즘 몹시 혼란스럽다.
말씀이 소문으로 들려지기 때문이다.
가슴을 울리지도 않고, 꼭 지켜야한다는 부담감도 사라진 듯 하다.
장로들이 자신들의 입장에서 만든 소문처럼...
말씀이 지식의 범주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꾸 유다를 편들고 싶어진다.
그의 갈등에 공감이 되어진다.
확실한 것을 원했지만, 보여지는 것은 실망 뿐인 그의 갈등이 측은히 여겨진다.
나도 예수님을 팔고 싶은 마음도 든다.
이것 저것 #50614;매이지 않고 살고 싶어지기도 한다.
본전 생각이 나서 예수님을 은30에 팔지 않았을까?
어쩌면 나도 지난 25년의 세월 때문에...
어떻게든 본전만이라도 건지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인가? 인자를 파는 유다가 될 것인가?
주가 쓰시겠다 하여 사용되어질 나귀가 될 것인가?
장로들처럼 나를 위해 소문을 만드는 사람이 될 것인가?
가르침을 받고, 지키느 제자가 될 것인가?
어찌되었든지,
살아있는 관계를 만들지 못하면, 나도 나의 내일을 장담할 수 없다.
살아있는 관계를 만들지 못하면, 말씀을 소문으로 만드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