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롯유다의 자살이주는 교훈
작성자명 [최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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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4.11
마 27 : 1 ~ 10
가롯유다는 3년반동안 예수님을 모시고 다니면서 가장 가까이서 주님을 예의 주시해서
보았을것 입니다. 그리고 그가 내린 주님에 대한 결론이 랍비 였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린것도 보았고, 나인성 과부의 아들도 살리고, 광풍도 잠재우시고,
물위를 걸으시고,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고 열두광주리가 남는것도 보았으며
소경이 눈을 뜨고, 문둥병자가 낫는 현장에도 있었는데,...초능력 슈퍼맨인 예수님을 왜?
일개 선생으로 불렀을까 ?
나도 날마다 말씀 속에서, 기도 가운데 아뢰는 주님의 이름을 창조주로 전능자로 구세주로
인식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제한 시키고 내 인생에 교훈이나 주는 랍비로 생각 했다면
예수 이름을 습관성 중독으로 부른다면 나는 사망입니다.
오늘 가롯유다의 자살을 묵상 하면서 내 신앙이 새로워지기 원 합니다.
가롯유다는 돈궤가 전공인 마태를 재끼고 예수공동체의 경리부장을 맡아서 공생애 기간중
실세를 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3년반이라는 장정을 마치고 예루살렘성에 입성할 때
가롯유다는 경제기획원장관이나 국무총리 쯤 꿈을 꿨을것입니다. 공생애 기간 내내 나머지
열한 제자들이 돈을 탈려면 가롯유다에게 굽신 거렸을것 이기 때문에 가롯유다는
자기가 늘 상석에 있다는 착각속에 지내 왔을것 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성에 가까이 올수록 예수께서는
섬겨라, 낮아져라, 발을 씻어주마, 나는 죽으러 간다고 하시니까 속이 뒤집혀서 그 마음이
이미 지옥 이었을것 입니다.
자기의 탐심을 이기지 못해서 주님을 랍비로 격하 시켜버렸습니다.
나의 마음에도 으뜸 되고 싶고, 인정 받고 싶을때가 있었습니다. 세상에 있을때는 말할것도
없고 교회에서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왔다가 나가곤 합니다.
예목훈련까지 다 받았더니 다른 동기들은 모두 목자로 가서 섬기는데 아내도 없고 집도
없으니까 목자도 못한다고 하고, 가족이 없으니까 가족찬양도 못해 보았고,
전교회에서는 교회 대표였는데 우리들교회에서는 예배때 기도 한번도 안시켜주고, 예목동기
들은 모두 예목 2 를 받는데 그것도 받지 못하게 막아버리고,
어떤 여지집사님은 거의 예배때마다 등장하다가 한번 빠지니까 내가 혹시 목사님 판것이
아니냐고 하는데 나는 1년 6개월을 큐티해도 예배때 한번도 언급도 안해주시고,
내 고난이 종류별로 얼마나 많고 깊은데 목사님은 맨날 바람난 남편 관련 씨리즈만 얘기
하시고 .... ^^ ( 나는 졸업 해버렸는데 ) 나는 하나도 안알아 주는고 했다면...
나는 내 고난에 빠져서 이미 알콜중독자가 되었다거나 마약 내지는 담배중독 또는 다른
어떤것에 빠져서 죽어야 했을것 입니다.
우리들교회의 본질은 목사님께서 선포하시는 말씀에 있습니다.
그 말씀을 사모하여 왔던 내가 비본질적인것에 흔들려야될 이유가 없습니다.
베드로와 유다의 차이는 본질에 대한 인식의 차이입니다. 사람은 부정적인 생각이 들기도
하고 잘못도 저지를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처리가 인생을 좌우 합니다.
맨날 책망 받았던 베드로는 다 드러내는 성격이라 오픈이 능력이 되어서 주님께 귀하게
양육을 받고 후일 복음을 전하는 귀한 수제자가 되었는데
공생애 기간 내내 드러내지 않다가 속이 뒤집어져서 예수님을 팔 때 랍비여 ! 내니이까 ?
라고 묻고 주님을 팔아버리고 후회하고 자살로 생을 마무리 해버렸습니다.
지난주에 전화한통없이 빼버렸다고 이슬비 원고를 땜빵용으로는 안하겠다고 했는데 어제
어느 집사님께서 나에게 전화가 오셔서 몸이 아파서 도저히 원고를 못쓰시겠다고 간곡히
부탁을 하시는데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시간만에 땜빵을 하고 게시판에 올리면서 역시 나는 베드로형이구나 하면서 회개 했습
니다. 그래도 할말을 해야 처방도 치료도 받을수 있다 하시니 약 ~ 간 위로가 됩니다.
가만히 있다가 사고치는 유다보다 책망을 받으면서도 가까이든지 멀찍이든지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자살은 자기 생명을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자살의 윤리성 문제는 계속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고 현대사회에서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한 인간성 파괴와 소외현상이 극에 달한
근래에 더욱 큰 사회 문제가 되었습니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뒤르껭은 1897년 그의 저서 < 자살론 >에서 자살의 세가지 유형을
분리함으로써 학문적 연구를 시도 했습니다. 그의분류에 따르면
1. 개인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서 죽는 이기적 자살
2. 사회의 돌연한 변화에 충격을 받아 죽는 무통제적 자살
3. 사회를 위하여 스스로 희생하는 이타적 자살 등.... 인데
문제는 많은 인본주의 학자들과 예술가들이 이 세종류의 자살 유형에 대해서 각각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또 자살 그 자체를 인간이 지닌 고유의 특권으로 간주함으로써
자살을 옹호 하는데 있습니다.
특히 사회 인습적 차원에서 고귀한 죽음으로 숭앙 되기도 하는 이타적 죽음에 대해서는
거의 긍정적으로 평가 되고 있는것이 현실입니다. ( 전태일 등... )
그러나 성경은 자살에 대해서 직접적인 표현은 안하고 있지만 전체적 정신은 이타적
죽음조차도 인간이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불법으로 단죄 합니다. (살인죄)
왜냐하면 모든 생명과 인격의 소유주는 오직 하나님 한분 밖에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은 어떤 명분과 상황으로도 버릴수없는 고귀한것 입니다.
내 생명의 기득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자만이 자살을 극복하고 생명의 청지기
로써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하여 살아갈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