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의 하나님
작성자명 [김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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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0.11.08
예배와 희생은 같은 의미다.
성경을 보면 예배에는 반드시 희생이 따랐다.
희생되는 제물이 있었고,
신약에 그 희생제물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래서 예배와 희생은 같은 의미다.
희생없는 예배는 생각할 수 없다.
구약에나 신약에나 그 개념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렇다.
새벽예배를 드리려면,
새벽에 엄습하는 단잠을 희생해야 하며,
주일예배를 드리려면,
화창한 날씨에 야외놀이 가고싶은 욕심을 희생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따라 경건한 예배의 삶을 살려면
정욕을 희생해야 하고,
돈도 물질도, 시간도 모두 희생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예배를 드릴 수가 없다.
예수님이 그러하셨듯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희생의 제물을 드려야 하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배와 희생은 같은 맥락이다.
오늘 새벽, 김두식 목사님의 설교에 나온 이야기다.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깊이 공감했다.
그는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공중기도를 할 때 조심하란다.
이 자리에 온 사람들 뿐아니라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은혜를 내려달라는 기도를 하지 말란다.
그건 공평의 원리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의 많은 것들을 희생하고 예배를 드리는 사람과,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고 예배도 드리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똑같은 은혜와 복을 주신다면
불공평하지 않느냐, 그건 하나님의 공의가 아니지 않느냐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를 위해서 무엇을 희생하는지,
어떤 것들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있는지를 카운팅하신다는 말씀이다.
오늘 시편 99편에도 공평의 하나님이 나온다.
공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공평을 견고히 세우시고 공과 의를 행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다.
공평하신 하나님,
나에게도 공평하게 행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내가 행한 일을 공평하게 카운팅하시는 하나님..
그래서 희생없는 예배와 희생있는 예배를 다르게 보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 앞에 옷깃을 여민다.
오늘 하루도, 이 한주간도
하나님 앞에 의미있는 시간이 되게 살겠다고
살며시 각오를 다져보는 월욜의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