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휘두른 칼에 상처 입은 영혼은?
작성자명 [김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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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4.08
내가 휘두른 칼에 상처 입은 영혼은?<마>26;47~56
오늘 내가 들고 나온 검은
믿음의 터 위에 세워진 말씀의 검인가?
아니면 내 의를 내세운 내 열심의 검인가?
오늘 이른 아침에
<이레 공부방>에 나아와 앉아
격주 토요일마다 하는 QT 나눔에 올 아이들을 기다리며
잠시 든 생각이었습니다.
금요 목장은 12시 넘어 끝이 나고
서둘러 집에 도착하니 이미 시간은 1시가 넘었고
잠자리에 누웠지만 오늘 목장에서 나눈 나눔 들을 생각하느라 쉽게 잠은 들지 못하고
2시가 디는 것을 보고는 자기 위해 누웠습니다.
그리고는 이른 아침에 눈을 떴습니다마는
덕분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잠으로 너무나도 피곤합니다.
그래도 아이들과의 약속인지라
미리 나와 문열어놓고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자니
온몸은 나른하고 정신은 혼탁하여
비몽사몽을 헤매고 있노라니 잡념과 갈등이 생깁니다.
꼭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아이들도 모처럼의 노는 날 잠을 더 자게 할 걸 그랬나?
이게 혹시 나의 지나친 열심이 아닐까?
오늘 내가 들고 나온 검은
베드로가 들고 나온 검처럼
오직 나의 의로 똘똘 뭉쳐진 특심의 검은 아닌가?
기왕에 들고 나올 검이었다면
믿음의 검이요 말씀의 검이면 좋겠는데...
이런 생각들을 하는 가운데 아이들이 하나하나 모여듭니다.
참으로 귀한 영혼들입니다.
강요한 것도 아니고
어떤 구속력이 강하게 작용한 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모여듭니다.
굳이 구속력이 있다면
말씀에 대한 갈급함과 사모함의 강한 구속력으로
이 새벽의 아침에 아이들을 이곳까지 불러 낸 것이기를 소망합니다.
그것도 가까운 거리의 아이들이 아니라
버스로 20분이상의 거리에 있는 아이들이 성경 혹은 QT 책 들고 옵니다.
또 어떤 아이들은 공부할 책도 싸들고 옵니다.
QT끝나고 공부하고 돌아갈 마음을 먹고
아직은 날이 밝으려면 한참 먼 이른 시간에 속속 모여듭니다.
저는
이 아이들이 믿음으로 하는 것이기를 소망합니다.
개인의 의와 열심만으로는 이렇게까지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깨서 드려야 할 향유 옥합과, 유다의 배신 음모,
내가 유다의 자리에 있었던 적은 없는가? 등으로
울 목사님께 받은 은혜의 말씀과 나의 간증을 섞어서 1시간가량 나누었습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말씀의 꼴을 먹이기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상태에 놓여 있는 아이든 간에
말씀을 먹은 아이들은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또 <이레 공부방>에서 말씀의 꼴을 먹고 변화되고 살아난 아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가 한 것은 아닙니다.
주님이 만져주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휘두른 칼에 상처 입은 영혼은
예수님께 위해를 가하려고 몰려든 무리 중의 한 명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없지만)
주님의 사랑은 여기서도 빛을 발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만져 주심으로 그 상처가 치료됨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어떠한 상처를 받은 영혼이라도
주님이 말씀하시고 만져 주시면 치료받고 변화될 줄로 믿습니다.
내가 내 열심만으로 휘두른 칼에 상처 입은 아이들이 없나를 살펴봅니다.
그들까지도
예수님 앞으로
말씀 앞으로 데리고 와야 합니다.
말씀하시고 만져주시면 변화될 줄을 믿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말씀으로 변화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변해야 합니다.
우린 서로 변화되기 경쟁을 해야 합니다.
믿음 안에서
말씀의 검으로 우리의 심령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말씀의 검으로 우리의 심령이 가난한 심령 되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말씀의 검으로 내 심령 안에 굳은 살 배긴 죄성을 도려내고 후벼 파야합니다.
말씀의 검으로 내 심령 안에 무성하게 자란 죄의 가시덤불들을 제거하야 합니다.
굳은살과 가시덤불을 제거한 그 심령 안에 말씀으로만 채워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야만 내가 먼저 변화될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오늘 제가 들고 나온 검은
믿음 안에서 새파랗게 날을 세운 말씀의 검이기를 소망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