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맞이에 가슴설레며 사는...
작성자명 [심 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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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4.01
2006년 4월 1일 토요일 아침,
믿음이 무엇인지 열처녀 비유를 통해 말씀해주신 주 예수께 감사드리오면서
깨어
있어라
신신당부하시는
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마25:1-13)
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가 믿었던 구원도 영생도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까? 내가 예수믿고 눈물콧물흘린 경험도 있고 해서 나는 은혜받았으니 이제 구원은 따 놓은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주 예수의 도의 원리를 제대로 파지하지 못한 소이옵니다.
믿음의 본질이 무엇이던가요? 사랑이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사랑입니다. 믿음은 주 예수에 대한 우리의 기림이요 동경이며 사모함 그 자체이며 그 자체의 다름아니옵니다(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 모두 졸다가 주무시고 마옵니다->25:5!). 내가 구원받았으니 그래서 안심이다 라는 논리는 예수의 도의 본질도 모르고 또 모르는 한심한 믿음의 작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와같은 믿음은 그야말로 캄캄한 절벽같은 낭떠러지앞에서서 이를테면 빛 없는 <등>만가지고 서 있는 믿음이 아닐까요?
믿음은 사랑입니다. 믿음은 기림이요 동경이며 애타는 기다림입니다. 오, 믿음은 과연 내 가슴속에 활화산처럼 꺼질줄 모르며 타오는 가슴설레임이옵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주 예수를 이토록 사모하며 애타게 찾아 나서마지 않게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님의 말씀하심 때문이 아닐까요? 말씀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말씀안에는 약동하는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다. 우리의 님의 말씀하시는 음성은 늘 이와같은 은혜와 능력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음성을 듣고 싶어 자다가도 깨곤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의 일을 시작하기 전에 님의 소리를 들어야 비로소 마음에 평안이 깃듭니다.
만약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님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면 그만 하루의 기분이 영 시원찮습니다. 그 만큼 님의 목소리듣는 것이 이토록 하루의 삶에 생동감을 불러일으키는 윤활유와 같습니다. 기름입니다. 이 기름을 치지 않으면 오, 우리의 심령은 그만 푹푹찌는 뜨거운 한 여름날 도마위에 놓여 있는 생선처럼 신속히 부패되어 냄새나는 타락한 심령들입니다.
하여, 오 우리의 주 예수여, 우리는 한시라도 주님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가 아닙니까? 이와같은 고백이 내 심령깊은 곳에 솟아오르지 않으면 이 종은 졸고 또 졸 따름입니다(25:5). 주님은 우리의 생명보다, 주님의 말씀하시는 그 음성은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하옵니다. 이 고백이 진배하게 우러나오지 않으면 이 소자의 믿음은 잠들고 마옵니다(25:5).
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씀은 일획일점도 사라지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시는 우리의 주 예수여! 오늘 아침 이 종은 당신의 말씀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한번 깨닫습니다. 종의 심령속에 주 님 을 사모하는 마음, 그래서 님의 들려주시는 사랑의 속삭임에 압도되어 이 세상어떤 것도 싫다하며 마다 할 수 있는 믿음의 자리에 서 있게 하시옵소서. 하루 하루 님 맞이하여 영원토록 주님맞이하는 은혜의 계기되기만을 간구할 따름입니다.
이 세상은 사라집니다. 모든 것이 다 사라집니다. 이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직 남는 것이 님의 말씀이라 하시니 오직 말씀 붙들어야 겠습니다. 우리의 신랑되신 님이여, 하오나 우리의 의지만으로는 풍전등화와 같은 세상에서 기름준비하기가 영 쉽지 않습니다. 이소자로부터해서 님을 사모하는 모든 이들에게 님의 음성들으려 나아갈 때마다 우리를 애긍히 여기서 <영원하신 성령의 은혜의 기름부으심을> <언제나 아침이슬내려주시듯> <어김 없이 변함없이 >우리의 심령속에 촉촉히 내려주시옵소서. 그래야만 더욱 더 예수- 님 맞이에 가슴설레며 하루를 열수 있나이다.
다시 한번 님께 고백하옵는 것은 믿음은 님을 애타게 기림이요 사모함이며 동시에 흠경하옵는 것이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