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는 몸과 마음을...
작성자명 [최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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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4.01
마 25 : 1 ~ 13
예수께서 재림의 비유에 대하여 점점 그 강도를 높여 가십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재림 하실것이니 항상 깨어 있으라고 하셨고, 깨어있는 수동적자세
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행동을 하라십니다.
즉 충성되고 지혜있게 때를 따라서 주인집 사람들을 맡아 양식을 나눠주라고 하셨으며
재림이 더딤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다시 오실것을 마땅히 예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한걸음 더 나아가서 주의 재림은 더딘것이 아니라 오직 나에 대해서, 우리들에
대해서,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유보되어 왔다는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하나님의 때가 되면 신랑되신 예수께서 재림 하실것이니 나는 그 날을
사모하는 가운데 지혜로운 다섯 처녀와 같이 기름준비해서 등불을 밝혀야 합니다.
결혼을 앞둔 < 신부는 몸과 마음을 > 정결하게 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옛말에 남녀는 7살만 먹으면 같이 앉아있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남녀가 유별하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따로 떨어져 있어야 사고(?)가 나지 않는다는것
입니다.
남매간에도, 사촌간에도, 이웃간에도 미리 조심 시켜두는것이 지혜롭습니다.
인간은 100% 죄인이라 누구에게서도 거룩성을 찾기가 힘듭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자식을 낳으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여호와께 행음을 했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그 얼굴에서 음란을 제거하고 유방 사이의 음행을 제하라고 하셨습니다.
신부가 정결해야 되는것은 죄로부터 철저한 회개를 의미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시지만 내가 산당에 제사하며, 상수리나무 밑에서 행음하는
것을 싫어하시고 내 음란을 찢고 거룩에 이르는 회개를 원하십니다.
회개하는것이 등불을 예비하는 신부의 정결예물입니다. 즉 혼수 입니다.
아름다운 예단을 준비 하듯이 준비하는 애통의 눈물이 등에 넣을 기름 입니다.
나의 가증한 교만과 탐심과 음란함을 인정하고 내가 죽을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것을
입으로 시인하여 고백하고 죄로부터 돌이키는것이 생명의길 입니다.
내가 전심으로 회개할 때만이 천국이 가까이 왔음을 알게될것 입니다. 내 마음을
찢을때 내가 수치를 당치 않을것이며 부끄러움을 보지 않을것 입니다.
내가 교만하여 목이 곧으면 심판때 목이 부러질것이며, 청년때와 과부때의 치욕을
다시 보게 될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지으신 남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내가 나의 우상과 행음하므로 진노 하시는것 입니다. 배우자가 나의 우상이
되고, 내 자녀가 나의 해가되고, 재물이 나의 달이 되고, 명예가 별이 되었기에....
예수께서 나에게 오시기 위하여 너의 그 모든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어
보십니다. 나는 행음했으므로 한때 버림을 받았지만 주께서는 나를 소시적의 아내라고
하시며 큰 긍휼로 나를 찾으시고
하나님의 넘치는 진노로 당신의 얼굴을 잠시 나에게서 가리웠으나 이제는 영원한
자비로 나를 구속하신것입니다.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살리신것 입니다.
지금은 지상교회의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신랑되신 예수가 누구신지를 온천하에
나팔을 불며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길가는 아무에게나 들어오라고 초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 오늘 > 기름을 준비하지 않으면 < 내일 >은 늦습니다.
노아의 때와같이 오늘날과 같은 마지막의 때에도 시집가고 장가가며, 상업차 자기
유익을 위하여 영혼구원을 향한 부르심을 외면 한다면 그들은 슬피울며 이를 갈날이
반드시 올것 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혼인은 세단계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첫단계에서 남녀가 정혼을 하였습니다. 신랑과 신부의 아버지 사이에서 공식적인
합의를 통하여 정혼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약혼을 했었습니다.
약혼후 1 년이 경과하면 결혼식을 올리는것이 관례 였습니다.
이 마지막 단계때에 신랑은 신부집으로 찾아가서 신부를 데리고 피로연이 베풀어질
자신의 집으로 가두행렬을 하며 돌아왔었습니다.
열처녀들이 신랑을 맞이할려고 기다렸던것도 바로 이 행렬이었을것 입니다. 예수께서는
당시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익히 알려진 풍습에 착안하셔서 마지막때를 사는자들에게
비유로 교훈을 주고 계셨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나누어줄것을 요청했을때 슬기로운 처녀들이 이를 거부 했습
니다. 왜냐하면 기름을 나누어주면 예식이 끝날때까지 쓰기에 부족하기 때문 입니다
즉 개인의 구원은 각자의 믿음과 신앙으로 얻어진다는것입니다. 아버지가 목사님이고
어머니가 권사님이어도 자녀가 믿지 않으면 예수신랑과 아무 관계가 없으며,
내가 믿는 예수를 배우자가 믿지 않으면 세상에서는 함께 살다가 죽으면 배우자는
음부로 갈수밖에 없습니다. 그때는 허리끈을 잡아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 자녀도 내가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애통할 수밖에 없고 자녀의 구원은 하나님과의
일대일 관계가 됩니다. 가족의 목적이 구원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구원은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존재론적 문제 입니다.
내 등잔에 기름을 예비하는것은 죽음의 순간까지 계속 되어야 합니다.
기름 준비를 내 열심으로 하면 힘들지만 하나님의 은혜로하면 넉넉 합니다.
오직 내가 구 할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