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른지
작성자명 [김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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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3.30
36절
그러나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 그날과 그때 천사도 아들도 모른다고 하신다. 내가 천사보다 아들 예수님보다 뛰어난가?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지금 해야할 일을 마루고 싶은 마음과 회피하고 싶은 마음에 그날과 그때를 궁금해하고 염려한다. 믿음안에 있으면 항상 그날과 그때를 예비하고 있음인데...
언제 어느곳에 취직이 될까? 오늘 나가면 또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만나고 싶지 않은, 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할까? 온통 염려와 두려움으로....
내가 하나님이 되려고하니, 나의 이 무거운 멍에를 어찌 다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날과 그때를 아버지만 아시오니,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심을 인정한다면 감사하고 감사할 일인것을...
37절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아무도 없는것 같아도 수많은 육적이고 문화적이고 세련된 사람들에게 멸시와 왕따를 당해도 인자의 임함은 노아에게는 구원으로 수많은 세련된 사람들에게는 심판으로 왔다. 나의 중심은 어떠한지?
38절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사람들은 그들의 육신이 원하는것을 아무것도 금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자유인지 몰라도 범밀하게 그들은 철저하게 육신의 노예가 되어있었다. 육신의 정욕을 절제하지 못할때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앞에 놓여질 죄가 됨을 깨닫게 해주신다. 먹을것을 너무 좋아해서 벌써 4kg이나 더 체중이 불어버린 나, 이대로 가면 틀림없이 육의 심판. 건강의 적신호가 올텐데,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어쩌면 이들과 나는 이렇게 닮았는가? 장가들고 시집가고 오늘 가지 말아야 할곳은 어디인가? 절제해야 할것은 무엇인가? 주님! 불쌍히 여겨 도와주소서.
39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멸하기 까지 깨닫지 못한다고 하신다. 애통할 수 밖에 없는 인생이여. 날마다 사람들을 통해서 환경을 통해서 그 동안 살아온 삶과 무엇보다 말씀을 보면서도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한다니 얼마나 교만하고 완악한지...
주님 밖에 선한것이 없음을 주여 고백합니다. 불쌍히 여기소서. 그리고 그러한 우리 인생들을 주님의 마음으로 대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로 덧입혀 주소서.
40~41절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주님이 임할 그날 그때에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어도 같은 밭에 있어도 왜 구원과 심판으로 나뉘는가?
42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깨어 있음과 그렇지 못함의 차이인지? 같은 장소에, 같은 일을 하고 있어도 육의 목적과 영의 목적을 내가 분별하고 있어야 함을 깨닫게 해주신다.
43절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다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주님은 약삭빠르게 이득을 가로채는자들을 경계하시기 위해서, 나의 참 인내하는 믿음을 원하고 상 주시기 위해 같은밭,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모델로 주신듯 하다.
오늘 실버병원에 미용자원봉사를 갔었다. 침대에 호스를 끼고 누워계신 할머니 머리를 자르게 되었고, 병원에서 일하시는 분이 말씀하시길, 그분 오늘이라도 갈 수 있으니 예쁘게 잘라주세요 라고 했다. 무기력하게 그냥 누워계신 그분을 나는 안고, 다른 봉사자가 머리를 자르게 되었는데, 기도가 나왔다. 불쌍히 여겨 주세요 다른 할말이 없었다. 그냥 주님, 불쌍히 여겨주세요
그말 밖에는... 인생에 있어서 내가 갈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가. 인간의 동정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노아같이 주님만 바라볼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