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워싸인 자의 반응
작성자명 [문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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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0.10.22
열왕기(상)20:1-12 묵상 나눔
아람의 벤-하닷 왕이 그의 군대를 다 모으니 왕 삼십 이명이 그와 함께 있고 또 말과 병거들이 있더라 이에 올라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그 곳을 치며(1절)
에워싸였을 때의 반응
아람은 수리아로서 북쪽 이스라엘의 동맹국입니다. 한때는 다윗 시대에는 동맹국이었고 솔로몬 시대엔느 그 성을 빼앗았던 국가였다(삼하8:5-12, 대하8:3-4). 그런 아람이 고대근동의 강대국으로 등장하면서, 벤 하닷 2세는 이스라엘의 국력이 강해져오자 연합국을 모아 이스라엘의 사마리아성을 에워쌌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금과 은과 부인과 자녀들을 포획해 가겠다고 협박하였다.
그러나, 아합은 하나님 앞에 엎드리기는 커녕 사람들을 모아 의논하기에 급급하다(1-9절).
열왕기의 역사는 선지자적 역사이며 신학적 역사이다. 이 말은 계속해서 반복되어 나오는 단어 여호와 보시기에 라는 하나님의 평가가 그 나라와 왕의 통치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북 이스라엘은 오므리 왕가때 국력은 강해졌지만, 이세벨이 들여온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는 이방 국가와의 동맹이 아니라, 침공으로 나타났다. 이방 국가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 때 아합은 어떻게 대응하는가? 믿음인가? 불신인가?
교회가 하나님만을 온전히 섬기지 못하고, 하나님의 복음이 약해지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 자기의 뜻과 인간의 생각이 나타날 때 하나님은 세상을 통해 교회를 일깨우시고 교회로 하여금 각성하게 하신다. 한국 교회는 여러번 세상의 경고를 받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경고의 단계도 지난 것인가? 세상도 한국 교회를 향해서 별로 말하지 않는 것 같은 지경이 된 것인가?
두려운 일이다.
내가 당한 상황과 환경은 내가 만든 것이기도 하고,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것이기도 하다. 뒤섞여 있는 것 같다. 제대돌 깨달아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에워싸인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가? 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엘리야처럼 반응하고 있는가? 를 돌아본다.
길고 짧은 것은 대 봐야 안다?
벤 하닷의 교만은 하늘을 찌를 것 같다. 그는 전쟁 중에 장막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그러나 교만은 패망의 앞잡이이다. 교만한 자를 하나님께서 대적하신다. 동서고금에 변함없는 진리이다. 하나님 나라의 성품은 말할 것도 없고 세상에서도 이말은 상식이다. 그는 사마리아의 약하고 쓸모없는 것이 자기 군사의 손에 채우기에도 부족할 정도로 철저히 노략할 것이라고 큰 소리친다. 이에 대하여 궁지에 몰린 쥐와 같은 상황에서 아합이 대꾸한다. 그래도 길고 짧은 것은 대 봐야 안다 마침내 벤 하닷은 군대에 명령하여 이스라엘 진영을 치라고 명령한다(10-12절).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이시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전능이시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반드시 승리한다. 대볼 것도 없다. 아합은 이것을 모르고 있다.
한국 교회는 교만하여 있지는 않는가. 일전에 T.V로 본 유럽 교회 다큐멘터리가 기억에 생생하다. 그것은 유럽의 텅텅빈 교회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교회당이 술집으로 변하여있고, 큰 교회당이 젊은들은 없고 노인 몇명만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거나, 아예 이슬람 사원으로 바뀐 곳도 있었다.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마지막에 나온 한 목사님의 지혜로운 충고는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유럽 교회)와 같이 되지 않으려면 한국 교회는 아직 모일 때에 복음(말씀)을 제대로 전해야 합니다 .
눈 앞에 보이는 우리 교회의 모습에 때때로 절망하고 답답한 마음을 긍할 길 없다. 연약한 나로서는 어찌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내 믿음지키기도 바쁘니까, 어떻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본문을 만날 때마다 이 마음을 나누고 싶다. 그리고 함께 엎드려 울면서 기도하고 싶다. 하나님, 이 땅의 교회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회복을 주시옵소서!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이다. 어거스틴은 성도의 제일된 덕목을 묻는 질문에 첫째가 겸손 이라고 했다. 둘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둘째도 겸손 이라고 했다. 그럼 셋째는? 그는 여전히 셋째도 겸손 이라 했다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 온유와 겸손이다. 십자가를 지시기까지의 순종이 겸손의 핵심이 아닌가.
주님, 교회 공동체와 종이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겸손히 주와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결코, 이제 되었다고 이제 섰다고 착각하거나 오버 하지 않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이 땅과 교회의 미래인 청소년들을 살려주셔서 그들로 한국 교회의 소망이 되고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