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과 두만강이 왜 있을까요?
작성자명 [심]
댓글 0
날짜 2006.03.30
백두산
정상에서 흘러내려오는 물 방울도
동쪽으로 떨어지면 두만강으로
서쪽으로 떨어지면
압록강으로 이렇게 물방울도 순간 찰나적으로 영원히 갈라지게 됩니다.
오,
두 사람이
똑 같이 밭에서 일을 했는데
어떻게 한 사람은 남고 다른 한 사람만 들려올라가에 되는지요?
분명 두 사람이 같이 일을 했습니다. 같이 말도하고 같이 쉬기도 하고 같이 세찬도 먹고 같이 대소변을 보고 같이 추수도하고 같이 양식을 먹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째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이 두사람의 운명이 영원히 갈라지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삶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목적지는 이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단순히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며 시집장가드는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의 방향은 단순히 이 세상이 아닙니다. 무슨 일을 할 때 그 일의 방향을 어떻게 확정하는 것인가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어떤 방향을 가지느냐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확연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왜 사는지 무엇때문에 사는지를 날마다 순간순간 깨어 점검하지 않으면 우리는 어느새 목적과 방향을 잃어버리고 마는 그런 영 별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길을 가는데 목적지를 향하여가는데 어느 길에서 어떤 복병이 달려들지 모릅니다. 그래서 깨어 있어야 한답니다. 오늘 아침 새삼 우리를 늘 깨어 있게 하는 약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말씀입니다. 날마다 말씀을 먹어야 우리는 깨어 예비할 수 있습니다. 말씀은 다름 아닌 우리로 영원한 목적지에 이르도록 하는 푯대입니다. 푯대만 바라보고 가면 안심하고 목적지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만약 푯대를 잃어버리면 방향을 잃어버리기에 그만 우왕좌왕 좌충우돌 중심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오 우리의 삶의 중심(中心)/중심(重心).핵심(核心)되시는 우리 주 나사렛 예수시요, 말씀이시여, 하루만 말씀을 경홀히 하면 이 소자는 넘어지고 마는 존재입니다. 말씀을 붙들 때 이 소자는 비로소 삽니다. 하루하루 아니 순간순간/찰나찰나 말씀을 의지하는 것이 다름아닌 영원히 깨어 있는 것이요, 동시에 우리 주님을 영원토록예비하는 것의 다름 아님을 이 아침 이 종은 깨닫고 또 깨닫나이다. 오, 다시 한번 우리 주 예수 다시 오심을 예비하는 것이 무엇이온지요? 그것은 우리 주 예수 다시오심을 사모하며 흠모하는 가운데서 날마다 우리가 육신을 위해 밥을 먹듯이 영의 양식인 말씀을 통해서 내가 무엇이 문제인지 내가 취약한 부분이 어디에 있는지 나를 돌아보는 것이 바로 깨어 있는 것이요 이것이 주를 예비하는 것이옵니다.
그런데 이 소자가 이와같은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것은 과연 무슨연고이옵니까? 오 그것은 이 종이 그만 순간 나의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잃어버릴 때이옵니다. 오늘 하루의 삶의 푯대를 무시하고 내가 삶의 주체요 푯대될 때 종은 그만 세상의 깊은 단잠에 빠져들고 맙니다. 그러나 이 아침에 다시금 주께서 이 소자로 하여금 깨어 각성케하시며, 우리 주 예수를 찬미하게 하시고 생명적인 도에 심취하게 하심으로 이윽고 성령의 내주/충만하게 하시는 약동적인 하루의 삶의 시작을 열게 하시옵니다. 오 나의 주 예수여, 날마다 주 예수를 찾는 자,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 날마다 주 예수를 사모하는 자만이 생각지 않는 은혜, 뜻밖의 은총을 누리옵니다. 이런 은총을 날마다 아침마다 누리는 자가 홀연히 주 예수의 오심을 맞이하나이이다. 하여 우리가 주 예수의 오심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그러나 우리는 항상 부시시 아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