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환난 후에
작성자명 [윤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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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3.29
외가 친가 3대로 부터 내려온 모태 신앙인으로 태어나 늘 교회 안에서 자랐습니다.
장로님 되시는 친정 아버지께서는 총각 집사로 새벽이면 제일 먼저 교회로 달려가 교회 종을
치시는 뜨거운 신앙 생활을 하셨고, 그 뒤 서울로 내려와 신학을 하려고 했지만 경제적인 어려
움 뿐 아니라 사모의 역할을 감당할 자신이 없으신 어머니로 인해 뜻을 접고 그래도 계속해서
목회의 꿈을 꾸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오매불망 기다리던 끝에 낳았던 아들
이 죽음을 앞두는 사건 앞에 예수님을 만나신 후 가지고 계신 전 재산으로 교회를 지어 아들에
게 남기셨시고, 8남매 중 5섯명의 목사 사위와 아들로 그 외에 사위들도 장로로 안수집사로 교
회에 헌신 하시게 됨으로 100주년 기념관에서 공로상까지 받고 돌아가셨습니다.
교회는 어려서 부터 언제나 저에게 있어서는 즐겁고 행복한 곳이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부터 고등학교 까지 성가대를 했고,중2때는 믿음으로 세례를 받았고, 중3 때 부터는 방언의 은
사를 사모하며 기도하던 중에 4년 만에 정말 확실하고 뜨거운 체험가운데 부흥집회 새벽기도에
서 방언의 은사를 받고 그 기쁨에 밤을 새워 방언으로 기도하고 찬양하고 길을 갈 때도 기도하
고 그렇게 저는 늘 주 안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진학을 저의 뜻보다 부모님
과 가정형편에 밀려 4남매 중저만 상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저의 마음에 쓴뿌리가
자라게 되었습니다. 내힘으로 당당히 대학에 진학해야지 야무진 꿈을 꾸었지만, 학교에 적응
하지 못하고 겉으로는 착한 딸 같았지만, 공부에 멀리하고 학원비를 써 버리고 등하교 때마다
도망가고 싶기만 했고, 가출까지 생각하고 편지를 써 놓고 나갔지만 밤이 되자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에게 그래도 주님은 언제나 숨을 곳이었습니다. 그 분 앞에서만 솔직했습니다.
그러면서 고등학교에서 추천해 주는 좋은 회사를 마다하고, 정말 작은 사례를 받지만 신앙생활
을 보장 받고 풍성한 말씀과 교제가 좋아 선택한 곳은, 강북에서 제법 큰 교회로 이모부께서
당회장으로 계신 정통 보수 장로 교회였습니다. 그곳에서 이모부의 비서겸 간사로 많은 목사님
들 교역자들과 함께 하며 섬길수 있었지만 오히려 목회에 대한 부정적인 면들을 더 많이 느끼
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말씀의 성경적 가치관이 온전치 않은 저로서는 한편으로는 주님의 은혜가 감사하며
가장 가치있는 사역임를 알고 그 길을 가고도 싶었지만, 또 한편 여전히 제 속에 버지지 못한
열등감과 교만에 감추인 욕심으로 언제나 헌신하는 지체들이 귀하고 부럽기도 했지만,
파워플한 영력을 갖지 못할 바엔 평신도가 좋아 하며, 저의 안일한 욕심을 포장한 합리화로
다시금 이모부의 권유로 제가 선택하려던 신학을 접고 신학교에 유아교육학과를 선택하였고,
교회에서 만난 지금의 남편을 선택하였습니다.
많은 시간 좋은 남편을 위해 기도로 구했지만, 가장 성령충만한 저의 모습이 아닌 때의 결정이
었던 것 같았습니다. 어제 본문 중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깨달을
진저... 하시는 말씀이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거룩한 몸된 교회에서 있으면서 점점 그것은 일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을 등에 업고 그럴 듯
돈과 명예를 얻고 싶은 저를 숨기고 아니 저 자신 조차도 저에게 자꾸 속으며 하나님의 시간과
물질을 허비하는... 저의 냄새 나고, 주검이 있는 곳 오직 먹을 것을 찾아 사나운 발톱과
부리로 잔인하게 피흘리게 하며 뜯어 먹는 독수리가 저 였습니다.
그날 환난 후에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마23:29).
결혼 후 임신한 저에게 남편은 저를 배신하는 사건을 안겨 주었고 그로 인해 병도 얻게 되어,
그 후 많은 의원과 병원을 전전 하며 육신의 질병을 치료하려고 또한 많은 시간과 물질을 허비
하는 혈루증 여인처럼 10여년 가까이의 삶을 살았지만, 그러면서도 온전한 성경적 가치관이
되지 못하여, 언제나 죄인으로 나에게 잘 해주는 남편을 당연히 여기며 또한 그러면서 여전히
영적인 것까지 자비량 선교사로 떠난 형부와 비교하여 남편의 믿음이 자라지 않는 것을
안타까움과 원망의 마음을 품고 이 교회 저 교회 남편의 믿음이 자라길 원하며 저의 열심으로
교회를 옮겼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겉으로는 그럴 듯 해 보였고, 잘 사는 듯 했지만, 치유되고 해석되지 않은 채 저의
해 달 별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떨어지는 환난을 만났습니다.
남편의 부도와가출, 원망과 이혼 요구, 질병, 배신....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숨도 쉬어 지지 않았고 그냥 이대로 죽고만 싶었습니다.
남편이 요구해 오는 이혼을 저 자신이 더욱더 원했지만, 하나님의 하지 말라 하신다는 말씀에
순종하게 되었고 구원의 애통을 하게 하신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가증한 제가 만난 환난 가운데 산으로 도망하게 되었습니다. 높으신 하나님께만
피하고 싶었습니다.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돈을 구하지도 물질을 얻으려 하지도 않았습
니다.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라 하심에, 내일을 염려하며 세상에서
구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
추운 겨울에 나간 남편 겨울 처럼 얼어 죽게 하는 사건 이지만 봄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약속의 말씀을 품게 하셨고, 안식일에 말씀을 듣게 하셨고, 무엇보다 어려서 부터 성경을
읽어 온 당시7살 이었던 아들은 오히려 저를 교회로 든든히 이끌어 주었던 작은 동역자
였습니다.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신 주님의 은혜는 우리들 교회 목사님과 집사님들의
헌신적인 사랑과 기도와 구원의 애통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수 많은 미혹하는 자들이
가정에서 교회에서 있었음에도...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골방에 있다 했지만, 오직 말씀으로
치우침 없는 우리들 교회에서 남편이 말씀만 들으면 그 속에 죽은 영이 살아나리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남편에게 우리들 교회에 4번만 오면 이혼을 해 주겠다 는 약속으로 시작해 반년
가까운 영적 싸움이 그 환난이 오히려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시는 주님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택하여 주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우리들
교회에서 목도하고 몸소 체득하며 , 전에는 내가 주님을 귀로 듣기만 했는데 이제 주를 눈으
로 직접 보았습니다 의 욥의 고백이 저의 고백이 되게 하셨습니다.
무화가 나무 비유는 사람에게 온통 구원에 관심을 두고 계신 주님의 말씀이셨음에도, 말씀이
없어 성경적인 가치관으로 되지 못했기에 비유 가 아닌 비교 로 죽이고 죽는 저였고 ,
매일의 말씀을 통하여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며 여름이 가까운 줄 알라 하심을
이제야 깨닫고 주님이 오시기 위해 여름을 지내야 함을 알았습니다. 뜨거운 태양과 가뭄과
홍수를 통해서 오시는 주님을 알게 하심이 감격스럽습니다.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하시기
위한 훈련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범사에 총명은 말씀과 구원의 관심 뿐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오직 남편의 구원 만을 원하였는데, 이제 남편을 목자로까지 불러 주셨고 또한 많은 지체들의
눈물겨운 사랑을 받게 하셨고, 물질의 회복도 놀라울 정도로 부워 주셨습니다. 교회 안에 잃어
버린 어린 양이 되어 유리한 저를 안아 주시고, 위로하며 이끌어 주시고 기다려 주신 나의 예수
님 그리고 목사님 너무나 사랑합니다! 이런 우리들 교회가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교만하고 어리석고 연약한 저이지만, 우리들 교회에서 말씀으로 훈련 받고 양육
받고 양육하며 온전한 성경적인 가치관의 사람으로 살게 하실 줄 믿습니다. 이러한 우리 가정
과 우리들 교회가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100%로 죄인이 아닌200%로 죄인임을 많은 지체들의 나눔에서 날마다 느끼게 하심이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