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저도 공동체가 필요해요
작성자명 [서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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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3.27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 작은 큐티 모임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모임의 시작은 2002년 말부터였습니다.
큐티를 혼자하고 있었고, 그때만 해도 뭔가 보일듯 보일듯하는데,
쉽게 보이지 않고 있는 때였기 때문에, 내가 영적 지원을 받기 위해
모임이 필요했었고, 그래서 주위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교회에서 전혀 이름없는 평신도여서, 불러 모은 사람들은 다니고 있는 교회의
교인보다는 다른 교회의 교인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시작할 때 제가 그랬죠. 난 절대로 리더가 아니다, 내가 소모임의 도움이 필요해서
모인 것이니 제발 나를 리더라 생각해 주지 말길 바란다하고요.
그런데도 모임은 제가 중심이 되어서 돌아갔습니다.
1년반쯤 하다가 모임은 해체되었습니다.
제가 말씀이 들렸다 안 들렸다한 상태였기 때문에 제가 추락하고 있는 날에도
모임을 이끌어야하는 때는 힘에 겨웠습니다.
그럴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으면 싶었는데, 모임 안에는
그럴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가는데도 다니고 있는 교회로부터(모임은 제가 다니고 있는 교회의 작은방에서
가졌었습니다)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는 것도 부담이 되었습니다.
광고를 했는데도 제가 다니고 있는 교회의 교인은 계속하여 1사람에
머물고 있었으니까요. 5-6명 모이는 모임에서 본교회 교인이 없는 것이 목사님께
미안했습니다(냉난방비도 안 될 것 같아서요).
시간이 가면서 매주 말씀을 본다는 것에 싫증나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이유로 03년 말에 그만 두었습니다.
그 후로 제가 계속 사건을 거치면서 - 거듭 아프고, 아들 속썩이고, 남편 이혼하자하고 -
말씀 보이는 것이 보다 선명하여졌습니다. 고통의 십자가 뿐만 아니라 수치와 모멸의
십자가를 깨닫게 되었고, 아들의 3수를 통하여 인도하여 가시는 확실한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되었으며, 두 번 세 번 거듭되는 수술을 통해 나의 내면을 청소해 가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보게 되었고...그러면서 말씀이 선명하여져 갔습니다.
그래서 다시 큐티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받은 생명을 전하고 싶어서였고,
50이 되도록 주께 드린 시간이 없다는 회개에서였으며,
많은 믿는 사람들이 “능력없이” 신앙생활한다는 안타까움에서였습니다.
작년 5월말에 저희 교회의 목사님의 기도까지 받아가며 공식적으로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일년이 가까워 오는 요즈음, 다시 힘겹습니다.
“고난”이라든가 “죄인됨”의 밑바닥이 교회를 통하여 확실하게 강조되지 않는
분위기에서 일개 평신도인 제가 그것의 바닥을 깐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제가 먼저 장대에 달리면서 죄를 고백하도록 힘을 써보지만 고백되어 나오는 죄는
개론(槪論) 수준의 죄거나 피상적인 차원의 죄일 뿐입니다.
섬세하고도 민감한 죄의 고백을 하는 공동체가 그립습니다.
고난의 영광을 설명하기도 얼마나 힘드는지 ... 고난을 얘기하면
모두들 겁을 먹는데, 그럴때면 신도들 주눅들게 한다고 목사님께 소리듣는것 아닐까
신경쓰일 때도 있습니다.
나름대로 신앙생활에 열심인 분은 하나님을 잘 알고 잘 믿고 있는데,
매주 시간을 내어 기한을 정하지도 않고 계속하여 모일 필요를 절감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모임의 수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생명은 자라게 되어 있는 것인데 ... 저의 부족함이 통감되어
옵니다.
저도 공급함이 필요해서,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제 말을 알아들어줄 사람이 있었음 좋겠습니다.
저희 교횐 유독 교수가 많은데, 이 교수 많은 것을 자랑하는 사람앞에서
그것은 “낙타가 바늘 구멍들어가는 사건”일 수도 있다고 말하면
그렇다고, 맞다고 그렇게 동의해주는 사람이 제 주변에도 있었음 합니다.
남편이 승진 되자 기도해 주셔서 승진되었다고 좋아하는 사람께 축하 해 드린 뒤,
잘 되고 난 다음에 주의하셔야 해요, 사단이 노리거든요 하고 말했을 때,
경사에 웬 경고를! 하지 않고 그래요, 맞아요 하며 얘기 나눌 지체가 있었음 합니다.
신앙의 성장에 소모임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수치감이나 정죄감없이 내 내면을 드러내 보일 수 있고,
그 드러난 내장을 더럽다 아니하고 씻기면서 예수의 떡을 같이 뗄 수 있는
그런 교류와 나눔의 사람들이 없이 신명나는 교회생활 하기란 힘듭니다.
생명의 흐름과 충만함을 기도하며 가는데도
오늘같은 날은 그 흐름이 막혀 찝찝하기만 합니다.
때로 큐티모임한다는 게 내 열심이었나 하고 돌아볼 때도 있습니다만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내게 공급됨이 필요하고 내가 또한 공급해 주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고
그렇게 가고 싶은데, 참 여의치가 않습니다.
주님, 저도 공동체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