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하는 인생
작성자명 [김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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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0.10.15
고해하는 인생
왕상15장34 길로 행하며
언젠가는
이 광야가 끝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광야에서 벗어나면
빛나고 멋진 인생을 살 꺼라구요.
하지만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처음 접했을 때
기도보다는 방법을 찾았고
말씀보다는 사람을 구했으며
믿음보다는 세상을 구했습니다.
발버둥도 치고
안간힘도 썼지만
더 먼 광야 길만 제 앞에 놓여진 듯 했습니다.
울기도 하고
죽을 만큼 힘들기도 하면서
도무지 적응하지 못했던 그 생활.
좀 더 쉽게 가는 것 같은 사람들
아니, 딴 세상에 사는 믿지 않는 이들이
정말 부러웠습니다.
다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 길은 더 멀어서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가는 길마다
작게 또는 크게 있는 문제 속에서
저는 어두운 절망을 맛보며 걷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제 딴에는 다른 이들보다
많은 준비를 했다고 자부했었는데.......
신학교에서 쌓은 지식
교회봉사를 통해 얻어진 경험들
거기에 더 얹어진 믿음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하지만
주님이 준비하신 광야는
모든 사람마다 다른 그런 길이었습니다.
걸어보지 않은 이들은 모르는 길.
구경만 해서도 알 수 없는 길.
책을 봐서도 도무지 앞을 알 수 없는 길.
광야에선
누구나 망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게 마련입니다.
사역지 없는 목회자,
출판을 거절당한 작가,
사업에 실패한 사업가.
대학 못 들어간 재수생,
건강을 잃은 주부,
슬픔 한 가운데 서 있는 사람들.
아무리 준비해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인생이 있다는 걸 그제서야 깨닫습니다.
세상에서 바라볼 것이 없을 때
비로소 길이 보이는 광야
그 길은 특별하게 감춰진 길이었습니다.
광야가 싫어서
하루속히 벗어나기를 간구했던 삶.
저는 그렇게 하루를 버티며 살았습니다.
하루를 살아가는 하루살이처럼
그렇게 광야생활은 시작되었고
그러던 어느 날
저는
놀라운 사실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목회자 아내였음에도
저는 여전히
세상의 성공신화에 빠져 있었습니다.
부흥하는 교회
날마다 커지는 교회
제일 좋은 교회
그 모든 것들이
때론 거친 광야에서 은혜처럼 허락 하시는 것임을
반드시 누구나 그렇게 되지 않는 것임을.
누구나 다른 얼굴이듯이
각자의 사명은 다 다름을
그렇게 함께 걸어가는 길임을.
성공한 듯해도 마무리에 실패하고
실패한 인생 같아도 마지막에 대의를 이루며
40년을 맨 발로 걸으며 전도하는 사명도 있음을.
죄악된 이 세상
나그네 된 이 세상에서
별 인생이 없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황량한 광야 길
친구도 동무도 없는 이 길
그 길 한가운데서 저는 알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광야를 걷지만
웃는 건 전적인 나의 자유이기에
기쁨으로 건널 수도 있겠다는 아주 작은 소망...........
돌이켜보니
온통 죄뿐인 제 인생은
정말 소망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 제 인생을
광야라는 곳에서
만나주시고,회복시켜주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악의 환경
최저의 생활
비천한 삶이라 할지라도
그 곳이 광야라면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면
이제부터 시작이란 놀라운 답도 얻었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주님과 함께 걷는 법을,
주님과 동행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사역지가 없어도
동역자가 없어도
주님 안에서 안식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주님의 마음으로
일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평생을 살아도
주님이 시키신 일이라면
그저 엎드려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날마다
나의 죄악을 보면서 애통하는 일,
그것이 가장 큰 사역임도 알아가고 있습니다.
끝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아니, 이대로 죽는다 해도 괜찮습니다.
광야에 있는 것 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따로 고해하지 않아도
저의 광야는 고해입니다.
서 있으면서 저는 언제나 고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광야는 은혜입니다.
아무 것 하지 않아도 내 죄가 보이기에,
고해하지 않으면 살 수 없기에
광야에 있기에
주님이 계시기에
무릎 꿇지 않아도
하루종일 다른 생각하더라도
저는 만족합니다.
거친 광야 길
고해하는 인생길
한 복판에 있는 지금이 더 행복합니다.
일등,
최고가 아니라도
받을 수 있는 광야졸업장.
저는 몰랐습니다.
목회자의 아내가 된다는 건
남편과 함께 이미 광야로 들어서기로 맘먹은 것임을.
그 길에 펼쳐질
우리들의 인생은
이미 우리 것이 아닌 하늘의 것이었음을.
가난하고 실패한 모든 삶조차도
결코 우리들의 것이 아니란 걸,
그래서 더 겸손히 그 땅을 건네야 함을.
저는 몰랐습니다.
목회자의 아내가 된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과 결혼한 것임을.
세상에서 남편의 아군은 오직 나 하나였음을.
그래서 바라볼 수 있는 그분을 찾아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인 광야로 갈 수 밖에 없음을.
그래서
끝나지 않는 길이며
죽어서야 끝나는 삶이란 걸요.
언제 이 고생이 끝날까? 했던
저의 의문점은
이렇게 깨끗하게 이미 결론 나 있었던 것임을.
저는 새삼
저희 신앙의 선배님들이신
사모님들이 떠올랐습니다.
이름없이
빛도 없이 광야에서
기꺼이 죽고자하는 그런 남편들을 향해
말없이 하늘의 진리를 깨닫고자
하얗게 세우셨을
그 수많은 새벽들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참고
또 참고
마치 정지된 듯한 하늘의 시간들을
기꺼이 가슴으로 안아
등불을 만들어
남편들을 하늘에서 빛나게 한 사모님들..........
아주 작은 은으로 만든
티아라(작은 왕관)도 보입니다.
그건 사모라 불리우는 저희 모두의 것입니다.
저는 몰랐지만 걸어왔고
걷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걷게 되겠지요.
끝나지 않을 이 고난도
이 가난도
네 ........... 저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젠 도망가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기쁨으로 안겠습니다.
그러면
제 뒤에 서 계신 주님께서
제 모든 것을 안아 주시겠지요.
그리고
보여드리지도 못한 저의 재주
제일 잘하는 것들은 시작도 못했는데도
그저
그 마음 하나
온전히 지켰을 뿐인데
잘했구나,
정말 잘했어.
난 너가 정말 자랑스럽다.
이렇게 칭찬해 주시겠지요?
이렇게 칭찬받을 꺼라고
같이 고생하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은데, 말해주고 싶은데 ...
그것조차도 제 몫이 아님을
그건
제 아이들의 남겨진 숙제임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언젠가
제 묘비명엔 이렇게 쓰여져 있겠지요.
폭풍의 인생길을 지나 광야에서 머물다가 졸업장 받으러 하늘 집으로 가다.
하늘 집에서 만날
많은 이 땅의 사모님들
그 날이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사모는
이 땅에서 상 받고
부귀를 누리는 자리가 아님을
자기의 남편들이
눈으로 잘되는걸 보는 자리가 아니라
영으로 성숙하길 바라는 자리임을
그래서
함께 하늘을 향해
끝없는 사랑의 고백을 하모니로 부르는 자임을
독일에서, 저 먼 이방인의 땅에서
지하실 개척교회 한 귀퉁이에서
스러져가는 꽃보다 귀한 그 삶들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꼭 꼭 꼭 .....................................말해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