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작성자명 [최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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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3.24
마 23 : 13 ~ 22
마 23 : 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르다는것을 느낄때마다 깜짝 깜짝 놀랍니다.
날마다의 삶에서 말씀이 깨달아질때는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같은데
말씀이 깨달아지지 않을때는 나는 외식할수밖에 없는 영적소경 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다는것은 그리스도께서 살다가신 33년 생애를 묵상해보면
그 해답을 쉽게 찾을수 있는데 내 환경을 보면서 내지식으로는 하나님의 생각을 읽어
낼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일을 내가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데 성경이 일일이 지침서를 주지 않기 때문에
말씀과 삶을 함께 묵상하지 않으면 주의 뜻을 알 수 없고 내 스스로는 항상 그릇행하여
치우칠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장을 세우기위한 원청회사와의 계약이 체결되고 원청사에서는 모스크바로 날라가서
일을 신속히 처리할것입니다. 나와 동역자는 여기에 투입될 사업자금을 구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것은 내 의지와 판단을 죽이고 기도하며 기다리는것이고
나의 동역자가 최선을 다한다는것은 파트너쉽이 있는 자금을 찾고, 고르고 있는중입니다.
전같으면 내가 이사람 저사람 만나고 다니면서 사업을 설명하고 설득하고 다녔을것인데
하나님께서 동역자를 보내주셔서 역할을 분담했기에 두손 넣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다
리고 있습니다.
내가 공장을 찾아서 사업을 제의한것이 아니고, 공장에서 나를 합당한자로 여겨서 찾아
왔고, 내가 계약을 하자고한것이 아니라 그쪽에서 먼저 제의해서 지난주에 계약을 했었
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업에 부르심이 있으시면 반드시 필요한 사람을 보내주실것입니다.
왜냐하면 전도나 선교는 사람이 하는것이 아니기 때문에 선교를 한다는 사업이라면
주님께서 앞장을 서실것 입니다.
전도도 나의 모든것을 주님께 빌려드려서 주께서 사용하셔야 열매를 맺습니다. 사업을
주님께 맡기고 기다릴수밖에 없는 환경이라 마음이 편안 합니다. 그런데 나의 동역자는
부지런히 동분서주하고 있어서 미안하기도하고 감사하기도 합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다거나 교회의 지도자라고 말씀이 더 잘 깨달아지는것은 결코 아니었
습니다.
말씀은 내가 말씀대로 살수 없는 인생임을 깨닫고 나의 죄를 보면서 애통하지 않으면
나는 말씀을 깨달을수도 없고 영적소경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날마다 죄를 먹고 마시는데 그것도 까닫지 못하면서 우주의 질서를 어찌알며
남의 마음을 어떻게 들어갔다가 나올수 있단 말인가 ?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나는 문둥병자같이 무감각하고 중풍병자같이 무능하다는것이
깨달아 질 그때에 말씀이 나의 피와 살이 되었습니다.
나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며 지혜라고는 전혀 없으므로 미련해서 아무런 깨달음이 없고
나 스스로 자기기만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나만 믿어 / 이번에는 틀림없어 / 잘 ~ 될꺼야 / 안되면 손에 장을 지져... 라고 맹세하고
큰소리 칠때... 주께서 최계원아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자여 ...하셨습니다.
나는 자기 확신이 강했었습니다. 자기 확신은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교만을 꺽지
않으시면 도대체 대화가 안되니까 나를 꺾어 놓으셨습니다. 이것, 저것.....
나에게 말씀이 없었을때 나는 외식하는자였고 종교적 의무를 다 하면서 내가 신앙이 좋다고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나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 화 있을진저 > 는 오 ~ 슬프다. 아이고 ~ 하는 탄식의소리입니다. 저주의 뜻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화를 선포하신것은 예수의 신적인격이 총동원된 중엄하며 결코 감정적이지 않는 조용하고도
진실한 .. 그리고는 궁극적으로 나의 자숙과 회개를 촉구하며 나를 압도하시는 권세입니다
내가 가면을쓰고 무대에 나와서 연극하는자와 같을때 나를 질책하시는 말씀 이십니다.
이 책망을 내가 잘 받으면 나는 생명을 얻을것이고 이 책망에 내가 분이 난다면
나는 하나님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착각속에 뻐져서 허우적 거리다가 생명을 잃을것입니다.
교회사에서 교회문을 막는 사람들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었고 특히 신앙이 좋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었기에 내가 깨어있어야 합니다
내가 스스로 신앙이 되었다고 생각할때가 가장 위험 합니다.
당시의 유대교인들이나 오늘날의 교회도 전도와 선교에는 관심이 많고 적극성이 있습니다
유대교 개종자들은 할례를 받고 성전세를 내는 등의 모든 전통과 규범을 따름으로
유대화가 되어 갔는데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무지한 이방인들을 끌어들여 자신들의 잘못된
생각들을 가르쳤고 그 때문에 잘못된 진리를 배운 사람들이 이후에 온 사람들을
더 지독한 지옥의 자식들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위선과 외식이 주범 이었습니다.
그런 자들을 주님께서 화 있을진저라고 질타를 하셨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전도를 위해서 노력을 하는데 전도대상자들에게는 사랑과 섬김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월감이나 선생이라는 의식으로 나아간다면 도리어 교회문을 닫는 결과가 될것
이며 피 전도자가 설사 교인이 된다고 할찌라도
잘 못배워서 잘 못된 신앙으로 다른이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습니다.
내가 100% 죄인이라는 낮아짐이 없으면 어떤 섬김도 주님의 책망의 대상이 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