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작성자명 [김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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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3.23
마 23:1~12
어제...어느 지체와 나눔을 하면서 이런 권면을 했습니다.
지금 별거 중인 남편과 합치기 위해서는,
사건의 불씨가 되었던 시누이에게 먼저 사과하는 것이 좋겠다구..
시누이를 감동 시키면 남편의 마음이 돌아서지 않겠냐구..
제가 시누이에게 당하고 먼저 찾아갔던 일을 말하면서,
저는 자랑스럽게(?) 권면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여,
우리가 목숨 같이 여기는 자존심을 내버리자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지체와 시누이간의 갈등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그동안 미움과 원망의 골이 아주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럴 때 문제는,
적용을 못하는 지체가 아니라,
권면을 하는 제 자신입니다.
제 말은 옳은 말이긴 해도,
무거운 짐을 묶어 어깨에 지우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저도 시누이에게 찾아 갈 당시 얼마나 힘들었으며 얼마나 망설였는지,
마치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 같았었는데..
정말로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저는 제가 믿음이라도 좋아서 그런 적용을 한 것 처럼,
자랑스럽게 말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속으로 은근히,
왜 적용을 못하느냐며 판단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했던 적용에,
내가 영광 받고 있는 것.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했던 일을,
내 믿음으로 이룬 것 처럼 착각하는 것.
그러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나를 본받으라고 은근히 강요하는 것.
틀린 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들어보면 자랑을 하거나 짐을 지우는 말을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모세의 자리에 앉아있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 말씀묵상하며 생각하니,
저도 참 골고루 다 갖고 있습니다.
나는 했는데 왜 적용을 못하느냐며 판단을 하기도 하고.
상석과 회당의 상좌를 겉으로는 겸손한 척 아니라 하면서 은근히 바라고,
보이고자 하여 넓은 경문과 큰 옷술을 달았던 것 처럼,
보여지는 것일 수록 넓고 큰 것 좋아하고,
며느리나 아랫 사람에게 문안 받는 것 좋아하고,
성경 잘 가르치는 랍비라는 소리 은근히 듣고 싶어하고,
어느 분과 비슷하다고 칭함 받는 것 엄청 좋아하고...
오늘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바리새인의 속성을,
저도 골고루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이런 내 모습을 털고 일어 나렵니다.
이런 모습 다 갖추고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어도,
그래도 말씀에 반응하여 돌이키는 바리새인이 되고 싶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