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 한 마리 ?
작성자명 [김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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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3.20
마태복음 21장 1절로~11절 말씀
초등학교 시절
제가 제일 좋아하던 동물은
하마 였습니다
큰 코와 (복코? 라는 제 코와 비슷해서 ?)
큰 덩치임에도 불구하고
발레복 입은 하마라든지
뭐 이런 친숙한 이미지 였는지
전 늘 동물을 그리면 하마를 그리곤 했습니다
욕심많고
소유욕도 강하고
늘 완전하기를 꿈꾸던 시절까지 하마는
제 안의 또 하나의 저의 모습 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좋아하게 된 동물은
기린이었습니다
긴 목과 큰 눈
늘 누군가를 기다리며 서 있는 기린의 이미지는
진리에 목말라하고 늘 삐딱하게 세상을 바라보던
저에게 정말 필요한 게 무언지, 늘 그리워하는 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오만하던 저를 위로하던 동물이었습니다
세상에 반항하고
뾰족한 바늘 끝같던 저의 마음을 눌러주었던.
가끔씩 저는 기린을 보러 동물원에 가곤 했습니다
기인 목처럼
기인 기다림의 시간들
기인 세월이 흘러야 사람을 알 수 있다는 진리 하나를
얻기 위해 전 그렇게 목말라야 했습니다
그 때 얻은 교훈이 있다면 ......
절대로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어떤 이를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 이었습니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고 그 사람의 속내를 알기까지
함부로 어떤 이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끔씩은 우리의 언어가
사람을 연결해 주고 따뜻하게 해주는 악수가 아닌
다른 사람의 가슴에 비수를 꼽을 수도 있다는걸
그 시절 알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많은 말보다 침묵이 더 좋음도.
폭풍같은 질고의 시간들을 보내고
유난히 제 눈에 쏘옥 들어온 동물
그건 사슴이었습니다
커다란 맑은 눈
고고한 자태
선한 마음같은 것들이,
그렇지 못한 제게는 늘 도전이고 목표였습니다
모든 이들과의 관계에서
조금의 껄끄러움도 잘 참아내지 못하는 저에게
사슴은 언제나 건널 수 없는 강처럼
그저 자신만을 보호하기 바쁜 저에게 늘 새로운 소망을 주곤 했습니다
제가 쓰는 언어
저의 몸짓
저의 무언의 예민한 촉각들이
사람들 앞에 섰을 때 늘 어김없이 발휘되어지는 것도
그 분의 음성듣기에 쉽게 나아갔던 것도
아마 이런 저의 바램이 속에서부터 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오늘부터 저는 나귀를 좋아하기로 했습니다
마가복음 11장 1절로 23절까지의 말씀 가운데
나오는 어린 나귀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함께 하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지난 주간
저흰 참 어려운 시간들을 지내고 있었습니다
한 순간에 전부를 잃어 버릴 것 같은 두려움과 초초함
그리고 은근히 제 안에서 소리치는 육의 소리들.
이미 기도하시는 분들로부터 말씀으로 여러 번 주시고
당일 날 꿈을 통해서도 알게 하셨지만.........
저희 가족 모두는 현실 앞에서 참 무력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큐티를 통해서 이미 나눈 적이 있던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전 저희가 작은 마을에 묶여있던
한 마리의 나귀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오시기까지
그 나귀는 묶여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분이 쓰시기 전까지
그 나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초라한 겸손함을 몸소 실천하셨던
그 분이 사용해 주실 때까지
그 나귀는 그 곳에 묶여 있어야 했습니다
또한 저희 역시 그래야 함을.......
오늘 본문 말씀을 읽으면서
똑같은 말씀을 두 번 주심에도
전 별로 놀라지도 감탄하지도 않았습니다
겉옷을 걸치고 예루살렘 입성을 하던 그 나귀는
이미 저희 가족의 꿈이고 소망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긴 기다림이 끝났을 때
그 나귀를 묶었던 끈이 풀어지고
그 분을 향해 걸어갔던 그 나귀의 기쁨이 저의 기쁨이 되라고
아니 기쁘지 않더라도 그렇게 선포하라고 그 분은 명령하셨습니다
제 영혼과
제 남편과
제 아이들에게 그렇게 선포하며
저는 감사의 제사를 그 분께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그 작은 마을 마굿간에서
그 분을 기다리던 그 어린 나귀를 기억하렵니다
찬양하며
춤을 추며
자복하며 온 마음을 다해 그 분께 나아갈 수만 있다면
저희 어떤 시련도 극복할 수 있음을
그래서 감사의 찬양을 올리며
찬양의 제사를 올립니다
저는......
한 마리 작은 나귀가 됩니다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