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인 삶, 사이비
작성자명 [김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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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0.10.05
사이비(似而非)의 사전적 의미는,
겉으로는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오늘 열왕기상 12장 25-33절을 보며, 종교적인 삶, 사이비를 묵상한다.
북국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이 사이비를 만들었다.
십계명을 정면으로 무시하고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 최남단 벧엘과 최북단 단에 두었다.
사이비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예배하러 가는 것을 막기위해 만든 우상이었다.
레위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을 택해 제사장으로 삼았다.
사이비다.
말씀에 근거하지 아니한, 전혀 엉뚱한 자격없는 자에게 제사장의 직분을 주었다.
말도 안되는 엉터리, 사이비다.
그뿐이 아니다.
7월15일에 드려야 할 초막절 제사를 8월 15일에 드렸다.
사이비다.
전혀 근거가 없는, 임의로 만든 날짜다.
이렇게 여로보암은 사이비를 만들었다.
남국 유다의 예루살렘성전에 못가게 하기위해,
북국 이스라엘에 이렇게 근거도 없는, 엉터리 사이비들을 만들어 지키게했다.
악한 일이다.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속은 다른,
흉내는 내지만 내용은 전혀 아닌 사이비,
여로보암이 한 일은 그렇게 악한 짓이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영적 기초>란 책이 생각난다.
예수 전도단의 김순호님이 쓴 책이다.
그 책에 종교적인 삶 이란 용어가 나온다.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거절하는 것이 아니며,
모든 종교적 활동 속에서 주님을 고백하고 인정은 하지만,
내면에 주님과의 인격적 만남이 없는 삶이라고 그는 정의하고 있다.
종교적 삶을 얘기하면서 그는 사데교회를 예로 든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사실은 죽은 교회.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교회(딤후3:5).
그 교회의 전형으로 사데교회를 든다 (계3장).
기도를 안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하지만 기도의 능력은 믿지 못하는 삶,
그래서 양껏 기도하고서도 불안해하고 염려하며 걱정과 근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삶,
종교적 삶이다.
성경을 안읽는 것도 아니다.
성경을 읽고 줄줄 외우기도 하지만,
인격에서 말씀의 내면화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삶.
그래서,
말씀과 생활, 말씀과 인격이 별개의 것으로 치부되고 있는 삶.
종교적 삶이다.
사데교회가 그랬다.
그래서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사실은 죽은 교회라고 했다.
그의 말을 따르면, 종교적인 삶을 살고있는 교회가 사데교회라 했다.
오늘 하나님은 나에게도 물으신다.
넌 혹시 사데교회가 아니냐.
넌 혹시 종교적인 삶을 살고있는 사이비가 아니냐.
너 역시 그런 엉터리가 아니냐..
가슴 뜨끔해지는 화욜의 맑고도 선선한 가을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