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거리
작성자명 [김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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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0.10.01
열왕기상 11장 14-25절을 보며, 근심거리를 묵상한다.
다윗의 시대에 근심거리가 있었다.
요압과 시므이,그리고 아도니야였다.
다윗이 죽으면서 솔로몬에게 유언으로 남긴다.
이들을 처치하라고.
그래서 솔로몬이 처치했다.
단칼에 죽여버렸다.
그래서 근심거리가 없어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솔로몬의 시대에 또 새로운 근심거리가 생겼다.
에돔 사람 하닷, 엘리아다의 아들 르손..
생각지도 않았던 근심거리였다.
도무지 상대가 될 것같지도 않았던 어리디 어린 아이들이었다.
그들이 장성해서 솔로몬을 대적하는 근심거리가 되고 말았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일으키셨다고,
그래서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 하셨다고..
타락한 까닭이다.
솔로몬이 태평성대에 말씀을 어기고 죄를 지은 까닭이다.
육적인 타락과 영적인 타락에 빠져 분별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채찍으로 쓰시려고 일으키신 대적들이다.
말로 해선 안되기에,
아무리 참고참고 기다려도 도무지 돌아올 기미가 없기에,
계속적으로 주지육림에 빠져 이성을 잃어버리고 말았기에,
하나님이 히든카드로 준비하신 채찍이다.
영적인 장애물이 있으면 육적인 장애물이 생긴다.
영적인 장애물을 제거하지 않으면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장애물을 제거했다 해도 또다른 장애물이 등장한다.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적인 막힘, 블로킹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래서 근심거리를 주신다.
근심거리를 통해 영적인 장애물을 보게하기 위하심이다.
그 장애물을 근원적으로 제거해버리게 하기 위하심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런 사람들이다.
영적인 장애물이 있으면 육적인 장애물, 근심거리가 생기는 것을 아는 사람,
그래서,
육적인 장애물, 근심거리가 있을 때
무엇보다 먼저 영적인 장애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들어갈 때에만
영육간 모든 장애물은 자연히 제거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