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증명서 보다 귀한 것
작성자명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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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3.1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마21:21~22)
한참 공부하고 미래의 꿈을 키워가는 중요한 시기이던 고등학교 2학년 때(1990년)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나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예수님의 말씀안에서 찾기 시작했고 그래서 외교관 선교사를 서원하게 되었다. 그것도 아프리카에서 헌신하는 선교사로.
대학원까지 가면서 법학과 정치학 공부를 하고 외교관시험인 외무고시를 열심히 공부했지만 1997년까지 합격하지 못하여, 하나님은 나의 이렇게 ‘숭고한’ 서원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구나 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는 군대를 가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고 또 지금의 직장을 다닌다.
그러나, 그 때 주님은 내 기도를 ‘들으셨고’ 또 응답하셨다는 것을 요즘에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주님은 내가 무엇을 원했었는지 분명히 통찰하고 계셨다. 마치 두소경이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치며 주님을 불렀을 때(마20:30~31) 예수님은 그들이 무엇을 원했는지 아셨던 것처럼.
나는 선교사가 얼마나 힘든 일이지 아프리카라는 곳이 어떤한 곳인지도 몰랐다.
무엇보다도 나의 내심에는 선교사가 아닌 멋져보이는 외교관이라는 직업을 갖고 싶었고, 선교사라는 일이 갖는 어려움과 고난은 알지 못한 채 단순히 전도하거나 전업선교사를 지원하는 정도로 생각하면서 내가 주님께 서원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을 주님은 꿰뚫어 보고 계셨다.
그래서 주님은 내 기도를 듣기만 하셨을 것이다. 그때 만일 내가 외교관 시험에 합격해서 이것이 하나님의 기도응답이라고 착각했더라면, 나의 모습은 최대한 좋게 봐 준다고 해도 선교사 후원과 기타 편의제공 정도하면서 생색은 있는 대로 다 내고 게다가 선교하고 있다는 오만 속에 내가 누리고 싶은 것을 다 향유하며 ‘굉장히 교양있게’ 믿고 있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불신 부모님과 친척 이웃의 구원을 위해 가슴치며 우는 애통함은 처음부터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그런 상상이 아찔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놀랍고, 은혜롭지 않을 수 없다.
국민학교 입학하면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낙방을 해본 일이 없었던 나에게 이런 실패담은 (붙으면 회개하고, 떨어지면 감사하라는 목사님 말씀에 근거해서 볼 때) 내겐 그나마 유일무이한 ‘감사 제목’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때의 내 기도와 서원은 무효인 것인가, 아니면 취소해야 하는 것인가?
지금 살고 있는 전셋집이 너무 좁아서 목자가 된 이후 2주가 지나도록 우리집에서 목장예배를 드리지 못하다가 공간 마련을 위해 집안에 쌓인 짐들을 최대한 버리기로 작정하고 정리하던 중 ‘정치학 석사학위 증명서’를 다시 보게 되었다.
학위를 받은 것은 군입대를 미루면서 외교관시험을 준비하는 시간을 벌기 위함도 있었지만, 분명 내 맘에 크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은 세상의 부당한 권력과 힘에 의해 소외되고 눌린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의 자리에 다가서고 싶은 것이었다. 그래서 법대를 다니며 동기들은 죄다 사법시험(변호시자격시험)을 준비할 때 나는 국제법을 공부하고 인권에 관심을 갖고 대학원에서는 국제정치를 공부하면서 ‘인권의 국제정치적 의미와 본질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정치학석사까지 하게 되었다.
그 증명서를 보면서 주님은 그 때의 내 기도를 들으셨고 그 기도는 지금도 유효하며, 여전한 태도로 나를 부르시고 계신다는 것을 느낀다.
그렇다고 외무고시를 다시 공부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 기도가 지금도 유효한 이유는 (물론 부족하지만) 요즘의 내 생활은 말씀을 따라 날마다 순종하려고 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말씀을 이루시는 주님이시기에 ‘멍에 매는 짐승의 새끼’와도 같이(마21:5) 지금 내게 허락하신 목장과, 교회 가정과 직장에서 잘 매에 있으면 쓰임받는 때가 온다고 하시기에 말이다.
그래서, 희망을 갖게 된다. 주님의 때에 반드시 쓰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으로 받습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지금의 매임이 주께서 쓰시는 사건이 되면 비록 내가 나의 이상의 날개가 현실에 묶여 있어도,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인권과 정치학과 아프리카선교와 무관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나는 주가 쓰시는 도구라고 하시기에 또한 소망을 갖는다.
지금 허락하신 목장에서 주님의 마음을 닮기 원한다.
주님은 그 때의 내 기도를 들어주셨고 지금도 그 서원기도를 이루어가고 계신다!
이것을 깨닫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고, 감사할 뿐이다.
이제는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하신 말씀을 바로 이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