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물들아! 무엇을 원하느뇨?
작성자명 [이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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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03.15
마 20:20~20:34
두 가지 사건의 화두는
무엇을 원하느뇨 (21)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33)다.
다른 두 가지 상황이지만
양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은 한결같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의 요구가
주님의 마음을 찌르는 칼과 같았다면
소경 두 사람의 절규는
주님의 마음을 울리는 민망함이었다.
묻기 전에 머리칼까지 세고 계신 분이
이런 질문이 필요없음에도
그들의 잘못된 시선을 교정시켜 주시려
제자들을 불러 상세히 설명하시나
이때까지도 이 말뜻을 제대로 이해한 제자는 없었다.
허나 길바닥에 앉아서 구걸을 하던
소경 두 사람은 다윗의 자손 예수를 온 몸으로 환영했다.
무리들의 꾸짖음이 귀에 들려 오지 않았을 것이다.
무리들 가운데 계실 한 분 예수님의 귀에 들리길
혈루병 여인이 옷자락만 만져도 낳을 것 같았던
그 강렬한 믿음으로 어디쯤에 계신지도 모르는
주님에게 자신들을 최대한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주님은 이미 그들이 부르시기 전에
두 소경의 타는 듯한 열망을 아셨으리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희를 불러
큰 무리는 이 순간 들러리가 되었다.
더러운 길바닥에서 뒹굴던 거지 소경 둘을 위한
화려한 만남의 순간이 펼쳐진다.
일생일대의 기가 막힌 순간이 펼쳐진다.
꿈인가 생시인가
가라사대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 물음 때문에 하루종일 고민 했다.
왜 이런 말씀을 물어 보셨을까?
이미 겉모습으로 그들의 필요를 아셨을텐데...
얼마나 바쁘신 분이신데
왜 이 질문이 꼭 필요했을까?
시장에서도 설겆이를 하면서도 종일 말씀을 되새겼다.
해답은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에게
받은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으셨던 듯 싶다.
소경들아! 너희들도 내 우편과 좌편을 원하느냐
가로되 주여 우리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같은 질문에 너무나 다른 대답
12 제자를 열심으로 가르쳤건만
이제 십자가 질 날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너무나 세상적 욕심에 사로잡힌 속빈 제자들...
처음 만난 소경 둘은 다윗의 자손이라 외친다...
주여 우리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주님의 정확한 의도와 사명을 알고 있었다
속앓이를 하면서 힘겨웠을 예수님의 마음이
일순간 울컥 했을 것 같다.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저희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저희가 예수를 좇으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
세상을 두루 다니시면서
잃어 버린 영혼에 대해서
십자가 지실 것을 예상하시면서
문둥병자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때
그야말로 절대치의 슬픔을 표현한
민망히 여기심을 이곳에서 사용하셨다.
주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
바로 이런 이들을 찾아 고치고 회복시키는 것인데
치유자와 회복자의 하나 됨...감전이 된 듯
인간적으로 흔들리는 주님의 감성이 비수처럼 꽂혀 온다.
진정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줄 법 싶었던
제자들에게 피멍이 든 가슴을
거리의 두 소경이 치유해 주고 있는 아이러니는
오늘을 사는 내게도 존재하고 있기에 공감이 간다...
사랑의 주님!
얼마나 외로우셨어요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어요
얼마나 춥고 배고프셨어요
얼마나 속이 곪아 터지셨어요
얼마나 홀로 우시며 입술을 깨무셨어요
공생애 3년 동안
소경들, 귀머거리들, 벙어리들과
얼마나 답답하셨어요
얼마나 참고 참고 참으셨어요
동문서답에도 꾸짖지 아니하시고
얼마나 자상하게 설명해 주셨는지요
거리의 두 소경이
그나마 위로자가 되었네요
아버지!
당신 때문에 저는 외롭지 않아요
당신의 지극한 사랑 때문에 울지만
절절한 그리움이 더 크고 큽니다...
세상의 온갖 부유함이 부럽지 않아요
제게 필요한 것을 그때그때 주시니
욕심 낼 것도 없고 그저 평안합니다.
왜 저 같은 것에게
주님의 마음을 주셨나요
너무나 부끄러운 속물인데
받은 바 사랑을 아낌없이 나누어
당신의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겠나이다....
나의 달려 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20:2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