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22:17-35
17 그가 위에서 손을 내미사 나를 붙드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
18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그들은 나보다 강했기 때문이로다
19 그들이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20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구원하셨도다
21 여호와께서 내 공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갚으셨으니
22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을 행함으로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23 그의 모든 법도를 내 앞에 두고 그의 규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
24 내가 또 그의 앞에 완전하여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하였나니
2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대로, 그의 눈앞에서 내 깨끗한 대로 내게 갚으셨도다
26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27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이다
28 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리이다
29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이다
30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나이다
31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진실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
32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33 하나님은 나의 견고한 요새시며 나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시며
34 나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35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 ♱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만 의지하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내가 의지해야 할 하나님은 첫째, 나를 건지시는 분입니다.
17절에 ‘그가 위에서 손을 내미사 나를 붙드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라고 해요. 여기서 건져내다라는 단어는 물에 빠진 사람을 끌어올린다는 뜻으로 출애굽기에서 바로의 딸이 아기 모세를 물에서 건져낼 때 쓴 바로 그 단어예요. 사망의 물결에 잠겨가던 자신을 하나님이 손 내밀어 끌어올리셨다는 다윗의 고백입니다.
18절에는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라고 하지요. 여기에 나오는 건지다라는 단어는 사무엘상 30장 22절에 나온 도로 찾다, 그리고 창세기 31장 9절에 나오는 빼앗다라는 단어와 같은 어근입니다. 특히 강한 자의 수중에 들어있는 것을 더욱 강한 힘을 사용하여 되찾는다는 의미예요. 마치 잃어버린 물건을 강한 자에게서 빼앗아 오는 것처럼 하나님이 다윗의 강한 대적보다 더 강한 힘으로 다윗을 그의 대적으로부터 구원해 내셨음을 뜻합니다. 다윗은 목동 시절부터 사자와 곰 같은 짐승들로부터 양들을 건져내시는 하나님의 도움을 생생히 체험했어요. 또한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사울의 손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수차례나 건짐을 받았죠. 모든 것이 불타고 가진 것을 다 빼앗겨버린 시글락에서조차 도로 찾게 하시는 여호와의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그러하기에 다윗은 19절에 ‘그들이 나의 재앙의 날에 내게 이르렀으나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라고 노래합니다. 나의 실수와 연약함으로 빼앗겼을지언정 하나님이 도로 찾게 하시고 건지시기에 의지할 수 있는 것이죠.
저 역시 그랬어요. 가난한 집에서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보태고 학비를 벌며 살았기에 저를 건져줄 누군가를 기다렸던 것 같아요. 나의 실수와 연약함으로 빼앗겼을지언정 하나님이 도로 찾게 하시고 건지시기에 의지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첫 만남에 포드 외제차를 타고 온 남편이 저를 건져줄 사람이라 생각하며 결혼했죠. 부잣집에 시집가니 주변 사람들이 교회 반주 열심히 하고 믿음 생활 열심히 해서 시집 잘 갔다고 말해줬어요. 그런데 다들 아시다시피 제가 건짐을 받았나요? 아니죠. 오히려 고통스러운 13년의 시집살이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가 언제 건짐을 받았죠? 힘든 시집살이 가운데 내가 빠진 곳이 시집살이라는 환경이 아니라 내 죄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입니다.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갇힌 환경에서 말씀 보고 기도하는 것뿐이었어요. 말씀이 들리니 내 죄가 보이고 이 죄에서 나를 구원해 주실 분이 오직 예수님인 것을 깨닫게 되니 환경은 그대로였지만 그 환경이 말씀으로 해석되기 시작했어요. 우리를 많은 물에서 건지시며 강한 원수에게서 건지시고 잃어버린 모든 것을 되찾게 하셔서 20절의 넓은 곳, 즉 구원의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는 분이 바로 주님이심을 깨닫게 된 거예요. 그러니 어떻게 주님을 의지하지 않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떠세요?
♱ 나는 어디로부터 건짐을 받고 싶나요? 잃어버린 것들 중 어떤 것을 도로 찾고 싶나요? 아직도 손을 내밀어 도움을 주는 사람의 손길만 기대하진 않나요?
내가 의지해야 할 하나님은 둘째, 나를 깨끗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21절 이하로 깨끗함, 깨끗한 대로, 깨끗한 자, 주의 깨끗하심 등 깨끗함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반복해서 나와요. 그런데 여기서 깨끗함이란 행위의 깨끗함이 아니에요. 착한 생각을 넘어서는 구별된 가치관과 생각이며 구별된 언어, 구별된 표정을 말해요. 곧 거룩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깊이 의지하며 점점 더 거룩해지는 것,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 거룩임을 아는 것이 곧 깨끗함이에요. 그러니 내 공의라는 말도 인간의 완전한 행위를 뜻하는 게 아니죠.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신뢰하는 그 믿음 자체를 하나님이 의롭다 여겨 주시는 거예요. 나는 비록 실패하고 넘어지지만 그럼에도 공평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드는 것. 그것이 공의요 깨끗함입니다.
다윗이 얼마나 죄가 많은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어요.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두려워했기에 사울을 죽일 수 있었으나 그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지요. 22절에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을 행함으로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라고 해요. 23절에도 ‘그의 모든 법도를 내 앞에 두고 그의 규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라고 해요. 여호와의 도를 지킨다는 것은 죄에 넘어져도 또 돌이키고 또 말씀 앞에 나를 쳐서 복종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돌아보면 내가 적용해서 깨끗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이 나를 깨끗하게 하신 것임을 알게 됩니다.
24절에 ‘내가 또 그의 앞에 완전하여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하였나니’라고 해요. 그런데 이 완전함은 죄가 하나도 없는 상태가 아니에요. 오히려 내가 결코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완전함입니다. 결코 깨끗해질 수 없는 내가 오직 십자가 보혈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가질 때 ‘여호와께서 나의 의지가 되셨도다’라고 진심으로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적용 질문 드립니다.
♱ 어떤 죄에서 깨끗함을 받고 싶나요? 말씀 앞에서 끊어 내야 할 죄는 무엇인가요? 내 인생의 목적은 거룩입니까? 여전히 행복입니까?
결혼 예배를 준비하며 근본적인 연약함을 묵상하다가 불안의 물 가운데서 건지신 주님의 말씀대로 따를 것을 결단했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최근에 결혼한 저는 몇 달 전에 결혼 예배를 앞두고 근본적인 저의 연약함을 묵상했어요. ADHD 경계에 있는 저는 약효가 떨어지면 충동성이 올라오고 무기력하면 설거지와 청소를 미루는 등 일상생활이 어려울 때가 있어요. 또 바쁜 일정이 계속되니 마음이 지쳐서 외출하기가 싫고 공동체에 있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러다 이런 내가 결혼해도 될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많은 불안의 물 가운데 있는 저를 예배 때마다 만나서 건져주셨어요. ‘주어진 자리를 떠나지 않고 나만 붙들면 돼’라고 마음으로 안심시켜 주셨지요. 무엇보다도 힘들면 극단적으로 생각하던 제 습관을 바로잡아 주셨어요. 평소 저는 ‘남자 친구와 그의 가족은 믿음이 흔들리고 무기력한 내 모습을 보면 실망할 거야’라고 생각하며 그것이 사실이 될까봐 두려웠어요. 그런 제게 하나님은 ‘지금 연약한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과거에 보여준 열정과 사랑을 거짓이라고 판단하진 않아요. 앞으로 사실과 개인적인 판단을 잘 분리해 봅시다.’라는 상담 선생님의 권고를 통해 어두운 제 마음을 밝혀주셨습니다. 또한 저는 공동체 지체들의 체휼과 권면을 방패 삼아 자기 비하와 자책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지요. 그리고 말씀과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용기로 새로운 한 주를 견딜 수 있었어요. 시시각각 변하는 제 마음과 환경보다 31절 말씀처럼 완전하고 진실한 하나님의 말씀을 헌법처럼 제 삶에 법도로 두고 따를게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기중심성의 성벽도 뛰어넘게 하실 것을 믿고 담대히 나아갈게요. 저의 적용은 ‘부정적인 판단을 사실이라고 믿게 될 때 기도하며 공동체와 남편에게 나누겠습니다. 집안일의 우선순위를 정해 하루에 하나씩 하겠습니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 남편은 완전주의자였어요. 외박하지 않고 효자에 검소하고 성실했지요. 그러니 늘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를 부르짖었어요. 완전하고 옳다는 생각에 부모님은 물론 아내인 저와 자녀들도 모두 남편을 어려워했지요. 하지만 세상이 말하는 완전함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완전함과 아주 달라요. 내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완전함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건지시고 깨끗하게 하시는 그 하나님을 의지하며 완전한 주님을 더욱 붙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릴게요.
주님, 많은 물결 같은 고난 가운데서도 손 내밀어 저희를 건져주시고 강한 원수의 손에서 저희의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찾게 하시는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럼에도 저희는 사람의 손길만 바라보고 환경이 바뀌기만을 기다리며 정작 주님을 의지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내 힘과 내 판단으로 깨끗해지려 애쓰다 지치고 넘어지기도 합니다. 저희가 결코 완전할 수 없음을 인정하며 오직 십자가 보혈만을 힘입어 주님 앞에 나아가길 원합니다. 날마다 주님만을 의지함으로 넓은 곳 구원의 자리로 나아가는 저희가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