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혼자 살 수는 없다. 자기는 혼자 사는 것 같지만 자신도 모르게 어느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공동체의 주체가 누구냐 이다. 우리들 교회 같이 하나님이 주인이신 믿음의 공동체는 흔치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초의 공동체는 가족인데 그 공동체 조차도 내 마음을 다 털어 놓고 아픔을 이야기 하지 못할 때가 있음을 안다.
때로는 말 못 할 아픔을 평생 내 마음에 갇아 놓고 병들어 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공동체 중에서 가장 소중한 공동체는 내 아픔을 마음대로 열어 놓고 말 할 수 있는 공동체야 말로 우리 삶의 최고의 공동체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나는 지금까지 나의 연약한 모습과 부끄러운 모습을 적나라하게 얘기 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씩 나의 마음이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속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공동체가 바로 최고의 공동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주님은 오늘 이스라엘 공동체를 이끌어 갈 다윗의 지쳐있는 연약한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 공동체를 지키시기 위해 돕는자를 예비해 놓으셨다는 것을 보여 주신다. 하지만 나는 아무 능력도 없으면서 내가 다 할 수 있다고 또 하여야 하고 내가 해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살아왔음을 고백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나의 연약함을 부끄러운 모습을 애써 말하지 않은 위선과 가증함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땅에는 많은 공동체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다단게 라는 사람들에게 환영 받지 못하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때론 가족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공동체가 다단게 공동체 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다단게가 아니고는 존재 할 수가 없습니다.
다단게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으로 말미암아 피해를 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피해를 본사람중 99%는 다 자기 욕심에 끌려 손해를 봤음에도 마치 다단게로 인해 피해를 봤다고 핑개나 자기 합리화를 시키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은 그 아굴람 공동체와 같은 다단게 공동체에 복음을 들고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거기에는 이미 아비새와 십브개와 엘하난 그리고 요나단을 준비해 놓으셨다고 하십니다. 아무리 복음을 위해서 일한다 해도 지치고 때론 감당하기 어려운 상대도 있다고 하시지만 주님은 복음을 전하는 그 곳에 협력자를 예비 해 놓으셨다고 하십니다.
주님! 지금까지는 내 유익을 위하여 열심을 냈다면 이제 부터는 나같은 죄인을 이곳으로 불러 주심을 전하는 종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여! 종이 감당할 수 일은 아니오니 함께 할 형제들을 붙여 주시옵소서. 이 아둘람 공동체가 믿음의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둔탁한 입술을 통해 나의 수치와 부끄럽고 연약한 모습을 적나라 하게 드러내 말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살아계셔서 나를 인도해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