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1)
저는 2026년 2월, 우리들교회에 처음 왔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섭리가 얼마나 놀라운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2026년 4월 26일, 제 생일이었습니다.
(136-4 부부목장
(김낙흥 목장님=장로님/추종범 부목자님 기록)
기초생활수급자이면서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는 저는 목장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그날 김낙흥 목자님께서 제게 따뜻한 식사를 대접해 주셨습니다.
저는 문득 '왜 저에게 밥을 사주셨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고, 그 일을 AI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 그 이야기가 김양재 목사님의 설교 중 자연스럽게 소개되었습니다.
물론 김양재 목사님의 의도된 일은 아니었지만,
저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생일 선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일을 통해 저는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사람의 의지와 우연만으로 이런 일들이 가능할까요?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삶을 다스리시며, 때로는 나라와 왕들의 계획까지도 주관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히스기야를 위기에서 건지시기 위해 앗수르 왕의 계획을 돌이키신 하나님을 보며, 우리의 삶 또한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믿게 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9)
우리의 만남과 계획, 그리고 삶의 방향까지도 하나님의 허락과 인도하심 가운데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저 자신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봅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삶으로 살아내고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마태복음 23:2-3)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말씀은 순종하라고 하셨지만, 말씀을 가르치면서도 삶으로 실천하지 않는 외식을 책망하셨습니다.
저 역시 우리들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전해 주시는 목사님과 공동체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 또한 아직 그 말씀을 온전히 살아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회개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뿐입니다.
QT를 하며 성경을 묵상할수록 제 마음에는 한 가지 질문이 계속 남았습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태복음 25:40)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마태복음 10:42)
사도 야고보도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야고보서 4:17)
또한,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고보서 2:17)
예수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21)
이 말씀들을 묵상하면서 저는 자연스럽게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말하면서도 정작 눈앞에 있는 작은 필요에는 무관심했던 적은 없었을까요?
우리는 예수님을 입술로는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도 삶에서는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요?
이 질문은 누군가를 정죄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먼저 저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저 역시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이며,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죄인입니다.
다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이라도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처음 교회를 찾은 사람이었다면, 설교보다 먼저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입술보다 삶을 먼저 읽습니다.
복음은 말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섬김을 통해 살아 움직입니다.
우리는 성결하신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보여 주기 위한 신앙이나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한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신앙을 살아가야 합니다.
김양재 목사님께서는 "구속사는 타인의 마음을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귀로만 듣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삶으로 살아낼 때,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은 믿고 싶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실망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말이 더 이상 들리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며,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를 용서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그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의를 세우기보다 하나님의 의를 구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여기서 '그의 의'는 우리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말합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빌립보서 3:9)
또한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고 자기 의를 세우려 했음을 지적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로마서 10:3)
예수님께서도 바리새인들의 자기 의를 경계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5:20)
결국 믿음의 중심에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자신의 의를 높이는 삶은 결국 자신을 위한 삶으로 끝나지만,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삶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주님, 제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시고, 제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구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2)
성경을 묵상하다 보면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겉모습보다 마음을 먼저 보십니다.
사람은 행동만 보지만, 하나님은 그 행동의 동기와 의도까지도 아십니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역대상 28:9)
또한 말씀합니다.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히브리서 4:13)
이 말씀 앞에서 저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결코 속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칭찬받기 위한 신앙, 보여 주기 위한 봉사, 인정받기 위한 섬김은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손이 아니라 마음을 먼저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얼마나 동행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며 베드로를 자주 떠올립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마태복음 26:34)
그러자 베드로는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마태복음 26:35)
그러나 결과는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였습니다.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며 베드로를 비난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 모습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제 이익과 두려움 앞에서 하나님보다 제 자신을 먼저 선택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연약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미 우리의 연약함을 알고 계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넘어졌을 때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실패했지만 끝이 아니었습니다.
눈물로 회개했고, 다시 예수님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완벽한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며 돌아오는 사람을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제 자신에게 말합니다.
실족할 수 있습니다.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관계가 회복될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우리를 붙드십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그 은혜를 경험하면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사람의 손해와 이익을 먼저 계산했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묻게 됩니다.
예전에는 내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도의 본질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가복음 9:23)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을 미워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 욕심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선택하는 것입니다.
내 의보다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내 자랑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보다 삶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삶으로 복음을 살아내야 합니다.
성경은 마지막 심판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마태복음 25:31-33)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마태복음 25:41-43)
이 말씀은 제 마음을 깊이 흔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거창한 업적보다 작은 사랑의 실천을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의 배고픔을 외면하지 않는 것.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건네는 것.
외로운 사람을 따뜻하게 맞아 주는 것.
병든 사람을 돌아보는 것.
이런 작은 사랑이 하나님께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마태복음 10:42)
냉수 한 그릇.
너무도 작은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작은 사랑조차 기억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스스로에게 질문했습니다.
나는 과연 누군가에게 냉수 한 그릇을 건네며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고 있는가?
신앙은 거창한 말보다 작은 순종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 '지극히 작은 자'를 보내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을 외면할 것인지,
사랑으로 맞이할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선택의 순간마다 제 뜻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먼저 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3)
저는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사람입니다.
많은 분들이 제게 묻습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나요?"
저는 제 지혜나 통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말씀을 묵상하며, 조금씩 깨닫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습니다.
사람의 지식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성령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우리를 실망시킬 수 있습니다.
목회자도, 교회도, 공동체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언제든 실수할 수 있는 연약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사람을 바라보다가 시험에 들기보다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소망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공동체를 통해서도 일하십니다.
교회는 완전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이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는 공동체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하기보다 하나님께 시선을 맞추어야 합니다.
질투와 시기, 미움과 분열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유혹일 수 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서로를 정죄하기보다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교회에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를 드리고, 봉사를 하고, 직분을 맡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신앙의 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왜 교회에 왔는지,
왜 봉사하는지,
왜 헌금하는지,
왜 기도하는지,
그 모든 동기를 하나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주님,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신앙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태복음 5:14)
빛은 스스로를 드러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비추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 살아갈 때, 사람들은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전도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귀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정죄하기보다 복음을 전하고, 사랑으로 섬기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한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기쁨은 세상의 어떤 성공보다도 귀합니다.
저는 종종 이런 비유를 떠올립니다.
라디오는 정확한 주파수에 맞추어야 방송이 들립니다.
99.8도 아니고,
100.0도 아닙니다.
99.9MHz에 맞추어야 원하는 방송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준을 세상에 맞추면 세상의 소리가 들립니다.
기준을 내 욕심에 맞추면 내 욕심의 소리만 들립니다.
그러나 기준을 하나님께 맞추면 하나님의 음성을 조금씩 듣게 됩니다.
그 주파수를 맞추는 방법은 특별한 기술이 아닙니다.
말씀을 가까이하고,
기도하며,
회개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태복음 6:33)
저는 이제 기도의 내용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하나님께 제 계획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기도하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 제 뜻을 이루어 달라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제 이름이 높아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인생은 길어야 백 년 남짓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은 끝이 없습니다.
그 영원을 바라보며 살아간다면 지금 우리의 선택도 달라질 것입니다.
손해와 이익보다 순종을 먼저 생각하게 되고,
세상의 기준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붙들게 될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많이 부족합니다.
넘어질 때도 있고, 실수할 때도 있으며, 회개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판단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닙니다.
오히려 먼저 저 자신을 향한 고백이며,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회개의 마음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며 마음이 불편하셨다면 저를 바라보지 말아 주십시오.
저 역시 연약한 사람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반드시 실망을 안겨 줄 수 있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시고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저는 우리들교회에 오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하신 것도,
QT를 통해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게 하신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도록 인도해 주신 김양재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구속사의 관점을 배우게 되었고, 제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완전한 사람이 되기보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말보다 삶으로 복음을 전하고,
자기 의보다 하나님의 의를 구하며,
보여지는 신앙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장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부디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자신을 돌아보며,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참된 제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마태복음 11:15)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시편 150편 6절 (개역개정)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아멘.
기도 부탁드립니다.
김양재 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하신 말씀이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기도는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저희 가정의 기도제목을 나누고자 합니다.
136-4 부부목장 성도 조우형
☎ 010-8732-3352
카카오톡 ID : giraffee87
E-mail : giraffee2319@gmail.com
사랑하는 우리들교회 성도 여러분.
부족한 저희 가정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성경 말씀처럼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주님께 한 것이라는 말씀을 믿습니다. 부족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함께 하나님께 올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는 네 식구의 가정입니다. 현재 기초생활수급자로 생계급여, 주거급여, 의료급여를 받고 있으며, 위례 LH35단지 국민임대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제 아내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생후 5개월 무렵 부모에게 버려졌고, 입양기관을 통해 미국으로 입양되어 자랐습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 친어머니께 버림받고, 이후 오랜 시간 하나님 믿는 새엄마의 학대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성인이 된 뒤에는 자폐스펙트럼장애의 특성으로 인해 직장생활을 오래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의 비언어적인 신호를 잘 이해하지 못해 오해가 쌓였고, 반복되는 인간관계의 어려움과 괴롭힘을 겪었습니다. 공단 검사에서도 자폐로 인한 근로능력 무능력 판정을 받았습니다.
김양재 목사님은 고난은 축복이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감당할 고난은 정말 죽고싶을만큼 힘들었습니다.
26살 무렵에는 반복되는 대인관계의 일방적인 단절과 깊은 절망 속에서 삶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아 교회에 갔고, 십자가에 목매 죽을 각오로 하나님께 제 삶을 맡겨 드렸습니다.
"제 삶의 모든 주권을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저를 살리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거두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 마음으로 의미도 잘 모른 채 17일 동안 금식하며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 후 자책과 죄책감에 교회를 떠나게 되었지만,
14년이 지난 뒤 분당GM산부인과 위혜정 과장님의 권유로 삼고초려 끝에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고, 다시 하나님을 만나 관계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 은혜는 지금도 제 삶에서 가장 큰 감사입니다.
2024년 2월 20일 첫째 아들을 허락해 주셨고,
2026년 6월 13일에는 둘째 딸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게 하시고, 상처 많은 저희 부부에게 가정을 허락하시고, 두 아이까지 맡겨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저를 버렸다고 느낀 순간들이 많았지만, 하나님만은 끝까지 저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저를 버리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품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부터 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거두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많이 납니다. 수도꼭지 튼것마냥 자동으로 흘러요.
저처럼 작고 보잘것없는 사람도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부디 저희 가정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저희 가정뿐 아니라, 우리들교회 모든 성도님들의 기도제목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지기를 함께 기도합니다.
또한 저희보다 더 힘들고 아픈 이웃들을 먼저 기억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위로와 도우심이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