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9:40-20:2
19:40 왕이 길갈로 건너오고 김함도 함께 건너오니 온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나 왕과 함께 건너니라
41 온 이스라엘 사람이 왕께 나아와 왕께 아뢰되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이 어찌 왕을 도둑하여 왕과 왕의 집안과 왕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가게 하였나이까 하매
42 모든 유다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대답하되 왕은 우리의 종친인 까닭이라 너희가 어찌 이 일에 대하여 분 내느냐 우리가 왕의 것을 조금이라도 얻어 먹었느냐 왕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 있느냐
43 이스라엘 사람이 유다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는 왕에 대하여 열 몫을 가졌으니 다윗에게 대하여 너희보다 더욱 관계가 있거늘 너희가 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우리 왕을 모셔 오는 일에 먼저 우리와 의논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
20:1 마침 거기에 불량배 하나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세바인데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이었더라 그가 나팔을 불며 이르되 우리는 다윗과 나눌 분깃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우리에게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 하매
2 이에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 따르기를 그치고 올라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따르나 유다 사람들은 그들의 왕과 합하여 요단에서 예루살렘까지 따르니라
♱ 유다와 이스라엘의 언쟁 ♱
하나님 아버지, 강경한 언쟁을 그치고 진정한 소통을 하기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강경한 언쟁을 그치려면 첫째, 대접받고 인정받으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압살롬의 반란이 끝나고 다윗이 길갈을 건너 귀환할 때 온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 왕과 함께 건넜어요. 그런데 이 모습을 본 이스라엘 사람들이 왕에게 항의합니다. 41절에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이 어찌 왕을 도둑하여 왕과 왕의 집안과 왕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가게 하였나이까’라고 해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왕을 사랑해서 모시겠다는 마음이 아닙니다. 왜 저들이 먼저 차지하느냐는 경쟁심이 발동한 것이죠. 언제는 다윗을 배척하고 압살롬을 따라 반역에 동참해 놓고는 이제 상황이 달라지니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생각에 억울해하는 겁니다. ‘어찌 왕을 도둑하여’라는 이 말에는 왜 너희가 이 일의 주인공이 되느냐, 왜 너희만 생색을 내고 직분을 챙기려 하느냐라는 시기와 질투가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죠. 내가 공동체에서 열심히 섬겼는데 인정받지 못하면 섭섭하고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누가 더 헌신했느냐 누가 더 공로가 있냐 따지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와요. 내가 주인공이 되려는 마음과 내가 대접받고 생색을 내야 직성이 풀리는 탐욕은 공동체를 깨뜨리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바르실래가 다윗의 청을 거절하고 예루살렘에 따라가지 않겠다고 한 것이 진정한 섬김이었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나의 이해득실을 계산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만 사랑함으로 수고할 때 주님이 인정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곁에 있는 지체를 세워주는 행동이 진정 아름다운 것이죠. 적용해 보세요.
♱ 가정과 학교, 직장, 교회 등 공동체를 어떤 마음으로 섬기고 있나요? 그 섬김을 통해 인정받고 주인공이 되려는 마음은 없나요? 내 수고가 드러나지 않을 때 내 마음은 어떻습니까?
강경한 언쟁을 그치려면 둘째, 내가 옳다는 생각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거친 항의에 유다 사람들이 대답합니다. 42절에 ‘왕은 우리의 종친인 까닭이라 너희가 어찌 이 일에 대하여 분 내느냐 우리가 왕의 것을 조금이라도 얻어 먹었느냐 왕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 있느냐’라고 해요. 오히려 이들은 불을 지르는 답변을 쏟아냈어요. 그러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43절에서 ‘우리는 왕에 대하여 열 몫을 가졌으니 다윗에게 대하여 너희보다 더욱 관계가 있거늘 너희가 어찌 우리를 멸시하였느냐’며 지지 않고 맞섭니다. 유다는 혈연과 지연을 내세우고 이스라엘은 수적 우세와 세력을 내세워 주도권 싸움을 벌여요.
결국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고 합니다. 아무리 옳은 주장이라도 강경한 말은 관계를 틀어지게 하고 상대방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만 남기는 경우가 많아요. 감정이 섞인 말, 상대를 무시하고 멸시하는 강경한 말은 사탄이 틈탈 여지를 많이 만듭니다. 집에서나 공동체에서 내 말이 맞다고 소리를 높이며 내 주장을 굽히지 않고 상대를 굴복시키려고만 한다면 그곳은 전쟁터나 다름없죠. 골로새서 4장 6절에서는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을 맛을 냄과 같이 하라’고 해요. 논쟁에서 늘 이기려는 마음을 접고 스스로 낮아짐으로써 덕을 세우고 화평하게 하는 것이 성도의 본분입니다. 말의 내용보다 말의 온도가 관계를 결정하는 거예요. 내 옳음을 증명하고자 쏟아내는 강경한 말이 도리어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됩니다. 나를 부인하며 내 혈기를 십자가에 못 박을 때 분쟁이 그치고 진정한 소통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가정이나 공동체에서 내 옳음을 증명하고자 거친 말을 쏟아내진 않습니까? 나의 강경한 말 때문에 관계가 멀어진 사람은 없나요?
부모님 때문에 힘들었지만 말씀으로 고난이 해석되어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의 길을 잘 걸어가기를 소망한다는 한 청년의 청년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아빠는 개척교회 목회자이셨지만 성공과 학벌을 강조하셨고 사역은 뒷전에 두고 생활비와 학원비를 위해 주 6일을 일하셨어요. 저는 잠언 쓰기를 하지 않은 날도 맞고 시험을 본 날은 틀린 개수만큼 맞았어요. 그래서 맞지 않으려고 공부하며 초등학생 때부터 부정행위를 했죠. 청소년기가 되어서는 공부에서 손을 놓았고 이름은 기독교적으로 지어놓고 부모님은 왜 그러시냐며 나중에 개명하고 교회도 떠날 것이라고 다짐했어요. 그러다 성도가 한 명도 남지 않은 위기가 찾아오자, 저희 가족은 큐티하는 공동체에 함께 나오게 되었어요. 그동안 교회 일은 뒷전인 아빠를 무시했었는데 말씀이 들리니 아버지가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신 것으로 해석되었지요. 교회에서 양말을 신지 않으면 회초리를 들던 엄마의 수고로 지금까지 공동체에 붙어가게 된 것도 인정했어요. 저는 작년에 임용시험을 준비했어요. 20장 2절 말씀에서 끝까지 자기 왕에게 붙어 있던 유다 사람들과 달리 저는 수험생이 되자 교회와 소그룹을 멀리했어요. 합격하지 못하면 부끄러울까 봐 수험생활에 대해 공동체에 나누지도 않았지요. 떠나고 싶었던 자녀, 수험생의 자리에 유다 사람들처럼 잘 붙어 있었더니 하나님은 합격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제가 가르칠 과목은 가정이에요. 가정의 가치가 희미해지고 성별의 경계도 허물어진 이 시대에 하나님이 가정 중수의 중요성과 올바른 성 가치관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라고 이 사명을 주셨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부르시는 곳에 잘 매여가며 맡겨주신 학생들을 살리는 교사가 될게요. 저의 적용은 ‘임용시험 기간에 공동체를 멀리한 교만을 소그룹 모임에서 지체들에게 솔직하게 나누겠습니다. 가정 과목 수업을 준비할 때 말씀 묵상으로 성경적 가치관을 담대히 전할 힘을 구하겠습니다.’입니다.”
이들의 주도권 싸움은 결국 끔찍한 파국을 몰고 옵니다. 공동체가 분열로 마음이 상해 있을 때 여지없이 사탄이 틈을 탑니다. 유다와 이스라엘이 서로 시기하고 언쟁하며 틈이 벌어져 있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불량배 세바가 등장해요. 20장 1절에 ‘마침 거기에 불량배 하나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세바인데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이었더라’고 해요. 다윗을 향해 적개심을 품고 있던 세바는 나팔을 불면서 ‘우리는 다윗과 나눌 분깃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우리에게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고 외칩니다. 이 세바의 선동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정면 도전이기도 했어요.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2절에 ‘이에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 따르기를 그치고 올라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따르나’라고 해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윗을 모셔 오겠다고 유다 사람들과 싸우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세바의 말 한마디에 순식간에 다윗을 버리고 세바를 따릅니다. 자기 이익을 따라 뭉친 공동체, 자기 감정과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는 공동체는 이처럼 사탄의 선동에 쉽게 흔들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눈앞에 나타난 손익계산서만 가지고 싸워댈 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반역의 현장에서도 유다 사람들은 그들의 왕과 합하여 요단에서 예루살렘까지 따랐어요. 다윗 곁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 이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바로 그들이 공동체를 지탱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환난 중에도 배반의 사건에서도 끝까지 왕의 곁을 지키면서 묵묵히 따르던 남은 자들이 있었기에 다윗을 통한 구속사는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어요. 주님을 향한 신뢰가 흔들릴 때, 세상에 유혹이 찾아올 때, 그럼에도 주님 곁에 붙어 있을 믿음의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공동체에 딱 붙는 딱풀 성도가 되어야 해요. 바로 그것이 믿음이며 구속사를 이어 나가는 길입니다.
♱ 기도 드릴게요.
주님, 주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종종 사람들로부터 나의 공로와 열심을 인정받으려 했습니다. 주님만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고 내 이름이 드러나길 바라며 대접받으려 한 탐욕을 고백합니다. 자존심을 지키고 내 옳음을 증명하고자 곁에 있는 식구와 지체들을 무시하며 쏟아낸 강경한 말들을 회개합니다. 이제는 나를 부인하며 내 주장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소금과 같은 말로써 덕을 세우며 화평케 하는 자가 되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특별히 깨어질 위기 가운데 있는 가정들을 불쌍히 여기사 회개하는 한 사람을 통해 관계가 회복되게 하시고 다시 살아나는 은혜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