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9:21-30
21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대답하여 이르되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말미암아 죽어야 마땅하지 아니하니이까 하니라
22 다윗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너희가 오늘 나의 원수가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23 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
24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 왕을 맞으니 그는 왕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의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의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25 예루살렘에서 와서 왕을 맞을 때에 왕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냐 하니
26 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인 나는 다리를 절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그 위에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내 종이 나를 속이고
27 종인 나를 내 주 왕께 모함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28 내 아버지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내게 아직 무슨 공의가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하니라
29 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하니
30 므비보셋이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왕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그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
♱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
하나님 아버지, 죽어 마땅한 저희를 살려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어떤 상황에도 주님의 처분을 기다리는 믿음을 갖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살려주신 은혜를 아는 사람은 첫째, 받은 은혜로 용서합니다.
오늘 21절에 아비새가 다윗에게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죽어야 마땅하지 아니하니까’라고 물어요. 사실 아비새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요. 율법대로라면 시므이는 심판받아 마땅했습니다. 다윗을 향해 돌을 던지고 저주하며 모욕했으니까요.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다윗도 충분히 동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22절에 다윗은 뜻밖의 말을 합니다.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너희가 오늘 나의 원수가 되느냐’라고 하지요. 다윗은 시므이가 아닌 아비새를 책망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지금은 심판할 때가 아니라 은혜를 베풀 때라는 거예요. 압살롬의 반역이 끝나고 나라가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또다시 사람을 죽이고 복수한다면 백성의 마음이 다시 갈라질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다윗은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겠느냐’라고 말해요. 광야의 시간과 수많은 사건을 지나면서 다윗은 점점 사람의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게 됩니다. 무엇보다 압살롬의 죽음을 겪으며 자신의 죄와 연약함을 누구보다 깊이 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남을 쉽게 심판할 수 없게 된 것이지요.
23절에 다윗은 시므이에게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합니다. 이것이 은혜예요. 최고의 복수는 용서입니다. 받은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은 이렇게 상처 준 사람까지 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죄인 된 나를 얼마나 오래 참으시고 용서해 주셨는지를 기억한다면 나도 다른 사람을 용서할 힘을 얻게 됩니다. 물론 상처 준 사람을 떠올리면 여전히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올라오죠.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오래 참으셨는지를 생각하며 내가 받은 용서가 크다는 것을 기억할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게 됩니다. 적용 질문 드릴게요.
♱ 내가 아직도 미워하며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살려주신 은혜를 아는 사람은 둘째, 은혜만으로 만족합니다.
24절부터는 므비보셋이 등장합니다. 그는 다윗이 예루살렘을 떠난 날부터 돌아오는 날까지 발도 손질하지 않고 수염도 깎지 않고 옷도 빨지 않았다고 해요. 왕이 떠난 슬픔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지낸 것이지요. 그런데 이미 시바가 다윗에게 므비보셋이 반역했다고 모함한 상태잖아요. 므비보셋으로서는 충분히 억울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다윗도 25절에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냐’라고 물어요. 그러자 므비보셋은 자신이 다리를 절기에 나귀를 준비하려 했는데 시바가 자신을 속였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그의 태도가 참 놀라워요. 27절에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라고 해요.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떼쓰지 않습니다. 자기 결백을 증명하려고 끝까지 싸우지도 않고 왕의 판단에 자신을 맡깁니다. 28절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 두셨사오니’라고 하지요. 므비보셋은 은혜를 잊지 않았어요. 그는 사울의 손자입니다. 정치적으로 보면 죽어도 할 말 없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다윗은 그런 그를 살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왕의 식탁에 앉게 해주었어요. 그 은혜가 너무 크니 당장의 억울함보다 은혜가 먼저 생각났던 것입니다.
그런 므비보셋에게 다윗은 29절에서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합니다. 그러자 므비보셋은 30절에서 ‘그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라고 해요. 재산은 중요하지 않고 왕이 무사히 돌아온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참 놀라운 믿음이지요. 므비보셋은 있어도 괜찮고 없어도 괜찮습니다. 땅을 가져도 괜찮고 빼앗겨도 괜찮습니다. 왕만 곁에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이것이 은혜받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주님 한 분으로 충분한 사람은 손해를 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무너지지 않아요. 재산보다 체면보다 내 권리보다 예수님을 더 귀히 여기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참된 믿음은 많이 가진 데 있지 않고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데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변명하기에 급급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립니까? 정말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나요?
늘 양보하고 말 못 해서 오해와 따돌림으로 힘들었지만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긍휼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한 고등학생의 청소년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제 동생은 장애가 있어요. 그래서 큰 소리로 자기 생각을 외치거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자기 몸까지 다치게 하며 감정을 드러내요. 어릴 때부터 동생에게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늘 말도 못하고 울기만 했어요. 그래서 친구들과 선생님, 동네 어른들에게 착하다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급 착한 친구 투표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았기도 했죠. 그때 한 친구의 질투로 거짓 소문과 따돌림이 시작되었어요. 저는 다른 사람을 욕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변명도 싸움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따돌림이 지속되니 계속 극단적인 생각만 떠올랐습니다. 그러다 기적처럼 전학을 가게 되어 새로운 학교에서 다시 숨을 쉴 수 있었죠. 28절의 므비보셋은 시바의 모함으로 재산을 잃을 위기에 처해도 변명하지 않고 처분을 기다려요. 저도 므비보셋처럼 변명하지는 않았지만 ‘왜 이것밖에 못 했지?’라며 스스로를 정죄하기만 했어요. 하지만 그 시간을 통해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절절매던 삶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자신을 저주한 시므이를 용서했듯 이제는 저도 자신을 용서하고 저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볼게요.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인생이 아니라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바라보며 살기를 기도해요. 저의 적용은 ‘친구들과 부모님의 부탁을 받을 때 싫으면 싫다고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스스로 부족하다는 마음이 들 때 잠들기 전에 오늘도 수고했다라고 말하겠습니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간증한 학생처럼 우리는 때로 억울한 일을 당하면 상대를 용서하기보다 스스로를 정죄하곤 해요. 사람들의 시선에 묶여 살고 인정받고자 애쓰다가 상처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정죄하려고 사건을 허락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긍휼과 은혜를 알게 하시려고 연단하십니다. 그래서 때로는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보다 나 자신을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이는 것이 먼저일 때도 있어요. 시므이를 용서한 다윗처럼 내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용서하고 므비보셋처럼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재산을 잃어도 체면을 잃어도 억울한 일을 당해도 왕이 돌아온 것으로 만족한 므비보셋처럼 우리도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할 수 있기를 바라요. 내 마음에 남아 있는 미움을 내려놓고 사람의 인정보다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보며 용서와 만족의 길을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드립니다.
주님, 시므이를 용서한 다윗을 보며 죄인 된 우리를 끝까지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는 조금만 상처받아도 미워하고 조금만 억울해도 정죄하며 받은 은혜보다 받은 상처를 더 크게 기억합니다.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는 미움과 원망도 있습니다. 주여, 이제는 나를 먼저 용서하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다른 사람을 용서하길 원합니다. 므비보셋처럼 은혜를 잊지 않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내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을 갖길 원합니다. 여전히 재산과 체면과 인정에 집착하는 저희의 욕심을 내려놓고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할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