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9:11-20
11 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되 너희는 유다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왕의 말씀이 온 이스라엘이 왕을 왕궁으로 도로 모셔오자 하는 말이 왕께 들렸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궁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
12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오는 일에 나중이 되리요 하셨다 하고
13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이어서 항상 내 앞에서 지휘관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여
14 모든 유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 같이 기울게 하매 그들이 왕께 전갈을 보내어 이르되 당신께서는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돌아오소서 한지라
15 왕이 돌아와 요단에 이르매 유다 족속이 왕을 맞아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길갈로 오니라
16 바후림에 있는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급히 유다 사람과 함께 다윗 왕을 맞으러 내려올 때에
17 베냐민 사람 천 명이 그와 함께 하고 사울 집안의 종 시바도 그의 아들 열다섯과 종 스무 명과 더불어 그와 함께 하여 요단 강을 밟고 건너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18 왕의 가족을 건너가게 하며 왕이 좋게 여기는 대로 쓰게 하려 하여 나룻배로 건너가니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할 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왕 앞에 엎드려
19 왕께 아뢰되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20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기에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하니
♱ 왕을 영접하나이다 ♱
하나님 아버지, 원수까지 품으시는 주님의 마음을 배워 기회주의를 버리고 진정한 회개로 돌이키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왕을 영접하려면 첫째, 반대편까지 품어야 합니다.
오늘 11절, 12절에 다윗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을 통해 유다 장로들에게 사람을 보냅니다. 그리고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거늘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라고 책망하지요. 압살롬의 반란은 끝났지만 아직 나라가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닙니다. 특히 유다 지파는 압살롬을 지지했던 반란의 중심 세력이었어요.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가장 먼저 책임을 묻고 심판해야 할 대상이지요. 그런데 다윗은 그들을 정죄하지 않아요. 보복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내 형제요 내 골육’이라고 부르며 먼저 손을 내밉니다. 왜 그랬을까요? 다윗은 단순히 왕권을 되찾는 데 관심이 있었던 게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생각한 까닭입니다. 압살롬이 죽은 후 다윗에게 세상 권력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로서 이미 많은 세상 욕심이 정리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맡기신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는 다시 왕으로 서야 했어요. 그러니 ‘내 형제요 내 골육’이라는 표현에는 다윗의 깊은 사랑과 긍휼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잘못한 사람을 향한 말이라기보다 잃어버린 형제를 향한 부르짖음에 가깝습니다. 마치 바울이 내 형제들을 위해서라면 내가 저주를 받아도 좋다고 했던 마음과 비슷하지요.
그리고 13절에는 더욱 놀라운 장면이 나와요. 다윗은 압살롬 군대의 장관이었던 아마사를 새로운 군대 장관으로 세우겠다고 합니다. 반역에 가담한 사람까지 품으려는 것입니다. 물론 요압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정이었겠지요. 하지만 다윗은 이제 누가 내 편이고 네 편인가 보다 하나님 나라 안에서 하나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듯 진정한 리더십은 사람을 힘으로 누르는 것이 아니라 반대편에 있는 사람까지 품어 하나가 되게 하는 데서 나옵니다. 결국 14절에 보니 모든 유다 사람의 마음이 하나같이 기울게 됩니다. 억지로 복종시킨 것이 아니죠. 다윗의 포용과 사랑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하나님도 죄인된 우리를 먼저 품어주셨기에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오게 된 것처럼 누군가를 품는 사랑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내 편이 아니라며 밀어내는 사람은 없나요? 하나님 나라와 공동체의 하나 됨을 위해 먼저 손 내밀고 품어주어야 할 ‘내 형제, 내 골육’은 누구입니까?
왕을 영접하려면 둘째, 용서의 기회를 붙잡아야 합니다.
15절에 보니 유다 족속이 길갈까지 나와 다윗을 영접했다고 해요.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 안에 들어와 할례를 행하며 하나님과 언약을 새롭게 했던 장소입니다. 그래서 길갈은 언제나 회복과 새출발의 의미가 있는 곳이죠. 하나님이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 뜻밖의 인물이 등장해요. 16절에 보니 시므이가 급히 다윗을 맞으러 옵니다. 시므이가 누구죠?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예루살렘을 떠날 때 심하게 저주했던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요셉의 온 족속 중 가장 먼저 내려와 왕을 영접합니다. 17절을 보면 혼자 온 것도 아니에요. 베냐민 사람 천명을 데려왔고 시바도 아들들과 종들을 데리고 함께 나아옵니다. 왜 이리 서둘러 왔을까요? 형세가 바뀐 것을 알았기 때문이지요. 압살롬은 죽고 이제 다시 다윗의 시대가 시작됨을 깨달은 것이죠. 18절과 19절에 시므이는 왕 앞에 엎드려 용서를 구하며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해요. 참으로 겸손한 말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이것은 진실한 회개라기보다 기회주의에서 나온 말이에요. 그럼에도 다윗은 그들을 받아줍니다. 왜죠? 이제 하나님이 자신을 어떻게 다루시는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므이의 진심을 따지기보다 하나님이 이 일을 통해 자신을 연단하고 계심을 먼저 봅니다. 압살롬의 반역과 아들의 죽음을 겪으며 사람을 심판하는 자리에서 내려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물론 나를 힘들게 한 사람, 나를 비난한 사람, 내게 수치를 준 사람을 용서하기란 쉽지 않죠. 그래서 우리는 먼저 상대가 진심으로 사과하는지 정말 변했는지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때로 그 사람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먼저 보게 하십니다. 상대방의 진심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인된 우리를 먼저 용서해 주셨듯이 우리도 용서의 기회를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적용해 보세요.
♱ 아직도 마음에 미움과 원망을 품고 있진 않습니까?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나를 연단하고 계심을 인정합니까? 상대의 진심을 따지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먼저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세상 모임에 가려고 교회 소그룹 모임 시간까지 바꾸는 남편의 모습에서 자기 모습을 보며 기회주의에서 돌이키겠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입니다.
“얼마 전 남편은 세상 모임에서 야유회를 간다며 제게 같이 가자고 했어요. 사실 몇 년 전 그곳의 여자 회원 때문에 남편과 다툰 일이 있기에 저는 그 모임이 탐탁지 않았어요. 기회주의적인 시므이와 시바처럼 남편이 이번 기회에 자신의 떳떳함을 드러내려고 같이 가자고 하는 것 같아 선뜻 내키지 않았지요. 교회 소그룹 모임 시간까지 바꾸며 야유회에 가려는 남편의 모습에 낙심되기도 했어요. 남편은 평소 입버릇처럼 ‘지금껏 일하느라 힘들었으니 이제 좀 즐기다 죽기 전에 예수님 믿으면 되는 거 아냐?’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저는 이번 일로 말씀을 묵상하다가 불현듯 ‘주님도 나를 오래 참고 계시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1인 기업을 운영하는 저는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하려다 한계에 부딪히곤 해요. 그런데 최근 들어 부동산과 코인 등의 투자로 자산을 불려야 한다는 유혹에 넘어가 코인을 매수했어요. 실시간으로 깜빡이는 숫자에 정신이 팔린 제 모습이 마음에 찔리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했지요. 그제야 어떻게든 야유회에 가려는 남편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구나 하고 깨달아졌어요. 말씀을 떠나 재물의 유혹에 빠진 제 모습을 보라고 주께서 허락하신 사건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원가정에 대한 열등감으로 세상 성공을 쫓다가 급성 호중구 감소증으로 소망이 끊어질 뻔한 저를 살려주신 주님의 은혜를 잠시 잊고 있었어요. 세상 쾌락과 물질에 눈을 돌리는 저희 부부의 마음을 하나같이 기울게 하시려고 오늘 말씀을 주시니 감사해요. 이제는 기회주의적인 말과 행동을 그치고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이키길 원해요. 저의 적용은 ‘재물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도록 핸드폰에서 코인앱을 삭제하겠습니다. 아침에 먼저 큐티인으로 말씀을 묵상한 뒤 저와 남편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은 자신을 배신한 사람들까지 품었습니다. 반역자 아마사도 품었고 자신을 저주했던 시므이도 받아주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길갈의 자리로 부르십니다. 언약을 새롭게 하여 다시 시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 편과 네 편을 나누지 말고 원수까지 품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며 살아가시길 바라요. 진정한 회개로 돌이켜 하나님 나라의 하나 됨을 이루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드립니다.
주님, 반역한 압살롬을 품고 저주하던 시므이까지 받아준 다윗을 통해 원수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는 조금만 상처받아도 마음을 닫고 조금만 배신 당해도 사람을 정죄하며 내 편과 네 편을 나누는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공동체의 하나 됨보다 내 감정과 자존심을 앞세운 저희의 죄를 고백하오니 용서해 주시옵소서. 상황 따라 움직이고 유익 따라 선택하며 필요할 때만 주님을 찾는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버리길 원합니다. 길갈 언약의 의미를 기억하며 오늘 우리도 식어진 마음을 회복하고 흩어진 마음을 다시 주께로 모으기 원합니다. 무엇보다 내가 먼저 용서받은 자임을 기억하고 용서의 기회를 놓치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나를 힘들게 한 사람까지 품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내 유익보다 하나님 나라를 먼저 생각하며 원수까지 품으시는 주님의 사랑을 닮아가는 저희가 되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