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8:10-18
10 한 사람이 보고 요압에게 알려 이르되 내가 보니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달렸더이다 하니
11 요압이 그 알린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보고 어찌하여 당장에 쳐서 땅에 떨어뜨리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네게 은 열 개와 띠 하나를 주었으리라 하는지라
12 그 사람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내 손에 은 천 개를 받는다 할지라도 나는 왕의 아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우리가 들었거니와 왕이 당신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삼가 누구든지 젊은 압살롬을 해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13 아무 일도 왕 앞에는 숨길 수 없나니 내가 만일 거역하여 그의 생명을 해하였더라면 당신도 나를 대적하였으리이다 하니
14 요압이 이르되 나는 너와 같이 지체할 수 없다 하고 손에 작은 창 셋을 가지고 가서 상수리나무 가운데서 아직 살아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니
15 요압의 무기를 든 청년 열 명이 압살롬을 에워싸고 쳐죽이니라
16 요압이 나팔을 불어 백성들에게 그치게 하니 그들이 이스라엘을 추격하지 아니하고 돌아오니라
17 그들이 압살롬을 옮겨다가 수풀 가운데 큰 구멍에 그를 던지고 그 위에 매우 큰 돌무더기를 쌓으니라 온 이스라엘 무리가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니라
18 압살롬이 살았을 때에 자기를 위하여 한 비석을 마련하여 세웠으니 이는 그가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내게 없다고 말하였음이더라 그러므로 자기 이름을 기념하여 그 비석에 이름을 붙였으며 그 비석이 왕의 골짜기에 있고 이제까지 그것을 압살롬의 기념비라 일컫더라
♱ 자기를 위한 기념비 ♱
하나님 아버지, 나를 위한 기념비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기념비를 세우는 우리 인생이 되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자기를 위한 기념비를 세우지 않으려면 첫째, 말씀보다 내 생각을 앞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10절에 한 사람이 상수리나무에 달린 압살롬을 보고 요압에게 알립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압살롬을 죽이지 않았어요. 왜 그랬을까요? 왕이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고 명령했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 분별하는 것도 성령의 은혜입니다. 이 병사는 왕의 명령을 기억하고 순종했어요. 그런데 11절에 보니 요압은 ‘어찌하여 당장에 쳐서 땅에 떨어뜨리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네게 은 열 개와 띠 하나를 주었으리라’하며 그를 책망합니다. 요압은 자기 생각이 옳다고 여기는 사람이에요. 왕의 명령보다 자기 판단을 앞세웁니다.
그런데 12절에서 병사는 ‘내 손에 은 천 개를 받는다 할지라도 나는 왕의 아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해요. 놀라운 대답입니다. 눈앞의 보상보다 왕의 명령을 더 중요히 여긴 것이죠. 말씀과 현실적 이익이 충돌할 때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곧 믿음입니다. 불의한 재물에는 평안도 장수도 없습니다. 13절에서 병사는 또 ‘내가 만일 거역하여 그의 생명을 해하였더라면 당신도 나를 대적하였으리이다’라고 말해요. 요압의 간교함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요압은 14절에서 ‘나는 너와 같이 지체할 수 없다’하며 직접 창 셋을 들고 가서 압살롬의 심장을 찌릅니다. 15절에서는 무기를 든 청년 10명까지 동원해 압살롬을 확인 사살합니다. 말씀보다 자기 생각을 더 믿는 사람의 모습이 이와 같지요. 물론 하나님은 이것까지도 공의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요압은 왕의 명령을 거역한 불순종의 죄를 범했습니다. 우리도 영적으로 많이 훈련받고 말씀도 잘 안다고 하면서 마지막 순간에 인간적인 계산을 할 때가 있습니다. 결혼 문제, 자녀 문제, 입시 문제, 직장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판단을 앞세우면 결국 요압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적용 질문 드립니다.
♱ 말씀보다 내 생각을 앞세우는 일은 무엇입니까? 손해를 보더라도 순종해야 할 말씀은 무엇입니까?
자기를 위한 기념비를 세우지 않으려면 둘째, 내 이름보다 하나님의 이름을 남겨야 합니다.
16절에 요압이 나팔을 불어 전쟁을 멈추게 합니다. 그렇게 치열하던 전쟁이 순식간에 끝나요. 압살롬이 죽자 더는 싸울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에요. 압살롬을 위해 싸우던 사람들은 압살롬이 죽자 뿔뿔이 흩어집니다. 사람을 위해 싸운 전쟁은 결국 허무하게 끝납니다. 오직 하나님을 위한 싸움만이 영원한 의미가 있습니다. \7절에 보니 압살롬의 시체는 수풀 가운데 큰 구덩이에 던져지고 돌무더기로 덮여요. 얼마 전까지 백성의 마음을 빼앗고 왕노릇하던 압살롬의 마지막 모습이 이리도 비참합니다. 그러니 악인의 형통은 부러워할 것이 없어요. 잠시 형통해 보일 수는 있지만 결국 수치로 결론이 납니다.
18절에는 압살롬의 비극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지요. 압살롬은 살아 있을 때 자기 이름을 남기려고 기념비를 세웠어요.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이름을 높여 주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압살롬은 그 약속을 모르니 스스로 이름을 남기려 애쓴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해요. 자녀의 성공, 좋은 직장, 화려한 스펙, 사람들의 인정으로 나를 위한 기념비를 세우려는 모습이 우리에게 있잖아요. 그러나 하나님 없이 세운 기념비는 결국 수치의 기념비가 됩니다. 반면, 하나님을 위해 흘린 눈물과 순종은 굳이 기념비를 세우지 않아도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십자가를 지고 살아간 사람의 인생은 저절로 구원의 기념비가 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내 이름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입니다. 적용해 보세요.
♱ 나는 지금 누구를 위한 기념비를 세우고 있습니까? 자녀와 성공과 스펙이 나를 위한 기념비가 되고 있지는 않나요? 사람의 기억에 남기를 원합니까? 하나님의 기억에 남기를 원합니까?
자신을 위한 기념비를 세우면서도 자녀를 위한 것이라 착각한 것을 회개하고 이제는 질서에 순종하며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입니다.
“가난한 가정 환경에서 부모님의 잦은 다툼을 보며 자랐기에 자기 연민과 피해 의식으로 더 나은 삶을 꿈꾸며 결혼하여 제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았어요. 자녀를 더 좋은 환경에서 키우고 싶은 욕심에 사춘기 딸들에게 묻지도 않고 이사와 전학을 결정했지요. 교회는 다녔지만 다윗의 명령을 어기고 자기 생각대로 한 14절의 요압처럼 제가 듣고 싶은 말만 들었습니다. 저는 이사 후 힘들어하는 딸들에게 ‘다시 이사 갈 수는 없으니 너희가 적응해’라고 다그쳤어요. 제 열등감을 감추고자 자녀를 위한 기념비를 세운다고 했지만 실상은 나를 위한 기념비였어요. 그런 제게 거절감과 배신감을 느낀 딸들은 교회를 떠났습니다. 자녀의 스펙을 쌓아 압살롬의 풍성한 머리카락처럼 자랑하고 싶었지만 오히려 제 욕심으로 자녀들의 방황이라는 상수리나무에 걸리고 만 거예요. 그러다 교회 공동체에서 양육 훈련을 받고 큐티하며, 내 생각에 빠져 두 딸을 힘들게 한 제가 바로 요압임을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이제는 교회 소그룹 리더로서 자녀 고난을 겪는 지체들에게 제가 문제 엄마였음을 고백하며 하나님을 위한 기념비를 같이 세우자고 이야기해요. 자녀들을 다 죽일 뻔한 죄인임에도 요압 같이 불순종하는 저를 기다리시며 회개할 기회를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려요. 은 천 개를 받을지라도 왕의 아들에게 손대지 않겠다고 말한 병사처럼 질서에 순종하며 지체를 살리는 사명을 감당하길 기도합니다. 저의 적용은 ‘딸들에게 힘든 마음을 체휼하지 못한 일을 사과하고 교회에 나오도록 권하겠습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맡은 일들이 겹칠 때 내 생각대로 하지 않고 잘 묻겠습니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압살롬은 자기 이름을 남기려고 기념비를 세웠지만 결국 수치의 기념비로 남았습니다. 반면 다윗은 눈물의 골짜기를 걸어가며 하나님만 의지했기에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기억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끊임없이 나를 위한 기념비를 세우고 싶어 합니다. 자녀의 성공, 세상의 인정, 사람들의 칭찬을 통해 내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해요. 그러나 하나님 없이 세운 기념비는 결국 무너져요. 오늘 간증하신 성도님처럼 자녀를 위한다면서 실상을 나를 위한 기념비를 세우고 있었음을 깨닫는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우리를 당장 버리지 않으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내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사람의 기억보다 하나님의 기억에 남는 인생을 살아갈 가시길 바라요. 눈물의 광야를 지나며 십자가의 흔적을 남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드립니다.
주님, 압살롬처럼 내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하는 욕심이 우리 안에도 가득함을 고백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자녀가 잘되면 자랑하고 싶고 성공과 업적을 통해 나의 기념비를 세우고 싶은 마음이 저마다 있습니다. 말씀보다 내 생각을 앞세운 요압의 모습도 바로 우리의 모습임을 고백합니다. 순종보다 계산을 앞세우고 하나님의 뜻보다 내 판단을 더 믿으며 살아온 저희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은 천 개를 준다고 해도 왕의 명령을 따르겠다고 했던 병사처럼 손해를 보더라도 말씀을 선택하고 내 유익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귀하게 여길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압살롬의 머리카락처럼 우리가 자랑하는 것이 올무가 되지 않길 원합니다. 외모와 능력과 학벌과 재물과 자녀가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길 원해요. 우리의 이름이 남는 인생보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인생을 살아가게 하시고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기억에 남는 인생 되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더라도 십자가의 흔적을 남기며 무너질 세상의 기념비가 아니라 영원한 구원의 기념비를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