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7:11-19
11 나는 이렇게 계략을 세웠나이다 온 이스라엘을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바닷가의 많은 모래 같이 당신께로 모으고 친히 전장에 나가시고
12 우리가 그 만날 만한 곳에서 그를 기습하기를 이슬이 땅에 내림 같이 우리가 그의 위에 덮여 그와 그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을 하나도 남겨 두지 아니할 것이요
13 또 만일 그가 어느 성에 들었으면 온 이스라엘이 밧줄을 가져다가 그 성을 강으로 끌어들여서 그 곳에 작은 돌 하나도 보이지 아니하게 할 것이니이다 하매
14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계략은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낫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라고 명령하셨음이더라
15 이에 후새가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이르되 아히도벨이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이러이러하게 계략을 세웠고 나도 이러이러하게 계략을 세웠으니
16 이제 너희는 빨리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전하기를 오늘밤에 광야 나루터에서 자지 말고 아무쪼록 건너가소서 하라 혹시 왕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몰사할까 하노라 하니라
17 그 때에 요나단과 아히마아스가 사람이 볼까 두려워하여 감히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에느로겔 가에 머물고 어떤 여종은 그들에게 나와서 말하고 그들은 가서 다윗 왕에게 알리더니
18 한 청년이 그들을 보고 압살롬에게 알린지라 그 두 사람이 빨리 달려서 바후림 어떤 사람의 집으로 들어가서 그의 뜰에 있는 우물 속으로 내려가니
19 그 집 여인이 덮을 것을 가져다가 우물 아귀를 덮고 찧은 곡식을 그 위에 널매 전혀 알지 못하더라
♱ 전혀 알지 못하더라 ♱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십자가로 덮으사 우리를 살려주신 주님께 생명을 내어놓고 사명을 감당하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주님이 덮어 살려주신 인생은 첫째, 살리는 계략을 베풉니다.
지난 이틀간 어떤 일이 있었죠? 압살롬이 아히도벨과 함께 예루살렘에 입성하자 후새가 압살롬을 섬기겠다며 위장 전향을 했어요. 압살롬은 아히도벨에게 계략을 가르쳐 달라 하고 아히도벨은 다윗의 후궁들과 동침하라고 했지요. 또 자신이 만 이천 명을 데리고 오늘 밤 다윗의 뒤를 기습하여 다윗 왕만 쳐 죽이면 모든 백성이 당신께 돌아올 것이라고 제안했어요. 그때 후새가 나서서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은 용사임을 강조하며 그의 계략을 막아섰잖아요. 그리고 오늘 후새는 다윗의 자손을 끊으려는 아히도벨의 악한 계략을 어리석게 만들고자 자신의 계략을 말합니다.
11절에 ‘나는 이렇게 계략을 세웠나이다 온 이스라엘을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바닷가의 많은 모래 같이 당신께로 모으고 친히 전장에 나가시고’라고 해요. 즉시 기습하자는 아히도벨과 달리 후새는 이스라엘 전체에서 군대를 모으자고 합니다. 압살롬이 온 백성의 폭넓은 지지를 받는 모습을 과시하게 함으로 그의 허영과 교만을 자극하는 거예요. 하지만 그만큼 작전은 지연되지요. 또 후새는 압살롬에게 친히 전장에 나가라며 그의 영웅심을 자극합니다. 내가 일어나 다윗을 쳐 죽이겠다는 아히도벨이 압살롬을 앞서려 한다는 위험성을 은근히 지적하는 거예요.
12절과 13절에 ‘이슬이 땅에 내림 같이’라며 압살롬의 성취감을 더욱 고취시키고 다윗이 성으로 피하면 밧줄로 성을 강으로 끌어 끌어내리자는 과장된 말까지 합니다. 그러자 14절에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계략은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낫다’고 해요. 그런데 본문은 그 이유를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라고 명령하셨음이더라’고 못 박아요. 물론 후새의 모략이 압살롬의 과시 성향과 딱 맞아떨어진 것도 있겠지만 근본은 하나님이 그 마음을 움직이신 거예요. 사실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온 군대를 모으자는 말은 조금만 생각해 봐도 허황된 일인데 압살롬은 자기 허영과 교만에 가려 그것이 전혀 보이지 않아요. 마음을 움직이시는 분이 하나님이기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 가장 큰 지혜입니다. 적용해 보세요.
♱ 옳고 그름만 따지다가 구원의 일을 그르친 적은 없나요? 내가 속은 이유가 나의 허영과 교만 때문임을 인정합니까?
주님이 덮어 살려주신 인생은 둘째, 구원을 위해 생명을 내놓습니다.
15절에 ‘후새가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이르되 아히도벨이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이러이러하게 계략을 세웠고 나도 이러이러하게 계략을 세웠으니’라고 해요. 이제 후새는 자신의 계략을 다윗 진영에 전합니다. 후새는 생명을 다하는 사랑으로 끝까지 다윗을 돕는 거예요.
16절에 ‘오늘밤에 광야 나루터에서 자지 말고 아무쪼록 건너가소서 하라 혹시 왕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몰사할까 하노라’고 합니다. 왕이 몰사할까 봐 걱정하며 자기 목숨을 걸고 전하는 거예요. 생각해 보면 후새는 압살롬을 속인 것이지요. 세상의 옳고 그름만 보면 속이는 것은 무조건 죄라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거짓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하나님 편이냐 아니냐입니다. 후새의 거짓은 자기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윗 왕국과 구원을 위해 자기 생명을 내건 자리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우리가 분별할 것은 거짓의 형식이 아니라 그것이 내 유익을 위한 것인지 구원을 위한 것인지예요. 그런데 후새의 말을 다윗에게 전하는 일 역시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17절에 보니 요나단과 아이마하스도 두려워서 감히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샘터인 에느로겔 가에 머물러요. 그때 하나님은 한 여종의 손길을 붙여 안전하게 도우십니다. 스쳐 지나가듯 기록되었지만 이 여인은 구속사의 관점에서 압살롬보다 위대한 역할을 합니다. 이 일로 다윗을 지켜줌으로써 예수님이 오시게 하는 일에 쓰인 거잖아요. 만일 이 여인이 대제사장의 집이 아니라 압살롬 진영에 있었다면 이렇게 쓰임 받지 못했을 거예요. 어느 편에 서느냐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런데 곧 위기가 와요. 18절에 한 청년이 그들을 보고 압살롬에게 알린 거예요. 이에 두 사람은 바후림 어떤 사람의 집 우물 속으로 피신합니다. 천성을 향해 가는 길도 이렇게 험하니 기도 없이는 갈 수가 없는 길이에요. 그때 또 돕는 손길이 찾아와요. 19절에 ‘그 집 여인이 덮을 것을 가져다가 우물 아귀를 덮고 찧은 곡식을 그 위에 널매 전혀 알지 못하더라’고 해요. 생각지도 못한 그 집 여인이 돕는 손길이 된 거예요. 이렇게 하나님 나라는 혼자서 이루어갈 수 없어요. 지나가는 손길 하나하나가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엄청난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 순간순간 후새의 모략인지 아히도벨의 모략인지 구원을 위해 칼날 위에 물방울처럼 깨어있어야 하는 거예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 구원을 위해 생명을 내놓는 자리에 서 있나요, 아니면 내 유익만 구하고 있나요? 구원을 위해 나아갈 때 생각지도 못한 돕는 손길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평안히 천국 가신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며 가족 구원을 위해 더욱 기도하기로 다짐했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저희 할머니는 작년 9월 향년 103세를 일기로 별세하셨어요. 병상 세례를 받으시고 임종 직전에 영접 기도도 하시며 평안한 모습으로 떠나셨지요. 저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믿음의 1세대 역할을 하신 어머니의 수고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한 영혼이 구원받기까지 얼마나 많은 기도와 적용이 필요한지 새삼 느꼈죠. 장례를 치르는 첫날 저의 자녀들과 조카들이 상주이신 아버지께 인사드릴 때예요.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이럴 때는 상주분에게 위로를 건네는 거야’라고 알려주시며 한마디씩 하게 하셨어요. 그러자 조카들은 ‘사랑합니다. 힘내세요.’라고 인사했고 제 아들은 ‘할아버지! 증조할머니는 천국에 가셨으니 다시 만날 수 있어요’라고 했어요. 장례 절차를 돕느라 일 처리에만 몰두해 있던 저는 아버지께 천국 복음을 전하는 아들의 말을 듣고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았지요. 아버지는 손자의 말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지만 아이들은 17절의 어떤 여종처럼 복음을 전하는 통로 역할을 충분히 감당한 것 같았거든요. 그로부터 한 달 뒤 가족과 함께 모여 소회를 나누었어요. 믿지 않으시는 아버지와 형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막상 아버지와 형이 강하게 조상신을 언급하며 자녀들을 다독일 때 저는 오랜만에 찾아온 가족의 평화를 깨는 것 같아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구원을 위해서 때로는 거짓 화평을 깨야 한다고 배웠음에도 적용하지 못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제라도 가족 구원을 기도 제목으로 놓고 저를 구원의 통로로 사용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저의 적용은 ‘매일 출근길 버스 안에서 QT 방송 설교를 듣는데 설교 후 기도 시간에 가족이 구원받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와 형에게 토요일에 안부 전화를 드려 교회에 가보시라고 권하겠습니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각 가정에 다윗의 씨이신 예수님이 오시려면 옳고 그름을 넘어 구원을 위한 계략을 내어야 합니다. 또한 맡은 역할에 순종하여 목숨을 내걸고 애통함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해요. 그리하여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덮어져 구원이 임하는 은혜가 우리 가운데 넘쳐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 후새처럼 목숨 걸고 직언하는 한 사람, 한 여종과 여인처럼 작은 손길로 구원에 쓰임 받는 그 한 사람이 되길, 이를 위해 칼날 위에 물방울처럼 깨어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드립니다.
주님, 좋아 보이는 계략 앞에서 옳고 그름만 따지다가 정작 구원의 일을 그르치고 허영과 교만에 가려 분별하지 못하는 저희입니다. 마음을 움직이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사람의 그럴듯한 말보다 주님께 묻는 저희가 되길 원합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이 우리 가정에 오셔야 하기에 내 유익을 내려놓고 구원을 위해 생명을 내놓는 적용으로 나아가게 도와주시옵소서. 후새처럼 목숨 걸고 직언하고 한 여종과 여인처럼 작은 손길로도 누군가를 살리는 저희가 되길 원합니다. 가족 구원을 위해 나아가는 모든 지체가 순간순간 분별하며 우물을 덮는 적용으로 깨어 있게 하시고 분열된 이 나라와 흔들리는 모든 가정도 주님의 긍휼로 지켜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